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과 의사들은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특이한 사람들 아닌가요?”
“정신과 의사는 성숙해서 스트레스 안 받아 좋겠어요”
정신과 의사로서 자주 듣는 질문들이다. 나를 포함해서 내 주위의 정신과 의사들을 살펴보면 일반 의사들과 비교해 정서적으로 더 큰 문제를 갖고 있는 사람들은 아닌 것 같다. 그렇다고 다른 과 의사들에 비해 본래 성품이 더 성숙한 것도 아닌 것으로 보인다. 다만, 정신과 수련을 받고 정신과 의사 생활을 하면서 본래보다 더 안정되어가는 사람들은 많이 보게 된다. 나도 그 중 하나이다.
나의 청소년 시절을 돌아보면 난 그다지 ‘자존감’이 높지 않았던 것 같다. 청소년 시절 마른 체격에 여드름투성이고, 자존감은 낮았던 내게 잊지 못할 기억이 하나 있다. 여름수련회를 책임 맡아 진행한 적이 있었는데, 정신없이 2박 3일이 흘러갔다. 마지막 날 밤 참가자들이 두 개의 원으로 빙 둘러 서서 돌아가며 서로에게 한 마디씩 하는 시간이 있었다. 실수투성이로 수련회를 진행했던 나는 다소 낙담이 되어 사람들의 눈치를 살피며 악수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뜻 밖에도 많은 사람들이 수련회가 너무 즐거웠다며, 진행을 참 잘해주었다며 칭찬해주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인사치레로 건낸 말일 수도 있었겠지만, 사람들의 말 한마디 한마디는 당시 내 자존감을 회복시키기에 충분했다. 그리고 이후, 보다 자신감 있게 일을 해갈 수 있었고, 지금도 내 마음 속에 좋은 기억으로 자리하고 있다.
사실 낮은 자존감은 일부 사람들의 문제라기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자기 자신에 대해 왜곡된 평가를 내리는 경향이 있다. 누군가에게 인정받고 싶은 욕구는 끝이 없지만, 나를 둘러싸고 있는 현실은 그럴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른 사람의 칭찬과 긍정적 말은 정서적 안정감을 주고 자존감을 높여 주어 자신에게 감추어져 있던 긍정적 요소와 능력을 끌어낼 수 있게 한다.
반면 가족과 친구들로부터 받는 부정적 평가에 침울해하고, 실제 자신이 갖고 있는 장점마저 잃어버리는 경우도 종종 보게 된다. 진료실에서 만난 40대 남성 A씨는 실제 능력은 상당히 뛰어나지만 자신이 한 일에 만족하지 못하고 주위의 평가에 지나치게 민감하며 침울해 있었다. 상담을 하다 보니 ‘네가 그래가지고 어디 가서 뭘 할 수 있겠니’, ‘이런 식으로 밖에 못할 거면 넌 내 아들도 아니다’라는 말을 듣고 자랐다고 한다. 또한, 결혼 후에도 ‘당신은 사람이 도대체 왜 그 모양이야’라는 부인의 말을 자주 듣고 있었다. 물론 A씨의 기억과 달리 가족들이 실제로 그렇게 말한 건 아닐 수도 있지만, A씨의 마음은 그렇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중요한 것은 내가 동료에게, 가족에게 하는 한 마디의 말이 나의 의도와 달리 그를 상처 주고 움츠러들게 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보다 성숙한 것은 주변 사람의 평가에 상관없는 내적 안정감을 갖는 것이다. 하지만 사람과 사람의 만남으로 이루어지는 우리의 삶에서, 서로에게 하는 칭찬과 긍정적 말은 자기 존중감과 안정감을 높이는 데 여전히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다. 때로는 스스로를 격려하고 칭찬하는 것이 도움될 때도 있다. ‘사람이 완벽할 순 없어, 그래, 이 정도면 나 괜찮지 않아 이 정도면 잘 한 거야’라고 스스로를 칭찬하는 습관이 ‘난 어쩔 수 없어, 나 같은 게 뭘’이라는 생각보다 우리의 마음을 훨씬 더 풍요롭게 할 것이다. 사람들은 실제보다 자기를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의 고민을 듣고 공감하고 격려하는 것이 직업인 정신과 의사인 나도, 감추어진 낮은 자존감이 끊임없이 문제를 일으키곤 한다. 하지만 이런 완전치 못한 내 모습이 자존감의 문제로 힘겨워 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이해하는 데 오히려 도움이 되는 것 같아 감사하다. 어쩌면 정신과 의사로 살아가면서도 자존감의 문제를 평생 해결하지 못한 채 힘겨워 할 지 모르겠다. 하지만, 완전하지 못한 자존감을 갖고 있는 ‘그대로의 나’를 인정하고 받아들일 수 있게 된 것은 정신과 의사로서 얻게 된 큰 복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