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초, 흑우, 흑돈… 유난히 ‘흑’자가 들어간 특산물로 유명한 가고시마를 다녀왔다. 가고시마는 ‘흑’자 특산물을 주로 하는 건강식은 물론 화산지형 덕분에 즐비한 온천과 태평양과 인접한 푸른 바다에서 즐기는 해양 스포츠의 천국이다. 최고의 웰빙여행지라 할 만하다. 가고시마의 다양한 매력 가운데 흑초를 찾아 보는 것이 이번 여행의 목적이었다.
흑초의 본고장, 5만여 개의 항아리 앞에 서다
무더웠던 여름, 항상 흑초와 함께했던 터라 흑초의 본고장인 가고시마로 떠나는 것은 큰 설렘이었다. 말로만 듣던 수만 개의 흑초 항아리를 마주하고 섰을 때는 살짝 감동이 밀려오기도 했다. 가고시마는 1년 내내 따뜻한 날씨 덕분에 발효가 가장 중요한 술과 식초로 유명하다. 우리나라의 안동소주와 비견할 만한 사츠마소주를 만드는 혼보주조공장 견학을 시작으로 가고시마 여행은 시작되었다. 술과 식초는 ‘발효’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 비슷하다. 알코올을 잡느냐 놓아주느냐에 따라 소주가 되고 식초가 된다.
가고시마에는 고구마를 재료로 한 소주, 현미를 재료로 한 흑초를 만드는 양조장이 여럿 있어 ‘발효’의 진수를 경험하기에 좋다. 어떤 곳은 갤러리를 통해 전통을 소개하고 있고, 어떤 곳은 레스토랑을 운영하며 자신의 흑초나 술을 응용한 메뉴를 선보이고 있다.
다양한 양조장 중에서도 ‘사카모토양조장’은 흑초의 원조라 불리며 일본에서 가장 비싼 흑초를 생산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비싼 이유는 단 하나다. 자연의 도움에 기다림의 미덕을 더하는 전통방식을 고수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카모토양조장은 가고시마 흑초제조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쿠로즈정보관’을 운영하고 있다. ‘쿠로즈’란 우리말로 흑초를 의미한다. 쿠로즈정보관 뒤로는 5만여 개의 흑초 항아리가 사쿠라지마를 등에 지고 늘어서 있다. ‘아….’ 고대하던 풍경이 눈앞에 펼쳐지니 할 수 있는 말이라고는 ‘아…’였다. 가고시마를 상징하는 화산인 사쿠라지마는 때마침 활동을 시작해 검은 먼지 구름을 뿜어내어 아름다운 풍경에 일조했다. 이곳의 흑초 항아리는 지난해 2년 전 4만여 개에서 현재 5만여 개로 늘었다. 찾는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 그만큼 일본에서도 웰빙바람과 함께 흑초가 인기를 얻고 있다. 사카모토양조장의 흑초는 우리나라 일부 백화점에서도 구입할 수 있다.
사카모토양조장의 쿠로즈정보관에 들어서면 먼저 NHK가 제작한 사카모도양조장의 다큐멘터리를 본다. 이 다큐의 주제는 ‘소리’다. 항아리에 마이크를 달아 발효되는 소리를 들려준다. 흑초 장인은 항아리마다 귀를 갖다대며 흑초의 발효상태를 소리로 분간한다. 들리는 소리는 발효 단계에 따라 ‘폭폭~’‘사그락사그락’, 보는 이들마저 숨죽이게 하는 고귀한 소리다. 사카모토양조장의 흑초는 기본 1년 이상 발효한다. 쿠로즈정보관의 타카무레이 부점장은 “사카모토양조의 가장 큰 비결은 바로 200년 이상 이어져 오고 있는 전통방식으로 흑초를 만드는 것에 있다. 대부분 현대식 속성방식으로 흑초를 생산하지만 우리는 전통 항아리 발효를 고집한다. 좋은 흑초를 만드는 데 항아리도 중요한 역할을 하는데, 한국 진주에서 항아리를 사온다”고 말했다. 그들은 오늘도 좋은 흑초가 만들어지기를 기다리며 자연에 순응하고 항아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
가고시마에는 사카모토양조 브랜드 외에 미츠칸, 타마노이 등 비교적 큰 흑초회사들이 있다. 이들은 보통 3개월 정도의 숙성기간을 거친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흑초 브랜드인 ‘샘표 백년동안’도 이들 같이 3개월간 숙성시킨 흑초를 판매한다. 3개월이지만 1년간 숙성된 흑초 못지 않은 영양성분과 맛을 자랑한다. 샘표는 발효미생물과 숙성조건 등을 최적화해 특허까지 받았다. 김치냉장고의 땅속발효기능 버튼을 누르면 금방 맛있는 김치가 만들어지는 원리와 비슷하다고 생각하면 된다. 이러한 신기술 덕분에 질 좋은 흑초를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에 마실 수 있게 되었다.
가고시마 여행에서 소주, 흑초 양조장을 방문하는 것은 큰 즐거움이다. 여기에 사쿠라지마의 장엄한 화산을 즐기고, 화산이 만들어낸 온천에 몸을 담가 심신의 스트레스를 풀어 준다. 온천성분이 스며나오는 모래를 온몸에 덮고 찜질하는 이브스키 해변도 가고시마의 명소다. 일본 최초의 국립공원인 하쿠시노이케 트레킹도 추천할 만하다. 거짓말처럼 사슴들이 눈 앞에서 뛰어논다. 일본 건국신화의 한 사람인 니니키미노코토를 모시는 기리시마신궁도 가볼 만하다. 주변 경관도 빼어난데다, 최근 이곳을 무대로 한 사극이 인기를 얻으면서 많은 일본인들이 찾고 있다.
젊고 건강한 삶을 위해 흑초를 마시자
흑초를 1년간 마시고 10kg을 뺀 사람을 만난 후 혹시나 하는 마음에 흑초를 마시기 시작했다. 거짓말처럼 한 달만에 3kg이 빠지고 피로감이 덜하다는 것을 체험하고 흑초 전도사를 자처하고 있다. 요즘 각종 생활습관병의 원인인 백미 대신 현미를 먹자는 움직임이 활발하다. 현미의 좋은 점은 책 한권으로 써도 부족할 만큼 많지만 사람들은 현미를 먹지 않는다. 좋은 건 알지만 가까이하기엔 맛이 없기 때문이다. 현미를 발효시켜 만든 ‘흑초’는 현미와 식초의 장점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꿀꺽 마시면 되니 이보다 편할 수는 없다. 현미를 발효해 만든 흑초는 초산, 유기산, 미네랄, 비타민뿐 아니라 과일 발효 식초에는 없는 아미노산이 풍부해 ‘식초의 왕’이라 불린다. 단백질을 구성하는 아미노산은 운동 효율과 뇌의 기능을 높여 주고 피부 건강과 다이어트에 효과를 발휘한다. 지방분해효소인 리파아제를 활성화하고 체내 콜레스테롤 수치를 떨어뜨린다.
전 세계적으로 웰빙에 이어 건강하고 젊게 살자는 ‘웰에이징’ 문화가 확산되고 있다. 최근엔 앞으로 인류의 평균수명을 130세로 보는 연구결과도 발표되었다. 미리미리 챙기는 손쉬운 웰에이징 습관, 흑초를 마셔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