피플
국내 유일의 마크로비오틱 전문가 이와사키 유카
김민정 헬스조선 기자 | 사진 조은선 기자
입력 2010/11/04 08:58
“유카 씨, 오늘은 무엇을 해 드시나요?”
탤런트 류시원이 연기한 드라마 <스타일>의 주인공 차우진의 직업은 국내 최초의 마크로비오틱 셰프다. 지난해 드라마의 인기와 더불어 마크로비오틱에 대한 세간의 관심이 뜨꺼웠다. 이 드라마에서 류시원의 요리법 조언을 맡았던 마크로비오틱 전문가 이와사키 유카 씨를 만났다. <마크로비오틱 밥상><마크로비오틱 아이밥상>에 이어 <마크로비오틱 베이킹>으로 3번째 마크로비오틱 요리책을 준비하고 있는 그녀가 전하는 마크로비오틱 건강법이 흥미롭다.
TV 프로그램을 통해 몇 차례 소개되면서 사람들의 관심을 불러일으킨 ‘마크로비오틱(Macrobiotics)’은 일본에서 큰 인기를 얻고 있는 장수 건강법이다. ‘Macro(크다. 위대하다)’와 ‘Biotic(생명)’의 합성어로, 이탈리아의 ‘슬로푸드(Slow Food)’, 영국의 ‘그레이트 라이프(Great Life)’와 같은 건강한 삶을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아우르는 일종의 건강생활 방식이다.
지난해부터 국내에 마크로비오틱을 전하고 있는 국내 유일의 마크로비오틱 전문가 이와사키 유카(34세) 씨를 만난 곳은 서울 한남동의 한 요리 스튜디오다. 그녀는 9월 말 출간 예정인 마크로비오틱 요리 에세이집 촬영으로 분주했다. 잠시 촬영을 멈추고 테이블에 마주 앉았다. ‘마크로비오틱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대단하다’는 인사부터 건넸다.
“마크로비오틱이 TV에 소개된 뒤 많은 사람이 관심을 가지니까 좋아요. 처음 TV 출연 제의를 받았을 때는 너무 조심스러운 나머지 거절하려고 했는데, 마크로비오틱을 제대로 알릴 필요가 있다는 생각에서 수락했고 그 후로 여러 차례 방송을 하고 있습니다. 요즘에는 제대로 된 마크로비오틱을 널리 알리는 것이 제가 할 일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한국인 덕분에 마크로비오틱을 알게 됐어요”
이와사키 유카와 마크로비오틱의 인연은 4~5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02년부터 한국에 머문 그녀는 이듬해인 2003년 호주 유학 중에 만난 한국인 남자 친구와 결혼했다. 당시 그녀의 직업은 레스토랑 컨설턴트. 일본 국가 공인 관리영양사로 노인을 위한 시설에서 일하던 그녀는 칼로리와 식단만 신경 쓰는 것이 아닌, 좀더 재미있고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어 레스토랑 컨설팅 관련 일을 시작했다.
“레스토랑 컨설팅을 전문으로 하는 일본 회사의 한국 지사, 카페와 레스토랑 컨설팅 전문업체인 한국 회사에서 근무했어요. 일본에 한국음식을 전하고, 한국에 일본음식을 전하는 일이 무척 즐거웠죠. 두 나라의 식문화까지 알릴 수 있어 의미도 컸고요.”
재미와 보람은 컸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몸 상태가 안 좋아졌다. 일을 시작하고 2년 정도 지나자 아토피가 생겼다. 소아 아토피가 있었지만 성인이 된 뒤로 괜찮았는데, 일하면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 재발한 것이다. 아토피로 고생하는 그녀에게 한국인 지인이 마크로비오틱을 권했다. 지인은 ‘일본에서 마크로비오틱이 유행인데 아토피에 좋다는 소리를 들었다’고 했다.
“사실 그분이 말해 주기 전까지는 마크로비오틱에 대해 잘 알지 못했어요. 마크로비오틱이 10여 년 전 일본에서 크게 유행한 적이 있다는데, 당시 학생이었기 때문에 아예 관심조차 두지 않았던 거죠.”
마크로비오틱은 일본에서 체계화한 건강법이지만 처음에는 일본인에게 별 관심을 받지 못했다. 그 후 프랑스와 미국 등에 전해져 인기를 얻으며 정부의 인정을 받을 정도로 유명해졌다. 1990년대 후반 일본으로 역수입된 마크로비오틱은 젊은 사람들에게 돌풍을 불러일으켰다. 마크로비오틱 전문 레스토랑과 카페가 등장한 것은 바로 그즈음이다. 한국인 지인을 통해 마크로비오틱을 접한 그녀는 순식간에 그 매력에 빠져들었다. 원래부터 관심 있던 동양철학도 한몫 했다.
