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정보
한약 복용 후 혈액암으로 사망, 한의사의 과실은?
취재 심재훈 기자 | 사진 신지호 기자
입력 2009/05/15 10:50
유비무환! 의료사고 & 소송 관련 법률 상식 3탄
한약 복용 후 혈액암으로 사망, 한의사의 과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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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약 복용 후 혈액암으로 사망, 한의사의 과실은?
의료법률에 대한 지식이나 정보가 부족해 제때 대처하지 못하는 독자들을 위해 <월간 헬스조선>은 의료사고ㆍ소송 Q&A를 연재한다. 대외법률사무소 등 의료사고 전문 로펌의 도움말과 사례들을 통해 우리에게 언제라도 닥칠 수 있는 의료사고와 소송에 관한 정보를 만나보자.
2살 아이, 한약 복용 후 이상 증상
지난해 김정현(36 가명) 씨는 당시 2살인 딸아이의 식욕부진 때문에 한의원을 찾아갔다. 박과실(가명) 한의사는 진맥한 뒤 “체한 것이 주증상”이라며 한약을 처방했다. 한약 복용 후 1주일, 김씨의 딸은 복통을 호소했고, 검고 풀어지는 변을 보기 시작했다. 김씨는 박 한의사에게 이러한 증상을 설명했다.
그러나 한의사는 “장의 나쁜 기운이 빠져나올 때 생기는 자연스런 현상이다. 차분히 기다리면 나아진다”며 한약을 추가로 처방했다. 그러나 증상은 나아지지 않았다. 전과 동일한 증상이 계속됐고, 김씨는 한의사를 다시 찾아가 해결해 줄 것을 요구했다. 한의사는 “부모가 조급해 하면 도움이 되지 않는다. 자신을 신뢰해 달라”며 더 강한 한약을 처방했다.
2개월 뒤 혈액암 판정, 8개월 뒤 사망
2개월이 지났지만 이상 증상은 멈추지 않았다. 김씨는 소아과를 찾아갔다. 딸아이의 증상을 진료한 의사는 “혈액질환이 의심된다. 서둘러 대학병원으로 옮겨라! 정밀 검사를 받아봐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딸아이를 대학병원으로 옮긴 김씨는 충격에 빠졌다. ‘중증의 재생불량성 빈혈(혈액암)’ 진단을 받은 것이다. 김씨의 딸은 골수이식 수술을 기다리다 8개월 뒤 세상을 떠났다.
박과실 한의사의 과실은 무엇?
이 사건에서 박 한의사는 과실은 무엇일까? 한의사가 처방한 한약 때문에 혈액암이 발병한 것일까? 그렇지 않다면 박 한의사의 과실은 없는 것인가? ‘경과 관찰주의 의무 위반’의 과실은 어떨까? ‘설명 의무 위반’의 과실은 물을 수 없을까? 이 사건은 최재혁 변호사가 진행한 실제 사건이다. 재판 과정에서 문제된 쟁점에 대해 살펴보자.
쟁점 1. 한약 때문에 혈액암이 생겼나?
이 부분은 인정되지 못했다. 한약 성분검사 결과, 혈액암을 일으킬 톨루엔 등 유독성 물질이 나오지 않았다.
쟁점 2. 경과 관찰의무나 전원의무를 위반한 것은 아닐까?
이 부분은 인정됐다. 환자가 한약 복용 뒤 계속적인 고통을 호소할 경우 ‘대안’을 찾았어야 했다. 자신의 진단과 처방이 잘못되었거나, 자신이 처방한 한약이 환자의 체질에 맞지 않을 가능성 또는 환자에게 다른 질병이 있을 가능성 등을 염두에 두고 한약의 복용을 중단시켰어야 했다.
용량을 줄이면서 예후를 살펴보거나 복통의 정확한 원인을 파악하기 위해 양방병원과의 협진 또는 추가적인 검진 등을 권유했어야 했다. 박 한의사는 환자의 경과에 관한 주의 관찰 의무를 이행하지 않았다. 동일하거나 약효가 더 강한 한약을 추가로 처방, 투약한 것은 ‘잘못’으로 인정됐다.
쟁점 3. 설명 의무를 위반한 것은 아닐까?
이 부분 역시 인정됐다. 한의사의 설명 의무는 모든 단계에서 이뤄져야 한다. 최초 진단, 한약 처방시에만 설명 의무가 있는 것이 아니다. 경과의 변화에 따른 추가 진단, 추가 한약처방 등 진료의 모든 단계에서 발생하는 것이다. 추가적인 진단이나 처방을 실시할 때도 자세하게 설명해야 한다.
‘의심해 볼 수 있는 병증’, ‘추가 처방약의 의미와 필요성’, ‘약의 부작용과 위험성’ 등에 대해 말해줘야 한다. 환자로 하여금 추가 처방을 받을지, 아니면 다른 선택을 할지 스스로 결정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걱정 말라, 약을 더 먹으면 낫는다, 참고 기다려라’ 등의 말로 다른 선택을 할 기회를 빼앗으면 안 된다. 박 한의사는 설명 의무를 다하지 않았다.
결론! 한의사에게 손해배상 책임이 있다!
한약으로 인해 혈액암이 발병한 것은 아니라 할지라도 ‘경과관찰의무’나 ‘전원의무위반’, ‘설명의무위반’의 과실이 인정됐다. 진료과정에서 적절한 치료를 받을 기대권이 침해되었다는 점에 대한 손해배상 책임이 인정된다.
의료법에 대해 알려주는 최재혁 변호사는 누구?
대외법률사무소 변호사인 최재혁은 현재 녹색소비자연대 소비자권익변호사단, 사단법인 대외법률사무소 연구원, 대한치과의사협회 의료광고심의위원회 위원, 대한치과의사협회 의료법 정책의원, 서울지방변호사회 파산지원단 간사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2005~2007년 대한의사협회, 대한피부과개원협의회, 대한공중보건의사협의회, 주식회사 에임메드 고문 변호사, 가톨릭대학교 보건대학원 외래교수로 활동했다. 앞으로 <월간 헬스조선>과 함께 의료사고&소송 관련 법률 정보를 제공한다. 의료사고 관련 법률이 궁금한 독자는 <월간 헬스조선> 편집부에 사례를 보내면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사연 보낼 곳 : 이메일 jhshim@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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