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차장 박모(40세)씨는 얼마 전 신입사원 환영회에서 심상치 않은 가슴통증을 느꼈다. 잠깐 쉬니 또 괜찮아지는 것 같아 노래방에서 호프집까지 빠지지 않고 참석했는데, 집에 돌아오는 길에 참을 수 없는 가슴통증과 호흡곤란이 계속돼 응급실에 실려 갔다. 의사는 “자칫 생명까지 잃을 뻔 했다. 가끔 경험하는 폭음과 흡연 때문에 심장혈관에 무리가 왔다”고 말했다.
비단 박 차장만의 얘기가 아니다. 우리나라 직장인의 심장 건강에 ‘빨간 불’이 켜졌다. 직장인에게 술은 거부할 수 없는 벗으로 좋든 싫든 술자리가 생기고, 어김없이 술을 들이킬 수 밖에 없다. 술이 1~2잔에서 끝나면 다행인데, 대부분 2차 3차로 이어져 과음 폭음으로 이어지는 것이 문제다.
하지만 과음은 치명적인 위험을 부른다. 다음날 속 쓰림, 피로의 후유증만 남기는 것이 아니라 돌연사까지 일으키는 무시무시한 심장질환을 유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추위가 기승을 부리는 가운데 폭음을 하게 되면서 심장질환으로 응급실에 실려가는 직장인이 무척 많다. 부천 세종병원의 조사에 따르면 12월과 1~2월 심장질환으로 병원 응급실을 찾는 비율이 여름철(6~8월)보다 40% 가까이 높았다.
술 많이 마시는 우리나라는 심장병으로 인한 사망 위험성이 유난히 더 높다. OECD가 최근 공개한 ‘건강지표 2007’ 보고서에 따르면 OECD 가입국가 중 우리나라는 급성심근경색으로 입원 후 사망하는 비율이 2위로 심각한 상황이다.
세종병원 심장내과 황흥곤 부장은 “겨울철 갑자기 찬 공기에 노출되면 말초동맥이 수축돼 혈압을 상승시키고 심장에 커다란 부하를 주게 된다. 고혈압 환자의 경우 혈압이 급상승하여 급성심근경색뿐만 아니라 뇌출혈로 쓰러질 가능성도 높아진다”고 말했다. 여기에 송년회와 신년회로 인한 과음과 흡연이 더해지면 심장의 부담은 배로 커지는 것이다.
평소 고혈압, 고지혈증, 당뇨병, 비만 등 급성 심장질환의 위험요소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심장질환 위험이 몇 배 더 높다.
술 때문에 생기는 심장병 중 대표적인 것이 ‘알코올성 심근병증’이다. 알코올성 심근병증은 심장질환의 1/3을 차지하는데, 심장 근육의 손상으로 심장이 늘어나는 질환이다. 일정한 수축과 이완 작용으로 심장의 펌프기능을 담당해야 하는 심장근육이 손상돼 약해지게 되면 심장이 늘어진다. 심장근육이 확장되고 이완되면서 심장의 수축력에 이상이 생기고, 이것이 만성 심부전증으로 발전해 확장성 심근병증이 생기게 되는데 그 원인이 알코올인 경우 알코올성 심근병증이라고 부른다.
알코올성 심근병증의 증상은 전신 피로, 가슴 두근거림, 호흡곤란, 앉아서 상반신을 앞으로 구부리지 않으면 호흡이 곤란한 상태 등이 대표적이다. 평소 술을 마시지 않던 사람이 갑자기 과음을 했을 때 호흡곤란을 느끼는 것도 이런 증상의 하나로 볼 수 있다.
그러나 과음으로 인한 돌연사 등 심장질환을 막는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술을 안 마시거나, 적당히 조금만 마시면 된다.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푸념하는 사람이 많겠지만, 적당 음주량을 어느 정도 알고 마시는 것이 그렇지 않은 것보다 훨씬 도움이 된다.
일반적으로 건강에 악영향을 미치지 않는 정도의 알코올 섭취량은 하루 30g 이하다. 알코올 함유량 20%의 소주 한 잔에는 약 8g의 알코올이 들어있다. 맥주로는 360㎖ 한 캔에 약 13g, 40~50%의 양주나 12% 내외의 와인은 각각의 잔으로 한잔에 15g 정도의 알코올이 함유되어 있다. 따라서 주종별로 소주는 3잔, 맥주 2캔, 양주나 와인 2잔 이하가 하루 섭취량으로 적당하다.
실외에 나갈 때는 충분히 옷을 껴입고 나가야 하며 목도리나 머플러 등을 이용해 찬바람에 노출되지 않도록 최대한 노력해야 한다. 술자리 흡연도 자제해야 한다. 흡연은 관상동맥 질환의 발생률을 2~4배 증가시키며 혈관을 수축시키고, 혈액 응고를 촉진해 혈전증을 일으키기 쉽다. 따라서 금연만으로도 급사를 50% 감소시킬 수 있다.
회식자리에서 섭취하는 과도한 육류, 운동부족으로 인한 체중 증가 등은 심혈관질환을 발생시키는 중요한 요인이다. 이러한 생활습관은 혈관에 찌꺼기를 쌓이게 한다. 따라서 심장질환 예방을 위해서는 흡연, 운동, 식생활 등 생활습관을 바꾸는 것이 중요하다.
평소 심장에 이상을 느끼는 사람은 당장 병원에서 검사를 받아보는 것이 좋다. 심전도, 심장초음파검사, 흉부 X-선 촬영, 관상동맥 조영술, 심장 내부 혈압측정, 24시간 심전도 등 심장상태를 세심히 살피는 검사가 직장인에겐 필수항목이다.
만약 알코올성 심근병증으로 인한 심장근육의 기능 감소가 확인되면 그날부터 금주가 필요하다. 심장병의 진행을 막음과 동시에 혈액을 전신으로 내보내는 좌심실의 수축능력을 회복시킬 수 있으므로 당장 술잔을 내려놓는 용기가 필요하다. 만약 심장에 이상이 있는 사람이 지속적으로 술을 마시는 경우 환자의 40~50%는 3~6년 내에 사망할 확률이 높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급성 심근경색을 의심할 수 있는 체크리스트
① 가슴 가운데가 뻐근하게 아프고 누르는 듯 조여 온다
② 숨이 차고 심장이 두근거리고, 구역질, 식은땀 어지러움이 동반한다
③ 가슴으로 느껴지는 증상이 배, 팔, 목, 턱, 배 위쪽으로 퍼진다
-이런 증상이 느껴지면 곧바로 병원 응급실로 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