“결혼 전 천식 때문에 한의원에 간 적이 있어요. 그때 소음인·소양인 등 체질 이야기와 한약 먹을 때는 닭고기, 무, 밀가루를 피하라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무척 재미있더라고요. 내친김에 음양(陰陽)을 기본으로 한 동양철학을 배우려고 했죠. 그런데 일반인이 배우기에는 어려운 점이 많더라고요. 반면 마크로비오틱은 쉬운 거예요. ‘바로 이거구나!’ 했어요.”
그녀는 일본에 있는 가족에게 마크로비오틱 관련 책을 보내달라고 해서 공부했다. 공부를 하다 보니 좀더 전문적으로 배우고 싶은 욕심이 생겨 2년 동안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본격적으로 마크로비오틱 수업에 몰두했다. 고생한 보람이 있었다. 2008년 국제 협회에서 주는 자격증인 ‘마크로비오틱 쿠킹 인스트럭터’를 땄다. 마크로비오틱 전문가로 인정받은 셈이다.
“마크로비오틱, 제대로 아는 게 중요해요”
마크로비오틱을 실천하는 사람들은 크게 네 가지를 추구한다. 일물전체(逸物全體), 신토불이(身土不二), 자연생활(自然生活), 음양조화(陰陽調和). 일물전체는 자연의 기운을 통째로 받아들이려는 노력이다. 식품은 통째로 섭취하는 것이 좋고, 껍질이나 뿌리도 버리지 않고 사용하려고 애쓴다. 실제로 그녀는 모든 채소의 껍질을 벗기지 않은 채 요리한다.
“마크로비오틱은 식재료를 에너지를 가진 생명체로 봐요. 따라서 부분적으로 섭취하기보다 전체를 먹어 그 에너지를 통째로 전달받으려고 하죠. 파 뿌리나 당근 껍질도 깨끗히 씻어서 그대로 사용해요.”
‘신토불이’는 가능한 한 가까운 지역에서 수확한 제철식품을 먹는 것이다. 그녀는 “한때는 일본에서 구입해 온 식재료와 양념장 등을 사용했다”면서 “마크로비오틱을 안 뒤로는 수입산보다 한국에서 제철에 나는 식품을 사용한다”고 말했다. ‘자연생활’은 인공적인 것이 아닌 자연산을 먹자는 이야기다. ‘음양조화’는 식재료와 조리법의 음양을 구분해 자신에게 맞는 식품을 적절한 방법으로 조리해 먹는 것을 말한다. 식재료뿐 아니라 조리법에 따라서 음양의 성격이 달라질 수 있다.
마크로비오틱에서는 우리 몸이 어느 한쪽으로 편향되지 않고 중용을 띠어야 건강한 상태라고 본다. 따라서 극음성인 설탕, 커피, 술과 극양성인 고기나 유제품은 피한다. 대신 식품 중 가장 중용의 성격을 띠는 현미를 중심으로 식단을 구성한다. 튀김을 먹을 때는 레몬즙으로 중화하는 식으로 균형을 맞춘다. 혹자는 마크로비오틱을 채식과 동일하게 여기지만 그녀는 엄밀히 다르다고 말했다.
“마크로비오틱은 채식과는 달라요. 채식은 고기를 금하지만, 마크로비오틱은 ‘고기와 기름은 먹으면 안 돼’ 하는 식으로 금지하지 않아요. 다만 깨끗하게 기른 식재료를 건강한 방식으로 조리해 음양의 균형을 맞춰 먹는 것을 추구하죠. 고기를 적게 먹는 이유는 고기가 극양성 식품이기 때문이에요.”
그렇다면 마크로비오틱 식단은 어떻게 차려야 할까? 우선 주식과 부식을 확실히 구분한다. 정제하지 않은 곡물을 주식으로 하고, 제철 채소, 과일 등을 부식으로 한다. 주식은 현미, 잡곡, 통밀을 사용한다. 유기농법으로 재배한 채소와 콩 등의 농산물을 이용한다. 화학조미료 대신 천연조미료를 사용하는 것도 특징이다. 다시마, 표고버섯 등은 좋은 조미료 재료다. 설탕 대신 메이플 시럽이나 물엿 등을 사용한다. 소금은 천일염을 이용하고, 육류나 유제품은 자주 먹지 않는다.
마크로비오틱을 실천하면 건강에 큰 도움이 된다. 가장 뚜렷한 효과는 배변이다. 육류보다 채소를 많이 먹으면서 몸속 독소와 노폐물의 배출이 원활해진다. 여러 질병 및 피부 트러블을 없앨 수 있다. 아토피에도 효과가 뛰어나다. 우리나라보다 아토피 환자가 3배가량 많은 일본에서는 마크로비오틱을 아토피 치료 식단에 쓴다. 생리통과 각종 생활습관병의 식이요법으로도 활용된다.
