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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가상현실 커뮤니티인 세컨드라이프(www.secondlife.com) 열풍이 우리나라에도 불고 있다. 세컨드 라이프는 가상현실 공간에서 자신의 분신인 아바타(avatar)를 통해 전세계 네티즌과 교류하는 공간. 지난 1월 한국 서비스를 시작했고, 국내 기업들도 속속 이곳에 자사 제품 홍보관을 열고 있다. 지금까지 가상현실은 주로 개인적인 엔터테인먼트 용도로 활용돼 왔지만, 최근에는 새로운 가능성이 발견되고 있다. 자폐증 환자를 치료하고 의대생을 훈련시키는 등 의학 연구에 활용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미 치료 효과가 입증돼 가상현실 속 병원도 등장했다.

◆ 아바타와 대화로 자폐 치료

미국 노스웨스턴대의 심리·언어학자인 저스틴 카셀(Cassell) 교수는 가상 현실이 자폐 아동 치료에 도움이 된다는 것을 실험을 통해 입증했다. 자폐 아동은 사회성이 발달하지 못해 일상생활에서 또래들과 잘 어울리지 못한다. 카셀 교수는 가상현실 속에 자폐 아동 치료를 위한 어린이 아바타를 만들었다. 성별 구분이 모호한 8살 어린이로 만화 주인공 얼굴을 갖고 있다.

자폐 아동과 가상현실 속 어린이는 센서가 부착된 장난감으로 함께 놀 수 있다. 두 어린이는 장난감을 서로 주고 받을 수 있으며 상대가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모습을 지켜볼 수 있다. 가상현실 속 어린이는 자폐 아동에게 직접 말을 건네기도 한다. 카셀 교수는 지난 2월 미국과학진흥협회(AAAS) 연례학술대회에서 "자폐 아동은 실제 어린이와는 자연스러운 대화가 불가능하지만, 가상현실 속의 친구와는 20분쯤 지나면 정상적인 대화가 가능했다"고 밝혔다. 또 자폐 아동이 커튼 뒤에서 버튼을 통해 가상현실 속 어린이를 조종하게 했더니 일반 어린이와 대화하는 것도 가능한 것으로 드러났다.
 
▲ 세컨드라이프는 자신의 분신인 아바타를 통해 다른 사람과 교류하는 공간이다. 최근 이곳에서 자폐 아동을 치료하는 등 의학연구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텍사스대 뇌건강연구소의 산드라 채프먼(Chapman) 소장도 지난 1월 미국 ABC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자폐증의 일종인 아스퍼거 증후군(Asperger syndrome) 환자 치료에 세컨드 라이프를 활용하고 있다"고 밝혔다. 아스퍼거 증후군을 앓고 있는 환자는 특정 분야에서 뛰어난 기술이나 재능을 보이는 반면 사람들과 소통하는 능력은 결여돼 있다.

의료진은 세컨드 라이프에 들어가 직장 상사 아바타로 변신했다. 환자는 상사와 면접시험을 치르는 구직자 아바타로 역할을 부여했다. 이를 통해 의료진은 환자에게 다른 사람들과 교류하는 법을 가르쳤다.

실험 결과 환자들은 매주 만나는 의료진과의 역할극에 대해서는 그다지 흥미를 느끼지 않았다. 하지만 세컨드 라이프 속의 다른 아바타와의 대화에는 깊이 몰입하는 모습을 보였다.

일부에서는 "자폐 환자들이 워낙 컴퓨터를 좋아하는데다 가상현실에서는 표정이나 동작이 필요없이 대화만 입력하면 되기 때문에 더 친숙하게 여길 뿐"이라며 치료효과를 의심하기도 한다. 채프먼 소장은 이에 대해 "그런 점을 보완하기 위해 다양한 감정상태를 표현할 수 있는 새로운 가상현실 공간을 만들 계획"이라고 밝혔다.

◆의대생 교육에도 활용

가상현실은 의대생 교육에도 활용되고 있다. 의학저널 '브리티시 메디컬 저널(BMJ)'에 따르면 세컨드 라이프를 의대생 교육에 활용하는 대학이 갈수록 늘고 있다. 영국 코벤트리대는 의대생들이 세컨드 라이프에 아바타로 참여해 의료장비 숙달 훈련을 받게 하고 있다. 성 조지 의대는 가상현실 공간에 환자 다루는 법 강의를 개설하기 위해 준비 중이다.

실제 환자치료에도 가상현실이 유용하다. 미 코넬대는 높은 곳을 올라가지 못하는 고소공포증 환자를 위해 가상현실에서 비행상황을 경험할 수 있는 장치를 개발했다. 국내에서도 한양대 의대 김선일 교수가 고소공포 시뮬레이션과 폐쇄공포 시뮬레이션, 대중연설 가상환경, 정신분열증을 위한 가상현실시스템 등을 개발해 환자 치료에 활용하고 있다. 세컨드 라이프에서 공황 장애를 치료한 한 미국 여성은 자신의 경험을 살려 이곳에 다른 환자를 치료하는 유료 강좌를 개설하기도 했다.

문제점도 없지 않다. 일부 의대생들은 가상 현실에 몰입하지 못해 학습 효과가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수업 과정에 난데없이 야한 복장을 한 여성 아바타가 들어와 지장을 받는 경우도 있다. 가상현실 속에 별도의 교육 공간을 만드는 데 드는 비용도 상당하다. 그러나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는데다, 이름을 알리는 효과도 있어 의대나 병원의 가상현실 공간 활용 사례는 더욱 늘어날 것으로 BMJ는 전망했다.


/ 세컨드라이프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