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얼굴을 기억하지 못하거나 잘 구별하지 못하는 것도 병이다. 의학용어로는 '얼굴맹(face blindness)' 또는 '얼굴 인식 불능증(prosopagnosia)'이라고 한다. 이 질환이 알려진 지는 꽤 오래됐으나 자세한 연구결과들은 최근에야 나오고 있다.
미국 하버드대 켄 나카야마 교수는 1600명을 대상으로 '얼굴 기억 능력'을 테스트한 결과 참가자의 2%가 얼굴맹으로 나타났다고 과학 전문지 사이언스지에 발표했다.
얼굴맹 또는 얼굴 인식 불능증이 심각해지면 아내와 자식은 물론 자신의 얼굴도 못 알아보는 상태가 된다.
1956년 보도된 최초의 환자 사례를 보면 교통사고 후 3주간 의식 불명 상태에 있다가 깬 뒤 다른 문제는 없었는데 오직 얼굴 인식만 제대로 하지 못했다고 한다. 뇌졸중에 걸렸다가 회복한 뒤 양을 키운 농부의 경우 수많은 양들을 구별하고 이름까지 붙여주었지만, 정작 사람들의 얼굴은 구별하지 못했다.
얼굴맹이 왜 나타나는지는 아직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가장 일반적인 설명이 사물의 모양과 감촉을 처리하는 뇌의 '방추회'(측두엽과 후두엽의 중간) 부분이 뇌졸중 등의 이유로 인해 손상돼 사람 얼굴을 인식하는 데 문제를 일으켰기 때문이라는 것. 자동차 사고나 총상 등도 원인으로 알려져 있다. 최근에는 유전적 요인이 작용한다는 연구결과도 나와 있다.
독일 뮌스터대 인간유전학연구소 켄너크네히트 박사는 의학유전학저널 최신 호에서 '얼굴맹이 뇌 손상에서 비롯될 수 있지만, 원래는 특정 가계에서 나타나는 유전 질환'이라고 밝혔다.
얼굴맹은 사회생활에 지장을 주지만, 이보다 더 심각한 것이 '표정 인식 장애'다. 표정 인식 장애는 상대방의 표정을 봐도 기분을 알아채는 능력이 없는 것이다.
서울성모병원 정신과 이창욱 교수는 "감정과 관련된 기억을 담당하는 뇌의 한 부위인 '아미그달라'라는 곳이 고장 나면 상대방이 화가 났는지, 기분이 좋은지를 알아보지 못한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주위 사람들로부터 '분위기 파악을 못한다' '눈치가 없다'는 등의 핀잔을 듣기 쉽다. 표정 인식 장애는 여성보다 남성에게 훨씬 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