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서울병원·헬스조선 공동기획- 나의 희망이야기①
급성골수성백혈병과 싸우는 이효정(18)양
제대혈이란
출산 때 탯줄에 든 혈액. 제대혈(臍帶血) 속에는 백혈구, 적혈구, 혈소판 등을 만드는 조혈모세포가 많이 들어 있으며, 연골·뼈·근육·신경 등을 만드는 간엽줄기세포도 함유돼 있다.
태어날 때 제대혈을 보관해두면 아이가 커서 백혈병에 걸리더라도 남의 골수를 이식 받지 않고 자신의 제대혈로 치료받을 수 있다. 제대혈은 백혈병, 소아암은 물론 심근경색증, 퇴행성관절염 등의 치료에도 활용 가능성이 모색되고 있다. 제대혈을 보관하는 곳을 ‘제대혈 은행’이라고 한다.
2005년 12월, 고등학교 1학년의 첫 겨울방학을 눈앞에 두고 있었다. 감기몸살인 듯 피로감이 몰려왔고 기침이 심했다. 그러다 집에서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시험 때문에 새벽까지 무리하게 공부한 탓인 줄 알았다. 하지만 이내 허벅지와 허리에 통증이 있었고 알 수 없는 멍들이 생겼다. 손은 하얗게 변했다. 가까운 병원을 찾았다. 의사 선생님은 “빈혈이 심한 편”이라고 말한 뒤, 엄마를 밖으로 불렀다. 엄마는 “큰 병원으로 옮기자”고 했다.
병원을 옮겨 적혈구와 혈소판 수혈을 받았다. 골수검사도 하고 병실에 들어서는데 옆 침대에 머리카락이 다 빠진 아주머니가 있었다. 불안감은 현실로 나타났다. 급성골수성백혈병 진단이 나왔다. 가망이 낮다고 했다.
수소문 끝에 다시 서울의 병원으로 옮겼다. 치료가 시작되자 구토가 심했다. 물 한 모금도 마실 수 없었다. 밥 냄새를 맡으면 속이 울렁거렸다. 항암치료 도중 혈압이 떨어져 의식을 잃었다. 백혈구 가운데 1차 방어선 역할을 하는 호중구의 수치가 떨어지면 고열에 시달렸다.
골수이식이 필요했지만 맞는 골수가 없었다. 의사 선생님은 “차선책으로 제대혈 이식을 받자”고 했다. 탯줄 혈액을 뜻하는 제대혈에도 골수처럼 피를 만드는 조혈모세포(造血母細胞)가 있다. 체격이 작거나 어린이라면 하나의 제대혈로 이식 가능하지만, 나는 2단위 이식을 해야 했다. 다행히도 내게 맞는 제대혈이 제대혈 은행에 기증용으로 보관돼 있었다. 2006년 6월 30일. 정맥주사를 통해 제대혈을 이식 받는 순간 눈을 질끈 감았다. “제발 기적이 찾아오기를….”
한 달여의 무균실 생활을 마치고 일반병실로 옮겼다. 그러나 심한 통증과 함께 입이 헐고 혈뇨가 나왔다. 혈소판 수치가 오르지 않아 수혈을 받았다. 입안 상처는 호중구 수치가 오르며 나았지만, 혈뇨는 3개월간 계속됐다. 소변을 못 봐서 소변 줄을 꽂았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급성 신부전증도 생겨 열흘 넘게 투석치료를 받았다. 이식만 하면 금세 좋아질 줄 알았지만 백혈구와 혈소판 수치가 늦게 올라 힘들었다. 3개월이 지나자 호중구 수치가 정상인과 비슷해졌다. 이식 뒤 1개월 정도면 회복된다고 했는데 ‘고통의 시간’은 계속 연장됐다.
2006년 10월에야 입원 생활을 마쳤다. 10명 중 4명은 조혈모세포가 생착되지 않거나 병이 재발해 목숨을 잃는다는데 다행히 이식과 관련된 감염 등 합병증은 없었다. 아직 완치는 멀었지만 밀린 학업 때문에 인터넷 강의를 듣고 있는 지금 이 순간이 내게는 기적이다. 검정고시로 카피 라이터의 꿈을 꼭 실현하겠다.
/ 정범석 헬스조선 기자 jbs@chosun.com
주치의 코멘트
“환자들에겐 골수·제대혈 기증 너무나 절실”
우리나라에서 연간 500명 정도 소아백혈병 진단을 받는다. 소아나 청소년에겐 만성골수성백혈병이나 만성림프구성백혈병은 드물고 대개 급성백혈병이다. 림프구성백혈병은 항암제만으로 표준위험군은 85% 이상, 고위험군은 70~75%의 완치된다. 그러나 골수성백혈병은 항암제만으로 약 50%, 조혈모세포이식으로 약 60% 정도 완치된다.
급성골수성백혈병인 이효정 양은 항암치료를 하며 적절한 골수 공여자를 찾았지만 일본, 중국, 대만까지 뒤져도 없었다. 올해 8월까지 국립장기이식관리센터에 등록된 골수 공여자는 14만 명이어서 적합한 골수를 찾을 가능성이 70%다.
공여자가 20만 명은 돼야 안정권인 80%대가 된다. 제대혈 이식의 경우, 조혈모세포의 수가 골수나 말초혈액의 10분의 1밖에 안되지만, 조직적합성항원 6개 중 4개만 맞으면 이식할 수 있다. 현재 국내에 2만여 개의 제대혈이 보관돼 있는데 10만개가 되면 거의 모든 환자에게 이식 가능할 전망이다. 죽음의 경계선에서 힘겹게 투병하는 환자들을 위해 골수와 제대혈 기증이 더욱 활성화될 필요가 있다.
삼성서울병원 소아암팀은 ‘아폴론(Apollon)’이라는 세포사멸 억제인자의 발현이 이 병 예후의 불량인자라는 사실을 처음 규명하는 등 소아암 치료율 향상을 위해 연구 노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