“마크로비오틱으로 건강을 지키세요”
마크로비오틱을 만난 후 이와사키 유카의 삶에는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궁금했다. 그녀는 ‘몸과 마음이 건강해졌다’면서 목소리를 높였다.
“최초의 변화는 음식에 대해 새로운 것을 알게 됐다는 거예요. 저는 고기를 무척 좋아했는데 고기가 들어가지 않아도 맛있는 게 많다는 것을 발견한 거예요. 곡물과 채소, 콩, 해조류가 갖고 있는 매력을 알게 된 거죠.”
음식의 재발견은 시작에 불과했다. 음식에 대한 관심은 계절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
다. 마크로비오틱은 제철식품 섭취를 권장하기 때문. 계절에 관심을 갖다 보니 계절에 따라 몸이 변함을 인식하게 됐고, 더 나아가 몸에 관심을 기울이게 됐다.
“우리 몸은 필요없으면 반응하지 않아요. 뾰루지가 나는 것은 다 이유가 있거든요. 마크로비오틱을 안 뒤로는 ‘아토피를 고쳐야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아요. 아토피는 고쳐야 할 대상이 아니라 내 몸의 증상일 뿐이니까요. 다시 말해 아토피는 싸워서 이겨야 할 대상이 아니라 내가 함께해야 할 친구인 거예요. 아토피가 내게 있는 동안 우리 둘 사이가 좋았으면 하고요(웃음).”
그녀에게 마크로비오틱은 단순한 건강법 이상이었다. 특히 마크로비오틱이 추구하는 음양조화는 그녀의 정신세계를 바꿔 놓았다.
“세상 모든 일은 조화를 이뤄요. 더운 여름과 추운 겨울이 있고, 힘든 기간이 지나면 행복한 순간이 오죠. 지금 엄청나게 우울하고 화나도 시간이 지나면 언젠가는 즐거운 때가 오거든요. 그렇게 생각하면 특별히 힘들 일이 없어요. 자연에 무한한 감사를 하게 된 것도 큰 변화예요. 사람이 자연의 일부로 살아가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저절로 알게 됐어요. 환경을 생각하고 지구를 생각하는 삶에 대해서요. 마크로비오틱을 알기 전의 내 모습을 생각하면 정말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 벌어졌지 뭐예요(웃음).”
마크로비오틱은 그녀뿐 아니라 남편에게도 큰 변화를 가져다주었다. 1년 만에 체중 10kg을 감량한 것이다. 유카 씨의 남편은 직장생활을 하기 때문에 철저히마크로비오틱 식사를 지킬 수 없었지만 집에서는 마크로비오틱 식사를 했고 그게 효과를 거뒀다. 마크로비오틱 외에 그녀가 신경 쓰는 것은 운동이다. 아침마다 1시간 가량 등산과 조깅을 하고 있다.
“요즘 사람들은 섭취에 많은 신경을 쓰지만 배출에는 소홀해요. 일부러라도 배출을 할 필요가 있어요. 운동해서 땀을 내고, 노래를 부르고, 글씨를 쓰는 등 일상 속에서 배출방법은 많아요. 그렇게 하다 보면 스트레스와 피로가 풀리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거예요. 가끔 ‘피곤한데 왜 운동을 해?’ 말하는 사람도 있는데, 약간 피곤한 상태에서 운동하면 얼마나 상쾌하다고요(웃음).”
인터뷰 말미, 문득 일반 사람들이 마크로비오틱 건강법을 실천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란 생각이 스쳤다. 그녀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전혀 그렇지 않아요. 마크로비오틱은 식품의 껍질을 깎지 않고 통째로 먹고, 된장과 간장, 표고버섯가루 등 몇 가지 양념만 사용하기 때문에 오히려 간단할 수 있어요. 처음부터 완벽할 필요는 없어요. 관심을 갖고 지내다 보면 자연스러워질 테니까요.”
한국인의 건강한 삶에 도움이 되고 싶다는 이와사키 유카씨는 지금 두 가지 목표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 첫 번째는 마크로비오틱 음식을 즐기고 산림욕을 하며 몸을 디톡스할 수 있는 센터를 만드는 것이다. 사람들이 편하게 찾아 마크로비오틱을 경험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두 번째는 더욱 건강하고 행복해지는 것이다. 그녀는 자신이 건강하고 행복하게 사는 모습을 보여 줌으로써 아토피를 앓는 사람과 그 가족에게 조금이나마 희망이 되고 싶다고 다짐하듯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