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과

[하지현의 '성질 연구'] 냉정한 맞선 자리 (21)

저는 20대 후반의 직장여성입니다. 그 동안 소개팅 한두 번 정도 해봤을 뿐입니다. 최근 30대 초반의 전문직 남성과 처음 맞선을 보았습니다. 저는 어찌해야 할지 몰라 어색해 하는데, 그 분은 경험이 많은지 적당히 분위기를 맞춰주며 자연스럽게 대해줘서 왠지 마음이 편안해졌습니다. 그 분이 마음이 들었고 그도 헤어질 때 “다음에 또 봐요”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일주일이 지나도록 연락이 오지 않았습니다. 기다리다 지쳐 소개한 분에게 알아보니 제가 그의 스타일이 아니었다고 한답니다. 제가 무엇을 잘못 보여서 그런 건지 모르겠습니다. 어떻게 한 번 만나고 스타일을 알 수 있는 것이지요. 괜히 나갔다가 자존심만 상한 것 같습니다. 제가 뭘 잘못한 것일까요. (맞선 나갔다가 크게 데인 K)

K씨, 황당하시죠? 두 시간 남짓 차 마시면서 어색한 대화를 한 후 자기 스타일인지 아닌지 판정을 내린다는 게 말이 됩니까. TV의 버라이어티 쇼도 그러지는 않을 텐데요. 아닌 듯 해도 상대방이 호감을 보이면 끌려가는 척 한두 달 만나야 첫인상에서는 보이지 않던 다른 면도 찬찬히 알 수 있고, 상대방에 대한 판단을 내릴 수 있는 것 아니겠어요? 원칙적으로는 그게 맞지요. 하지만 모든 만남의 형태에는 나름의 룰(rule·규칙)이라는 것이 있답니다. 왠지 맞을 것 같은 사람을 부담 없이 소개해주는 소개팅과 맞선은 기본전제부터 다릅니다. 연애가 아닌 결혼이 목적이고, 두 사람만의 만남이 아니라 처음부터 집안간의 만남이 전제되지요. 배경 직업 나이와 같은 외형조건이 우선되고, 성격 같은 내면조건은 ‘선택사항’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외형조건이 만족되는지를 우선 보고, 두 사람의 성격은 차후에 맞춰보게 되지요. K씨와 만났던 남자는 ‘맞선’이라는 게임의 룰을 잘 알고 나온 반면 K씨는 그렇지 못한 것 같아요. 그러니 K씨는 황당해하고 자책을 하게 되는 것이지요. 두 사람 모두 잘못한 것 없습니다. 축구 경기장에 가서 야구 배트가 없다고 투덜댄 격이니까요.

p.s. 우물에서 숭늉을 찾던 K씨는 아직 연애를 못해본 사람들이 갖는 로맨틱한 환상을 갖고 있습니다. 가슴 설레는 첫만남과 우연을 가장한 필연이 사랑으로 이어지는, 소설 같은 드라마 말입니다. 이런 환상은 여러 번 현실과 부딪혀봐야 깨질 수 있고, 맞선에 나오는 이들의 대부분은 이미 그 과정을 거친 경우가 많습니다. 결혼을 전제로 한, 냉정하고 각박한 맞선 시장에 나가기 전에 어떻게든 다른 방법으로 사람을 사귀어보세요. 너무 멀리 눈을 돌리지 말고 회사나 거래처에서 호감이 가는 사람이 있나 찾아보거나 학교 선후배도 좋아요. 면역력은 작은 병치레를 통해 생깁니다. 면역력이 약한 상태에서 바로 맞선이란 냉혹한 ‘트레이딩 시장’에 나갔다가는 큰 상처를 입거나 어리바리한 상태로 결혼한 후 후회할지 모른답니다.


/ 건국대 의대 신경정신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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