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1㎝ 신고 엑스선 촬영해보니…

올 여름 패션의 주요 키워드의 하나가 '킬힐(kill heel)'이다. 끝이 뾰족하고 뒷굽이 무척 높은 하이힐이 킬힐.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하이힐 굽 높이는 5~7㎝였지만, 최근에는 10㎝ 이상인 경우가 많으며, 심지어 15㎝ 이상인 하이힐도 있다.
하이힐이 엄지발가락의 변형을 초래하는 등 발 자체에만 영향을 주는 것은 아니다. 전문의들은 "디스크(추간판탈출증) 등 오히려 허리에 더 큰 부담을 주는데 이 문제가 간과되고 있다"고 말한다.
대학 입학 이후 20여 년 간 거의 매일 5~7㎝ 높이의 하이힐을 신었다는 김정신(39)씨는 "어느 순간부터 구두만 신으면 허리가 아팠다. 결국 재작년 여름에는 허리가 뻐근해 한 발짝도 움직이기 힘든 상태가 돼 병원에서 두 달간 치료를 받았다. 지금은 하이힐은 고사하고 3~5㎝ 높이의 구두도 못 신는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굽이 높은 하이힐이 척추에 얼마나 큰 부담을 줄까? 이를 알아보기 위해 한양대병원 관절재활의학과 박시복 교수와 함께 간단한 실험을 했다. 김서경(37·회사원), 김혜원(24·대학생)씨에게 굽 높이가 각각 다른 4켤레의 구두를 신긴 뒤 척추 X선 사진을 찍었다.

김혜원 씨는 맨발 상태로 척추 X선을 찍었을 때 첫 번째 요추(허리뼈) 아랫면과 첫 번째 천추(엉덩이뼈) 윗면이 이루는 각도가 54.58도였다. 3㎝ 높이 구두를 신었을 때 이 각도는 63.06도, 7㎝ 높이 구두를 신었을 때는 65.27도, 11㎝ 높이 구두를 신었을 때는 69.10도까지 커졌다. 맨발일 때와 하이힐을 신었을 때 척추 뼈가 휘어진 각도는 14.52도나 차이가 났다. 김서경 씨 역시 맨발 상태에서 X선을 찍었을 때에는 57.69도였던 허리 각도가 11㎝ 높이의 하이힐을 신었을 때에는 63.63도로 확 커졌다. 박 교수는 "요추와 천추가 이루는 각도는 50~60도가 정상이다. 이 각도가 60도 이상이면 척추 뼈가 병적으로 휘어진 요추 전만증으로 진단한다. 물론 하이힐을 신은 상태에서 60도 이상 휘어졌기 때문에 요추 전만증으로 진단할 수는 없으나, 허리에 심하게 부담이 가해진 상태인 것은 틀림없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