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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점짜리 병원 시스템, 95점 만들었습니다"
입력 2007/07/10 16:56
세브란스병원 국제의료기관평가위원회(JCI) 인증
세브란스 박창일 병원장
연세의대 세브란스병원이 국내 최초로 국제의료기관평가위원회(JCI) 인증을 받았다.〈본지 7월 6일 A12면 보도〉 병원 측은 “환자 진료와 병원 관리에 관한 총 1033개 평가 항목을 통과함으로써 국제 표준에 맞는 글로벌 의료기관으로 거듭났다”고 밝혔다.
2005년 7월부터 2년 가까이 ‘JCI 실무팀’을 진두 지휘한 박창일 병원장을 만났다.
인터뷰
- 우리나라 임상 기술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굳이 해외 인증을 실시한 이유는?
“첫째, 의료기관의 질을 국제 표준까지 끌어 올리기 위해서다. 물론 우리나라 임상 실력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그러나 의사 실력만으로 좋은 의료기관이 되는 것은 아니다.‘ 빙산의 일각’이란 말이 있듯이 좋은 의료기관을 운영하려면 보이지 않는
그 무엇이 더 중요할 수 있다. 우리는 세계 어느 나라보다 급속한 의술 발전을 이루었지만 너무 외형과 스피드에 치우치다 보니 그 무엇, 즉 기초를 다지지 않고 지금껏 달려왔다. 눈에 보이지 않는 기초를 정비하자는 것이 첫번째 목적이다. 둘째는 해외 시장을 공략하기 위함이다. 해외 환자를 적극적으로 유치하기 위해서는 그 병원에 안심하고 환자를 맡길 수 있다는 국제적 인증이 필요하다. JCI는 국제적으로 가장 권위 있는 인증기관이다.”
- 기초가 부실하다는 의미가 무엇인가?
“의료기관 수준은 의사 실력과 병원 운영 시스템, 두 가지에 달렸다. 이 중 우리는 시스템 측면에서 아주 낙후돼 있다. 예를 들어 진료 또는 입원을 하는 절차, 환자에게 병에 관해 설명하는 과정, 환자식을 배식하거나 환자복을 소독하는 절차, 의료기 소독 절차 등이 과학적이고 정교하게 표준화(매뉴얼화) 돼 있지 않다. 대부분 관행대로 진행된다. 이것이 기초가 없다는 얘기고 국제 표준에 맞지 않다는 것이다. 매뉴얼이 없다고 환자 진료에 당장 문제가 생기지는 않지만, 보이지 않는 부분에서 진료의 질을 떨어 뜨리거나, 환자 안전을 위협한다. 예를 들어 몇 년 전 모 대학병원에서 위 수술 환자와 갑상선 수술 환자를 서로 뒤바꿔 수술하는 사고가 생겼다. 3중 4중으로 체크하는 꼼꼼한 매뉴얼이 없기 때문에 생긴 일이다.”
- 그렇다면 인증 전 세브란스병원은 국제 표준과 얼마나 차이가 났나?
“부끄러운 얘기지만 재작년 1033개 항목을 자체평가해 보니 절반 이상이 불합격이었다. 우리가 관행적으로 해 왔던 절차들의 상당 부분이 국제 표준에 뒤처져 있었다. 우리도 언제든지‘대형 사고’칠 수 있는 개연성을 안고 있었던 것이다.”
- 국제 표준에 가장 못 미치는 것은 어떤 것들이었나?
“비상상황에 대한 대비책이다. 예를 들어 우리도 화재시 행동 지침이 있었지만 지침 자체가 엉터리였고, 그나마 이를 숙지하고 있는 직원은 거의 없었다. 우리는 잘 일어나지도 않을 것 같은 일에 대비하느라 노력을 쏟을 바에야 차라리 불 조심을 하는 게 더 낫다고 생각했던 게 사실이다.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정서적으로 공감하는 이 문제가 그러나 국제 표준으로 볼 땐 도무지 용납되지 않는다. 이제 우리는 모든 직원에게 화재 시 행동 요령을 외우고 익히게 했으며, 심지어 모든 입원 환자에게도 이 요령을 교육하고 있다.”
- 환자 입장에선 무엇이 가장 바뀌었나?
“어쩌면 변화를 실감하기 어려울 지 모른다. 우리의 목표는 눈에 드러나지 않는 시스템의 변화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위기상황이 닥치면 그 가치가 발휘될것이다.”
- 병원감염 같은 고질적 문제를 해결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 같다.
“그렇다. 병원감염은 환자는 잘 모르지만 모든 병원이 전전긍긍하는 문제다. 이것도 국제 표준에 대입시키니 훨씬 쉽게 풀렸다. 예를 들어 우리는 모든 병실에 세균의 온상인 수도 꼭지를 없애고 센서 수도 꼭지를 달았다. 또 모든 환경 미화원에게 고무 장갑을 벗도록 했다. 고무장갑은 미화원을 보호하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개인의 안전 불감증을 초래할 뿐 아니라 병원감염의 직접적 매개체가 된다. 대신 수술실 등 감염우려가 큰 곳을 청소할 땐 일회용 특수 소독 장갑을 사용케 했고, 일반 장소를 소독할 땐 맨손 작업을 하되, 손 씻기와 소독을 의무화했다.”
- 현재 보험 수가로 눈에 보이지 않는 세세한 부분까지 다 정비한다는 것이 가능한가?
“그렇다. 현재 수가로는 불가능하다. 그래서 해외 환자를 유치하겠다는 것이다. 그들에게 번 돈으로 눈에 보이지 않는 기초에 투자하자는 것이 우리의 기본 의도다.”
- 어떤 점이 가장 어려웠나?
“직원들을 설득하고 동참시키는 일이었다. 이 일은 환자 안전과 의료의 질을 위해 절대 일어나지 않을 것처럼 보이거나 아주 세세한 일까지 표준화하고 대비책을 세우는 것이다. 직원 입장에선 지금껏 그런 노력 없이도 아무 문제 없었는데, 일일이 매뉴얼을 만들고 익히려니 쓸데 없는 일을 하는 것처럼 보였을 수도 있다. 6000여 교직원들의 자발적 참여와 협조 없이는 인증을 받기 어려웠을 것이다. 교직원께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싶다.”
- 비용은 얼마나 들었나?
“인증 받는데 직접적으로 든 비용은 약 3억5000만원 정도다. 그러나 지난 2년간 시설을 보완하고, 잘못된 관행을 과학적으로 표준화하고, 직원을 채용 또는 교육하는데 든 간접 비용까지 합치면 약 30억~40억원 정도 든 것 같다. 그 결과 눈에 보이지 않는 기초체력이 엄청나게 튼튼해 졌다. 우리나라 최초의 병원이라는 전통을 이어 국내 첫 글로벌 표준에 맞는 의료기관으로 인증 받았다는데 자부심을 느낀다.”
/ 글·사진=임호준 헬스조선 기자 hjlim@chosun.com
JCI 인증이란
미국 시카고에 본부를 둔 국제의료기관평가위원회(Joint Commission International)가 외국 의료기관을 심사한 뒤 국제 표준에 적합하며 안심하고 진료 받을 수 있다고 인증하는 절차다. 현재 유럽과 중동, 남아메리카, 아프리카, 아시아 총 23개국 125개 의료기관이 JCI 인증을 받았다. 세브란스병원은 JCI 인증을 받은 곳 중가장 규모가 큰 의료기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