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들 몰리는 임상시험 체험기
불과 5년 전만 해도 임상시험은 의대나 약대, 간호대 생들의 '쏠쏠한' 돈벌이였다. '인간 마루타'라는 달갑지 않은 아르바이트지만 큰 힘 들이지 않고 돈을 벌 수 있어 그들은 기꺼이 마루타가 됐다. 의학 발전에 이바지한다고 너스레를 떨 수도 있었다. 그러나 임상시험 건수가 급증하고 '짭짤하다'는 소문이 돌면서 일반 대학생들까지 몰려들고 있다. 한 임상시험 중개 사이트는 회원 수 9만 명을 넘어섰다. 한번 재미를 붙이면 계속 병원 주변을 서성이게 된다는데... 임상시험으로 돈을 벌고 있는 그들에겐 어떤 사정과 애환이 있는지, 마음 깊숙한 곳으로 들어가 봤다.
▶ 고시가 붙는 그 날까지, 한OO(32) 씨
대학을 졸업한 뒤 5년 동안 계속 고시공부를 하고 있는 일명 '장수생'이다. 내가 이토록 오래 고시 준비를 할 수 있는 것은 2년 전부터 시작한 임상시험 덕분이다. 매달 학자금 대출 원금 상환을 하고 고시 준비까지 하느라 생활고에 시달리고 있을 때 학교 게시판에서 '알바 모집' 광고를 봤다. 공부할 시간을 뺏기지 않고도 손 쉽게 돈을 벌 수 있을 것 같아 '마루타 알바'를 시작했다. 시작하고 보니 처지가 비슷한 수험생들이 많아 위안이 됐다. 정말 공부하는 데는 거의 방해가 되지 않는다.
아침마다 시간 맞춰 병원에 다녀오는 건 귀찮지만 덕분에 아침에 규칙적으로 일어날 수 있다. 고기나 야식을 먹지 말아야 하고, 술을 자제해야 하는 규정은 오히려 건전하고 규칙적인 식사습관을 유도해 고시 생활을 더 건강하게 만들고 있다. 하지만 가끔은 '이 나이에 뭘 하고 있나'하는 생각도 든다. 요즘은 빨리 합격해서 직접 일을 해서 돈을 벌고 싶다는 생각이 투지를 더 불태운다. 고시에 합격할 그 날까지 싫으나 좋으나 임상시험을 계속할 예정이다.
▶ '8인조 임상시험단' 리더, 강OO(27) 씨
임상시험에 대한 정보를 수집해 동네와 학교 친구 8명과 함께 단골로 참여한다. 약마다 틀리지만 한번 시작하면 몇 일씩 출입이 통제된 상태서 '갇혀'있어야 한다. 친구들을 끌어 들인 것은 이왕이면 재미있게 임상시험을 즐기자는 생각에서다. 임상시험을 겁내는 사람도 많은데, 실제로 부작용이 생기는 경우는 거의 없다. 가장 기억에 남았던 것은 발기부전치료제 임상시험이다. '예쁜' 간호사가 나눠 준 약을 먹고 30분쯤 지나자 약효 때문에 바로 몸에 반응이 왔다. 속에서 '힘'이 불끈불끈 솟았고, 그것을 주체하기가 사실 쉽지 않았다. '사고'를 치지 않고 무사히 끝난 것을 보면 우리 의지도 대단했던 것 같다. 돌이켜 보면 이 때 간호사들은 우리에게 필요 이상으로 쌀쌀하게 대했던 것 같다. 우리뿐 아니라 간호사들도 틀림없이 긴장했을 것이다.
▶ 만성질환을 갖고 있는 신OO(24) 씨
현재 대학 휴학 중인데 나에겐 평생 짊어지고 가야 할 만성질환이 있다. 나는 어떤 회사가 내 병과 관련된 어떤 약을 개발하는지를 알기 위해 임상시험을 자원한다. 물론 돈에 관심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보단 하루 빨리 좋은 약이 개발됐으면 하는 바램에서 임상시험을 자원한다. 병에 대한 최신 정보도 얻고, 돈도 벌고, 의학 발전에도 이바지 할 수 있으이 얼마나 좋은 기회인가? 내가 참가하는 임상시험의 참가자들은 대부분 같은 병을 앓는 환자들인데 여러 번 참여하다 보니 그 중엔 눈에 익은 사람도 있다. 짧은 임상시험 기간 동안 서로 병에 대해 이야기도 하고, 병이 없는 인생에 대한 꿈을 꾸기도 한다. 친해질 만 하면 시험이 끝나서 아쉬운 감정도 든다.
▶ '은퇴'를 강요 당하는 백OO(27) 씨
3년 여 동안 8차례 임상시험을 받은 취업 준비생이다. 너무 오래, 너무 많은 시험에 참가해서 그런지 이젠 주사를 맞아도 '약 발'이 잘 안 듣는 것 같다. 이젠 후배들에게도 눈치가 보여 슬슬 물러 날 채비를 갖춰야 할 것 같다. 8번의 임상시험 중 돈을 못 받고 끝난 작년 임상시험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임상시험을 할 때는 몇 일 동안 아침마다 정해진 시간에 병원에 가야 한다.
정확한 시간에 약에 대한 반응을 검사해야 하므로, 조금이라도 시간을 어기면 시험으로서의 의미가 없어진다. 그 날은 병원에 마지막으로 가는 날이었는데, 늦잠을 자서 2시간 정도 늦게 갔다. 시험기간 내내 규칙을 잘 지켜서 보상비 100만원 중 90만원은 받을 줄 알았는데 나의 오산이었다. 병원에서는 달랑 '차비' 몇 만원만 챙겨줬다. 그 때 이후 아침에 병원에 가야 할 일이 있으면 전날 자기 전 알람 시계를 서 너 번씩 확인하고, 늦잠을 자서 허겁지겁 뛰어나가는 꿈도 꾼다.
임상시험(Clinical Trial)이란?
신약 또는 제너릭(복제 의약품)의 효과를 검증, 평가하는 과정이다. 임상시험 보상금은 적게는 수 만원에서 많게는 1백 만원이 넘는다. 임상시험이 '돈벌이 수단'으로 전락하는 것을 막기 위해 지나친 고액 임상시험은 병원 측에서 조정, 자제하는 편이다. 입원해서 시험을 받는 경우도 있고 정기적으로 병원을 다니면서 시험을 받는 경우도 있다. 검사 기간과 모집 인원 등은 시험 종류에 따라 다르다. 부작용이 생기면 임상시험 의뢰자가 책임을 진다. 일시적인 부작용은 가끔 생기지만 심한 부작용은 드물다.
그러나 100% 안심할 수는 없으니 임상시험 기관은 가급적 믿을 만한 병원을 고르는 것이 좋다. 시험기관 입장에선 호르몬 변화가 많은 여자보다는 남자를 선호한다. 임상시험 계획서는 식약청과 임상연구윤리심의위원회의 사전심의를 거친다. 현재 국가에서 지정 받은 임상시험 기관으로 전국 100여 개 병원인데 이 중 국가임상시험사업단 지역임상시험센터 지정을 받은 곳은 서울대병원, 부산백병원, 경북대병원, 전남대병원, 아주대병원, 세브란스병원, 전북대병원, 서울아산병원, 강남성모병원, 인하대병원, 삼성서울병원, 충남대병원 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