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명품을 좋아하는 여성은 비단 ‘명품녀’뿐만이 아니다. 주변에서 명품에 열광하는 사람은 남녀를 불문하고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여대생 황모(22)씨는 “명품을 들고 다니는 친구들이 부러워 ‘짝퉁’이라도 들고 다닐까 고민했지만, 혹시라도 들통이 나면 더 창피할 것 같아 밥값이랑 교통비를 아끼고 아르바이트해서 번 돈으로 얼마 전 명품 가방을 하나 샀다”며 자랑스럽게 가방을 내보였다. 또 박모(27․男)씨는 “여자친구와 사귄 지 100일 되는 날 무리를 해서 명품 지갑을 선물했는데, 어느 때보다 좋아하더라”며 씁쓸하게 말했다.
유능한 직업, 높은 사회적 지위, 탁월한 미모… 사람들이 자기만족을 느끼는 방법은 여러가지가 있다. 명품중독에 빠진 사람들은 외적으로 돋보이는 것을 통해 자기만족을 느끼는 유형이다. 자기만족에 그치지 않고 다른 사람들의 눈에 자신이 어떤 모습으로 비춰질지를 고민하며 그들에게 인정받기를 원하는데, 심한 경우 자신에게 관심이 집중되지 않을 때 우울함을 느끼거나 화를 내기도 한다. 이러한 사람은 ‘히스테리성 성격장애’로 분류할 수 있다.
이주영 한국정신건강연구소 부소장은 “자존감이 낮거나 우울증을 앓고 있는 사람들이 히스테리성 성격장애에 걸려 명품중독에 빠지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명품을 통해 대리만족을 느끼는 것이다.
지난달 출간된 책 <스펜트>에서는 이같은 현대인들의 욕망과 소비문화에 대해 “물건을 구입할 때 사람들은 물건 자체가 갖고 있는 의미를 파악하기보다는 그 물건이 남들에게 보이는 이미지에 더 집중한다”며 “그 이유는 동물들이 짝짓기를 위해 화려한 모습을 뽐내듯 사람들 역시 짝짓기를 위해 본능적으로 명품 등을 통해 겉모습을 치장하게 되는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단순히 명품을 좋아하는 것과 명품중독에 빠지는 것 사이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그 둘을 구분하는 기준은 ‘생활에 방해되는 수준에까지 이르렀느냐’이다. 명품을 사기 위해 무리하게 빚을 내거나 빠듯한 생활비에서 뭉텅 떼어 낸 돈으로 명품을 산다면 ‘명품중독’에 해당된다고 볼 수 있다.
명품녀가 과연 명품중독일까라는 질문에 이주영 부소장은 “명품을 감당할 만한 충분한 경제적 여건이 뒷받침 되는 경우이기 때문에 중독이라는 표현은 적절하지 않다. 그러나 히스테리성 성격장애가 의심 된다”고 전했다.
우울증이나 낮은 자존감 때문에 생긴 명품중독이라면 그 부분에 관한 치료가 먼저 이루어져야 명품중독에서 벗어날 수 있다. 한국정신건강연구소에서 상담치료를 받았던 한 여성의 경우, 자녀들에게 명품을 주기적으로 사주는 명품중독에 빠졌었는데, 가장 먼저 요구되었던 치료는 다름 아닌 남편과의 불화를 극복하는 것이었다. 남편과의 불화가 자녀들을 물질적으로 치장하는 것으로 이어졌고 이것이 명품중독의 결과를 불러일으켰기 때문이다.
명품중독 치료는 대부분 상담으로 이루어진다. 충동을 통제하는 방법을 습득하거나 명품이 아닌 다른 건전한 부분에서 만족을 느끼게 하도록 심리치료가 가능하다. 그러나 상담을 통해서도 혼자서는 명품중독을 극복하기가 힘들다. 가족이나 친구들이 명품중독자 본인 자체만으로도 얼마나 가치 있는 존재인지를 깨닫도록 도와주는 것이 중요하다.
한편, <스펜트>에서는 과시적 낭비의 해결책으로, ‘카드를 집에 두고 쇼핑몰에 가기’나 ‘가장 비싸게 구입한 물건들의 리스트와 행복을 가져다준 것들의 리스트를 짜 보고 그것들이 몇 가지나 겹치는지 세어보기’ 등을 제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