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얼마 전 개봉한 전도연 주연의 영화 ‘하녀’를 보다 갑자기 기자의 친구는 “저건 말도 안 되는 얘기야!”라고 흥분했다. 의학을 전공한 친구가 지적한 그 장면을 이해하자면 우선 전체적인 줄거리를 알아둬야 할 필요가 있다. (대신 약간의 스포일러가 될 수 있는 부분이 있음을 감안하고 읽으시길 바란다.)
식당일을 하며 친구와 함께 살아가던 은이(전도연)는 훈(이정재)이 주인으로 있는 대저택의 가정부 모집공고를 보고 이력서를 보낸다. 이 저택의 집사역할을 하는 ‘큰 하녀’ 병식(윤여정)은 면접에서 전도연의 착한 심성을 높이 사 하녀로 들이기로 결정한다.
집에 들어온 은이는 열과 성을 다해 저택의 ‘하녀’ 노릇을 한다. 그런 은이를 훈은 점점 야릇한(?) 시선으로 바라보기 시작한다. 그러던 중 훈은 임신한 아내가 잠든 틈을 타 은이를 잠자리로 유혹하고 둘은 점점 빈번한 관계를 맺게 된다.
하지만 눈치 빠른 병식이 둘의 관계를 파악하고, 은이의 입덧과 행동으로 임신을 한 사실까지 알아낸다. 병식은 바로 훈의 장모에게 이 사실을 알린다. 장모는 은이가 지금은 자신이 임신한 사실을 모르지만 나중에 사실을 알게 되면 그 아이를 낳아 딸을 위협하고 사위를 넘볼 수 있다는 불안감에 사로잡힌다. 장모는 은이 뱃속의 아이를 유산시키기 위해 높은 사다리에 올라가있던 은이를 실수인 척 밀어 떨어뜨리고, 중경상을 입힌다.
문제가 되는 장면은 이때부터이다. 병원으로 실려간 은이는 치료를 받기 전 CT검사를 받은 뒤 입원한다. 침대에 누워 치료를 받고 있는 은이에게 의사는 “입원 전에는 잘 몰랐는데 영상을 보니 아이가 들어서 있네요, 여기 조그맣게 보이시죠?”라고 말한다.
하지만 이런 장면은 친구의 지적처럼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서길준 서울대병원 응급의학과 교수는 “가임기 여성의 경우 초를 다투지 않는 응급상황이 아닌 이상, 반드시 소변검사로 임신 여부를 확인한 다음에 CT 등의 방사선 검사를 한다. 방사선 촬영 시 꽤 많은 방사선이 체내 투입되기 때문에 태아를 기형으로 만들 소지가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서 교수는 “응급으로 실려 온 여성에게 임신 가능성이나 임신여부를 물어서 아니라고 대답하는 여성들까지도 많은 수가 실제로 임신한 상태인 경우가 있다. 그렇게 해서 CT검사를 해도 나중에 태어난 아이에게 만의 하나 문제가 생기면 병원의 책임으로 몰릴 수 있기 때문에 병원에서는 반드시 소변검사로 사전 검사를 한다”고 말했다.
만약 환자의 의식이 전혀 없거나 초를 다투는 상황이라 소변검사를 할 수 없을 경우 환자의 보호자 등에게 CT촬영 동의서를 얻은 후 영상촬영을 한다. ‘하녀’의 은이 같은 경우 사고 후에도 의식이 있고 움직일 수 있을 정도였기 때문에 소변검사는 반드시 거쳐야 할 항목이었다는 것. 임신을 한 여성이라면 배 위에 특수 금속을 대고 CT촬영을 하거나 다른 방법으로 다친 부위를 살펴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영화를 보고나온 뒤 친구의 한마디가 가관이다. “영화에서는 의사가 CT촬영 후에 은이를 불러 뱃속에 아이가 있다는 말을 하면서, 둘의 분위기가 훈훈했지? 내가 병원에서 ‘그런 짓’ 저질러 놨으면(소변검사나 동의서 없이 함부로 CT 찍었으면) 그 자리에서 산모한테 머리채 잡아 뜯겼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