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길태… '측두엽간질'이 뭐길래?
지난 2월 부산 여중생 납치 및 성폭행, 살해한 혐의로 1심에서 사형을 선고받은 김길태(33)가 발작증상을 일으키는 '측두엽간질'과 '망상장애' 등의 진단을 받았다. 부산고법이 법무부 산하 국립법무병원 치료감호소에 의뢰해 김길태의 정신 상태에 대한 2차 감정을 한 결과 측두엽간질과 망상장애, 반사회적인격장애(사이코패스) 등 정신질환을 앓고 있다고 밝혀져 논란이 되고 있다.
검찰 수사와 1심 재판의 그의 정신 상태 감정 결과에서는 반사회적 인격장애 외에 특별한 증상이 발견되지 못했었다. 그러나 이번에 밝혀진 김길태의 측두엽간질은 극심한 경우 형법상 '심신장애'에 해당된다. 재판 중에 성범죄 흉악범이 심신장애에 해당되는 정신질환을 앓고 있다고 감정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생각과 감정에 문제가 생겨서 비현실적이고 폭력적인 행동으로 나타나는 망상이나 반사회적 인격장애와 달리, 측두엽간질은 뇌파 측정을 통해 물리적으로 확인된 병이다. 측두엽간질 발작이 일어나면 헛것을 보고 환청을 듣기 쉽다.
대한신경정신의학회에 따르면 자극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어떤 지각적인 체험을 하는 것을 환각(Hallucination)이라 설명하는데, 환각은 정신분열증에서 나타날 수 있는 가장 대표적인 증상으로, 앞쪽 두뇌의 활동량이 줄어들고 왼쪽 측두엽의 뇌활동이 비정상적으로 늘어나면서 생긴다.
뇌의 측두엽에 병변이 있으면 맛과 냄새의 환각이 나타나고, 후두엽에 병변이 있으면 환시가 나타나는 등 병소 부위에 따라서 환각의 양상이 달라진다. 메디어트 신경정신과 조철래 원장은 “일반적으로 이러한 환각 증세는 착각과 혼동되는데 착각은 외부의 자극이 있을 때 이 자극을 왜곡되게 인식하는 경우이므로 순간적이고 일시적”이라고 전한다.
측두엽의 안쪽은 뇌의 감정 회로를 이루는 '변연계'의 일부로, 특히 이곳에는 '편도체'라 불리는 호두알 만한 구조물이 있는데, 가장 기본적인 감정을 만들어내는 곳이다. 이곳에 자극이 생기면 공포, 우울 같은 증상을 경험한다. 측두엽간질이 있는 사람은 이 부근의 신경세포가 과도하게 활성화되면서 간질에 따른 여러 증상이 유발된다.
김이 범행 당시에도 발작 중이었다면, 정신이 몽롱한 상태에서 공포나 우울감에 사로잡혀 난폭한 행동을 저지른 뒤 발작이 끝나고 자신의 행동을 기억하지 못했을 것이다. 김은 검거 직후 "범행이 잘 기억나지 않는다"고 진술해온 바 있다.
김은 2005년 정신분열증 진단을 받은 뒤 간질약을 먹었지만 범행 전까지 수년에 걸쳐 간질약을 제대로 못 먹고 출소 후에는 그나마도 관리가 안 돼 흉악범죄로 이어진 것으로 보인다.
김과 같은 흉악범이 심신장애로 판명된 경우는 극히 드물다. 측두엽간질발작은 심신장애로 인정돼 정신과 치료를 받으며 형량이 줄어들어 사형을 면하게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