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부인과
[응급피임약]겁 없이 먹는‘응급 피임약’ 여성 건강 응급신호!②
입력 2007/05/08 16:48
구토·자궁출혈·생리불순 등 부작용 심각
피임 실패율도 15%, 일반피임약보다 높아
#1 미혼여성 김모(27)씨는 몇 달에 한번씩 남자 친구와 다툰다. 결혼 상대로 생각하는 남자 친구와 자연스레 성관계를 갖지만 피임 때문에 신경이 곤두선다. 처음에는 하루에 한 알씩 한 달에 3주 동안 먹는 피임약을 복용했다.
하지만 남들이 눈치챌까봐 걱정되는데다 복용도 번거롭다는 이유로 일반 피임약을 중단하고, 요즘은 성관계 뒤 사후피임약을 복용한다. 얼마 전에도 성관계 후 의사의 처방전을 받아 사후피임약‘노레보정’을 복용했다. 약을 먹고 난 뒤 구토할 때마다 피임에 별 관심이 없는 남자친구가 야속하기만 하다.
#2 결혼 6개월 만에 아기를 출산한 주부 양모(28)씨는 사후피임약 실패 케이스. 성관계 뒤 사후피임약을 먹었지만 한달 뒤 임신을 확인했다. 부랴부랴 결혼식을 올려 미혼모가 되는 사태는 피했지만 그 때 생각을 하면 지금도 마음이 편치 않다.
계획되지 않은 성관계, 콘돔이 찢어진 경우, 강간 등 응급상황에서 사용토록 돼 있는 사후피임약이 ‘응급’보다는 ‘일반’ 피임약처럼 팔리고 있다.
사후피임약은 부작용이 일반피임약보다 훨씬 심하다. 김미란 아주대병원 산부인과 교수는 대한피임생식보건학회 발표 자료에서 사후피임약은 고용량 호르몬 요법이기 때문에 구토나 출혈, 유방통증 등 부작용이 따를 수 있다고 밝혔다. 또 자궁 외 임신 위험도 높다. 무엇보다 사후피임약은 피임 실패율이 15%로 일반피임약보다 훨씬 높다.
전문의들은 사후피임약은 그야말로 ‘응급피임약’이므로 일반 피임법으로 착각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성관계 후 72시간 이내에 사후피임약을 복용하면 수정란이 자궁에 착상하는 것을 방해해 임신을 막는다. 이 때문에 사후피임약은 ‘피임 약’이 아닌 ‘낙태 약’이라고 비판하는 목소리까지 있다.
사후피임약은 강력한 응급피임 효과를 얻기 위해 호르몬으로 만들어진 약이어서 구토 증상이 잘 나타난다. 메스껍다고 토하다가 약까지 뱉어내 피임에 실패하는 경우도 있다.
사후피임약의 하나인 ‘노레보정’ 사용설명서에는 ‘이 약 복용 후 3시간 이내에 토했을 경우 구토물 중 약 1정이 있는지 확인하고, 발견될 경우 즉시 1정을 추가 복용하라’고 밝히고 있다.
사후피임약의 또 다른 문제점은 너무 쉽게 살 수 있다는 것. 본지 기자가 서울 종로, 광화문 일대의 약국을 돌며 의사의 처방전 없이 사후피임약을 달라고 했더니, 10곳 중 2곳이 그냥 약을 팔았다.
한 약국에서 약사에게 “노레보정 주세요”라고 묻자 처음에는 “안되는데…”라며 말을 흐리더니, 이내 “1만2000원입니다”라며 약을 줬다. 어떻게 복용하라거나 어떤 부작용이 있는지 설명도 해주지 않았다.
여대생 이모(25)씨는 “대학가나 유흥가 주변 약국 중에서 노레보정을 쉽게 살 수 있는 곳들이 있다는 소문을 들었다. 병원에 가서 의사에게 자세히 말하기도 부끄럽고 해서 그냥 약국을 이용하는 친구들이 있다”고 말했다. 일부 약국에서는 피임 효과가 입증되지도 않은 월경 불순 약을 사후피임약으로 팔고 있다.
사후피임약은 국내 첫 출시된 2001년에 ‘노레보정’ 한 종류밖에 없었으나, 현재 5가지가 나와 있다. 노레보정이 전체 매출의 90% 이상을 차지한다. 지난해 사후피임약(5종)의 매출은 일반피임약(12종)의 5분의1 수준. 하지만 사후피임약은 계속 성장하고 있는 반면, 일반피임약은 시장규모가 줄어드는 추세다.
전문가들은 사후피임약 시장이 비정상적으로 급성장하는 상황에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특히 미혼여성들이 편리하다는 이유로 사후피임약을 습관적으로 복용할 경우 자궁 출혈과 생리 불순 등 부작용을 겪을 수 있으며, 사후피임약은 두번째 복용하면 피임 실패율도 19~38%로 높아진다. 3~4번에 한번은 피임에 실패한다는 것이다.
최두석 삼성서울병원 산부인과 교수는 “성관계 후 불안하다고 사후피임약을 습관적으로 먹는 것은 좋지 않다. 생리 주기가 바뀌기도 하고 자궁출혈이 생길 수 있다. 생리 주기가 바뀌면 원할 때 임신을 못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 정시욱 헬스조선 기자 sujung@chosun.com
/ 이금숙 헬스조선 인턴기자 sixstrings@chosun.com
사후피임약 Q&A
Q:사후피임약은 몸에 얼마나 해롭나?
A:사후피임약은 일반피임약 40~50알을 한꺼번에 먹는 것과 같다. 이처럼 많은 호르몬이 일시에 몸에 들어가면 월경 주기 장애, 어지러움, 두통, 메스꺼움, 구토, 하복부 통증, 유방통 등이 생길 수 있다. 따라서 사후 피임약은 응급상황 외에는 복용하지 않는 것이 좋다.
Q:사후피임약의 피임 효과는 시간대별로 다른가?
A:성관계 후 24시간 안에 복용하면 피임 성공률이 95%지만, 25~48시간은 85%로 떨어지고, 49~72시간에 복용하면 58%까지 감소한다. 72시간이 지나면 피임 효과가 없다. 성관계 전에 사후피임약을 복용해도 피임 효과가 없다.
Q:사후피임약을 복용한 뒤 일반피임약을 먹어도 되나?
A:사후피임약 복용 후 다음 생리가 시작된 첫날부터 먹는 피임약을 복용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