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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 태교가 효과 있다고? 실제 실험해 보니
김맑아 헬스조선 기자 | 사진 조은선 기자
입력 2010/04/09 08:48
최근 예비 엄마들 사이에 영어태교 붐이 일고 있다. 뱃속에 있는 아기에게 영어를 들려주면 아이가 장차 영어를 잘 구사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아직까지 영어태교가 아기에게 직접적으로 어떻게 영향을 주며, 어떤 결과를 내는지에 대한 명확한 연구는 없다. 그러던 중 최근 영어태교 붐에 힘을 싣는 연구가 발표되었다.
태아에게 두 가지 언어를 들려준다?
지난 2월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대학 연구팀은 엄마 뱃속에서 두 가지 언어를 들은 아이는 태어나자마자 두 언어에 모두 관심을 보이고, 또 두 언어가 다르다는 사실을 구별할 줄 안다는 연구결과를 <심리과학(Psychological Science)>에 발표했다. 연구팀은 임신 기간 중에 엄마가 영어만 사용한 경우와, 영어와 타갈로그어(필리핀 고유 언어)를 모두 사용한 경우 갓난아이가 두 언어에 어떻게 반응하는지 관찰했다.
갓난아이가 흥미를 잃을 때까지 영어와 타갈로그어를 번갈아 가며 들려주었다. 그 결과, 엄마가 영어만 사용한 아이는 타갈로그어가 나오면 금세 흥미를 잃었지만, 엄마가 다국어를 사용한 아이는 두 언어 모두에 흥미를 가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팀은 “뱃속에서부터 언어 선호도에 차이가 난다”며 “두 언어를 듣고 태어난 신생아는 두 언어 모두 관심을 갖기 때문에 더 많이 배울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이에 대한 지나친 맹신은 금물이라고 말한다. 손석한 연세신경정신과 전문의는 “이번 연구를 태아 때의 자극이 추후 언어를 잘 구사하게 한다는 직접적인 연구로 보긴 어렵다”며, “아이가 언어를 익히는 것은 해당 언어를 구사할 수 있는 환경 속에서 다른 사람과 상호작용을 통할 때 가능하다. 태아에게 영어를 들려준다고 해서 태아가 영어를 ‘언어’로 인식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태교보다 출생 후 환경이 더 중요
단 1%의 가능성이라도 믿고 영어태교를 하고 싶은 게 부모 마음이다. 하지만 태교보다 출생 후 환경이 더 중요하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서유헌 서울대의대 약리학교실 교수는 2003년 ‘학습능력이나 기억력은 태아기 때 환경보다는 출생 후 환경에 더 큰 영향을 받는다’는 연구결과를 <실험생물학회지(FASEB)>에 발표했다.
서 교수는 “태아기와 출생 후 좋은 환경에 있었던 그룹은 학습능력과 기억력이 증가하고, 신경분화와 시냅스 회로 형성이 잘돼 있었다. 하지만 태아기 때 좋은 환경에서 지내다가 출생 후 스트레스 환경에 노출된 그룹은 학습능력과 기억력이 과도하게 나빠졌다”며 “태아기 때 환경보다는 출생 후 환경을 어떻게 만들어 주느냐가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태아기 때 과도한 태교 등이 스트레스로 작용하면 출생 후 기억력과 신경세포 회로 형성 등에 나쁜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손석한 전문의는 “우리말도 제대로 못 하는 1~3세 아이에게 과도하게 영어조기교육을 하면 오히려 아이가 스트레스를 받아 우리말도 더디게 할 수 있다. 이때는 뇌의 발달과 성숙이 가장 활발하게 이뤄지는 시기이므로, 정서적으로 골고루 자극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언어교육은 7세 이후 적당
서 교수는 “뇌 발달을 고려한다면, 언어 기능을 담당하는 측두엽이 발달하는 7세 이후에 언어 학습을 시키는 것이 효과적”이라고 말했다. 초등학교 시기는 언어 기능을 담당하는 뇌가 집중적으로 발달하기 때문에 조금만 자극을 줘도 쉽게 이해하고 재미있어 한다. 너무 빨리 제2외국어 교육을 하면, 아이가 스트레스를 받을 뿐 아니라 오히려 흥미를 떨어뜨려 거부감이 들 수 있다. 글이나 테이프를 이용한 딱딱한 문법 위주 교육보다는 놀이 등 흥미를 자극할 수 있는 방법이 좋다. 영어를 자연스럽게 사용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도 중요하다. 아이 혼자 영어를 익히게 하는 것보다는 영어로 대화할 상대방을 만들어 주어, 상호작용을 하는 것이 좋다.
도움말 손석한(연세신경정신과 소아청소년정신과 전문의), 서유헌(서울대의대 약리학교실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