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서울병원·헬스조선 공동기획- 나의 희망이야기(19)
궤양성 대장염 극복한 김준석(30)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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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석씨는 대장을 다 들어내는 수술을 받고도 의대를 졸업하고 이달부터 대활의학과 수련을 시작했다. / 삼성서울병원 제공

1998년 2월, 그토록 바랬던 의과대학 합격 통지서를 받았다. 나는 어릴 때부터 의사가 되고 싶었다. 대학 생활은 너무나 달콤했다. 잦은 술자리는 즐거웠지만 불규칙한 식사와 일상생활은 어느새 내 몸의 일부로 자리를 잡아갔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인가 몸 상태가 급격히 나빠지더니 설사가 나기 시작했다. 2~3개월 만에 몸무게가 6㎏이나 빠졌다. 하지만 장염이나 위염이겠거니 생각했다. 약국에서 약을 사먹으며 3~4개월을 보냈다.

의예과 1학년 가을 어느 날, 하루 종일 심한 설사를 하던 나는 대학병원 내과 교수님을 찾아갔다. 각종 검사가 끝난 뒤 교수님은 어두운 표정으로 나를 물끄러미 보셨다. 몇 분간 아무 말씀도 없던 교수님의 입에서 '궤양성 대장염'이란 말이 나왔다. 대장(大腸)이 조금씩 썩어 들어가는 병. 난치성 희귀병이란 그 무서운 병에 내가 걸렸다는 것이다. 대장을 들어낼 수 있겠냐고 교수님은 물어보셨지만 "네"라고 대답하지 못했다. 당시 내 나이는 스무 살. 대장을 모두 들어내는 치료법을 택하기엔 너무 젊었다.

그래서 염증을 막는 약물 치료법이 선택됐다. 하지만 약물 치료는 받을 때뿐, 나을만하면 재발하는 현상이 반복했다. 결국 1년 반 동안 기나긴 약물 치료를 마무리한 2000년 여름, 대장을 모두 들어내는 수술을 받았다.

회복실에서 눈을 뜨니 교수님이 서 계셨다. 내 손을 꼭 붙잡고 "수술이 아주 잘 됐으니 아무 걱정도 하지 말게. 이제부터는 모두 자네의 의지에 달려 있네"라고 말씀하셨다.

수술이 잘 됐다는 기쁨은 잠시,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엄습해 왔다. 하루에도 7~10번씩 대변을 봐야 하고 체력이 현저히 떨어질 것이라고 했다. 만약 건강에 따라주지 않으면 의사의 길을 중간에 포기해야 할 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마음을 짓눌렀다. 부모님은 의대에 복학하지 말고 공과대학이나 다른 학과로 전과하라고 권유하시기도 했다. 하지만 의대 교수님은 달랐다.

"몸은 정신을 절대 이기지 못한다네. 정신력으로 끝까지 이겨내서 다른 사람들에게 본보기가 되어야 하네. 그게 진정한 의사의 길이야."

나 자신과의 싸움이 시작됐다. 언제 닥칠지 모를 배변에 대비해 1분 단위로 생활 계획을 짰다. 갑작스런 배변 때문에 스케줄이 구멍이 날 지 몰랐기 때문이다. 수술실 실습 중에도 배변 때문에 수술실을 뛰쳐나가는 일이 다반사였다. 수업 중에도 마찬가지였다. 동료들보다 뒤쳐지지 않으려고 남들 쉴 때 책을 한 번 더 보았다.

그렇게 힘든 의대 본과와 인턴 생활을 마치고, 이달부터 재활의학과에서 수련을 시작했다. TV드라마를 통해 잘 알려져 있듯, 그렇게 힘들다는 레지던트 1년 차를 시작한 것이다.

재활의학과 전문의가 되겠다고 결심한 것은 환자에게 수술과 치료만큼, 어쩌면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 바로 이어지는 '신체적·정신적 재활'이라는 것을 직접 몸으로 겪었기 때문이다.

병은 큰 시련을 나에게 주었지만 재활의학과 의사로서 환자를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계기도 됐다. 환자의 몸을 고치는 데 그치지 않고 마음까지 어루만져주는 따뜻한 의사가 되는 것이 나의 꿈이다.

※이번 회를 마지막으로 '나의 희망이야기' 연재를 마칩니다.

주치의 코멘트

약물요법한계 대장 절제수술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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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호경 삼성서울병원 외과 교수

궤양성 대장염은 아직 명확한 원인이 밝혀지지 않은 비특이적 염증성 장 질환이다. 염증을 치료하는 약물요법은 한계가 있어 대장 절제술이 많이 쓰인다. 하지만 대부분의 환자가 김군처럼 20대 전후 젊은 층이어서 대장을 모두 절제하는 것을 받아들이기 어려워한다.

수술 후에는 대장이 없으므로 다른 사람들보다 배변이 잦고 영양소를 잘 흡수하지 못하는 후유증이 있다. 하지만 김군은 그 모든 과정에 잘 적응, 힘든 의대 공부를 무사히 마쳤다. 김군은 난치성 궤양성 대장염을 수술한 뒤에도 훌륭한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정리=배지영 헬스조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