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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론 빠르게 때론 천천히 흡수… 약 디자인엔 비밀이 숨어 있다
정시욱 헬스조선 기자 | 도움말: 이범진 강원대 약대 교수, 정원태 한미약품 상무(약학박사), 이진희 약사
입력 2008/11/18 16:24
약 모양과 효능
약에도 디자인이 있다. 디자인의 개념은 좀 다르다. 보기 좋고 예쁜 약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약이 몸 안에서 최대한 효과를 나타나게 하는 것이다.약의 디자인은 다양하다. 알약이나 주사제, 캡슐 등 전통적인 디자인 외에 ▲항문이나 질에 넣는 좌제·질제 ▲피임을 위해 피부 속에 심는 이식형 ▲가스 성분을 흡입시켜 전신 마취를 하는 흡입제 등도 선보이고 있다.
제약회사들도 디자인에 고심하고 있다. 아무리 효과 좋은 신약 물질을 개발해도 이를 약으로 만들 때의 형태, 즉 제형(�形)을 잘 해야 약으로 성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약의 다양한 제형에는 어떤 과학적 비밀이 숨어 있는 지 가장 흔히 쓰이는 정제, 캡슐제, 주사제, 패치제를 통해 알아본다.
■정제|둥글거나 타원형의 '알약'이라고 흔히 부르는 정제는 생산 단가가 낮고, 복용하기 편하며, 저장이 간편해 가장 많이 쓰인다. 정제는 '속효제'와 '서방제'로 구분된다. 속효제는 약을 먹는 즉시 위에서 신속히 녹아 체내에 흡수되도록 만든 것으로 가장 기본적 약이다. 서방제는 천천히 녹도록 만들어졌다.
최근엔 정제 중에서도 한걸음 더 나아간 약이 나오고 있다. 흡수를 더 빨리 하기 위해 혀 밑에 녹여 먹는 '설하정'과 입에서 바로 녹는 '속용정'이다. 설하정(舌下錠)은 혀 아래에 넣고 침으로 녹이면 신속히 녹아 혀 아래쪽 혈관을 통해 흡수돼 바로 체순환이 이루어진다. 혀 아래에는 침이 분비돼 약을 녹이는 수분이 충분하고 점막으로 빠른 흡수가 가능하다는 점을 이용한 것이다.
속용정은 위 속에서 녹는 과정을 생략한 약. 입에 들어가는 순간 신속히 녹은 뒤 유효 성분이 위에서 바로 흡수된다.'서방정' 디자인의 핵심은 어떻게 하면 천천히 녹게 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약 성분에 따라 약효를 내는 시간이 다른 점을 보완하는 것으로 하루 4~5번 약을 먹어야 하는 불편을 1~2회만 복용해도 가능하도록 개선된 약이다.
서방정 디자인의 비밀은 하나의 알약에 두 개의 층을 만들어 한 쪽이 먼저 흡수되고 나머지가 천천히 흡수되도록 한 것이 있는가 하면, 약이 녹아 나오는 속도를 느리게 한 것, 삼투압을 이용해 녹는 속도를 조절하는 '오로스(OROS)' 등이 있다.
■캡슐제|약을 정제로 만들기 불편할 때는 알갱이를 캡슐로 덮는 캡슐제를 쓴다. 또 약이 습기에 취약해 정제로 만들면 변색, 변질되기 쉬울 때도 캡슐에 넣으면 이를 막을 수 있다. 약이 너무 써서 삼키기 힘들 때도 캡슐이 이용된다. 알약을 잘 삼키지 못하는 어린이를 위해 단맛을 캡슐에 묻힌 약도 있다.
캡슐제 중에서도 약이 위보다 장에서 흡수되는 것이 좋을 경우에는 위에서 녹지 않고 장까지 가야 녹는 '장용정' 캡슐이 이용된다. 장용정 캡슐은 주로 음식물의 영향을 받거나, 지방질과의 상호작용 때문에 약의 흡수가 반감되거나, 위장 장애 등 부작용이 더 많을 때 만들어진다. 약사들이 "이 캡슐은 까서 드시지 마세요"라고 설명하는 약이다.
■주사제|주사는 크게 ▲근육주사 ▲혈관주사 ▲피하주사로 나뉜다. 근육주사는 근육을 통해 혈관으로 흡수되도록 하는 것이고, 혈관주사는 바로 온 몸을 순환하는 혈액을 통해 약 성분을 투여하는 것이다. 주사제는 대부분 먹는 약보다 빠른 효과를 기대할 수 있으며, 그 중에서 가장 빠른 것이 혈관주사다. 혈관주사는 피 속에 바로 유효 성분을 투여하기 때문이다.
근육주사도 근육의 모세혈관을 통해 약 성분이 몸에 골고루 퍼지게 하는 것으로 효과가 빠른 편이다.
하지만 주사제 중에서도 천천히 약이 퍼지게 하는 것도 있다. 데카노아스(Decanoas)라는 성분의 근육 주사는 오래 전부터 사용돼온 장기 지속형 근육주사제이다. 이는 지방 성분으로 이뤄져 있어 근육에 머물면서 분해돼 몸에 녹아 들어가는 시간이 오래 걸린다.
최근에는 미립자 형태로 만들어진 약이 근육에 머물렀다가 천천히 녹는 형태의 장기 지속형 주사제도 개발됐다. 골다공증 치료제 등에 주로 쓰이는데 주사를 한번 맞으면 2주에서 한 달 이상 약효가 지속된다.
■패치제|약효가 오래가는 것으로는 파스라고 불리는 '패치제'도 빠질 수 없다. 패치제는 알약 등의 형태로 먹을 때 위장관 부작용이 심하게 발생하는 부작용을 줄여주며, 약효를 지속시켜주는 장점이 있다. 뿐만 아니라 주사제와 같은 바늘이 없어 통증이 없으며, 붙이고 떼어내는 간편한 용법 때문에 환자들이 선호한다. 최근에는 전문약들도 패치형태로 많이 나온다. '엑셀론'이란 치매 치료제는 원래 알약이었으나, 패치제로 바꿔 위장장애를 줄이는 등 환자 선호도를 높인 사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