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 저 병은 저런 병이 아닌데?” 우리나라 드라마의 장점은 바로 사람들의 감정선을 자극하는 방법을 너무도 잘 알고 있다는 것이다.
반면 너무나 익숙해진 그 방법이 너무도 많이 쓰이다 보니 어느 드라마나 비슷한 공식을 흔하게 볼 수 있다. 그 중의 하나가 바로 불치병에 걸린 주인공이다. 하지만 이 불치병도 이제는 소재의 한계에 온 것 같다. 최근 드라마들은 특이한 병을 찾기 위해 일반적으로 보기 힘든 병을 찾기에 여념이 없다.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드라마 ‘눈의 여왕’의 주인공 보라(성유리 분)가 걸린 근무력증이다.
◇ 근무력증은 90% 이상이 완치에 가깝게 호전되는 병
눈의 여왕 주인공 보라는 어린 시절부터 근무력증이라는 희귀한 병을 앓고 있다. 이 때문에 성격이 까다로워지고, 죽어버리겠다는 등 난동을 피운다.(1화) 시청자들은 여주인공의 나쁜 성격이 어디에서 기인했는지 알기 때문에 이해한다. ’한때 의사는 그녀가 스무살을 넘기기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살아남았고 스물두살이 되었다. 이제 의사는 그녀가 쉽게 죽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규칙적인 검사와 적절한 치료만 병행된다면 이 상태 그대로 남들만큼 살 수 있을 거라고 한다. 그러나 완치될 거라는 말만큼은 절대로 하지 않는다.’(시놉시스 중에서) ’보라, 웃으며 달아나다가 갑자기 통증으로 얼굴이 굳어진다. 슬로우로 확 쓰러지는 보라.’(5화)
이같은 병의 묘사는 얼마나 연구된 것일까. 사실 근무력증은 불치의 난치성 질환이 아니다. 신경의 임펄스가 근육에 제대로 전달되지 못해서 생기는 질병으로 관리를 받으면 대부분 좋아진다. 최근에는 90%정도가 완치에 가까운 정도로 회복된다고 한다.
근무력증이란 근육의 약화가 지속적으로 진행되기보다는 피곤할 때 증상이 심해졌다가 쉬면 호전되는 특징을 보이는 근육병이다. 특별한 안치 방법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제대로 치료만 받는다면 대부분 일상생활을 정상적으로 유지하면서 자기 수명을 다 할 수 있다고 한다.
중앙대의료원 신경과 민주홍 교수에 따르면 오하려 치료가 가능한 병에 속하는 것이 이 근무력증이라고 한다. 옛날에는 심한 경우에 호흡기에 문제가 생기면 인공호흡기를 달아야 하고, 사망률도 높았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고 한다. 생활에 큰 지장도 없으며 전신에 이 질환이 작용되는 경우도 정상적인 생활이 가능할 정도라고. 오히려 신경증 중에서는 가벼운 편에 속하는 것이 이 근무력증이라고 한다.
을지병원 권우현 교수 역시 이 질환에 대해 “심각한 질환은 아니다”라고 단언했다. 관리를 받으면 대부분 자활이 가능하며 스스로 걸어다니는데 큰 지장은 없다고 한다. 면역성질환으로 자기 몸을 적으로 판단하는 질환으로 류마티스나 루프스 역시 비슷한 질환에 속한다.
눈이 심하게 걸리는 경우가 많으며 전신형인 경우 코맹맹이 소리가 나거나 팔다리에 힘이 빠지고 팔을 들어올리기 어려운 경우가 있다고 한다. 하지만 극중에서처럼 픽 하고 쓰러지지는 않는다고. 즉, 드라마에 나오는 설정이 심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관리하면 만족할만한 결과를 얻을 수 있는 질환으로 완치까지는 몰라도 꽤 호전 될 수 있다는 면에서 적절한 표현이라 보기는 어렵다는 것이 전문의들의 의견이다.
치료 방법으로는 약을 사용하거나 수술하는 방법이 있으며 자연회복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최소한 어려서부터 관리를 받았다면 어느날 갑자기 고통을 느끼면서 쓰러지는 병은 아니라는 것이다.
◇ 대중매체, 현실에서의 영향 고려해야
눈의 여왕의 이형민 PD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드라마에서 병이 중요한 것은 아니며 보라의 캐릭터 때문에 필요했다”고 말한다. 물론 극화란 창작의 영역이며 작가의 상상이 얼마든지 개입 할 수 있는 작품이다. 그러나 작품들이 현실에 끼치는 영향을 무시하는 것도 결코 좋은 자세는 아니다.
눈의 여왕 홈페이지 게시판에 이모씨는 “자기 조카가 중증 근무력증을 앓고 있다고..그래서 보라가 죽는다면 이 드라마를 보고있는 자기 조카가 상처 입을 수도 있다고...”라고 적는 이유도 바로 드라마 등이 현실에 끼치는 영향을 보여주는 좋은 예다.
대한MG(myasthenia gravis:근무력증))환우협회의 최성근 대표는 이 드라마가 줄 수 있는 영향에 대해 주의깊게 지켜보는 사람들 중의 하나다. 그는 이 드라마에 대해 “잘 알고 있다”며 “아직 끝나지 않았지만 마지막까지 주의 깊게 지켜보고 있는 중”이라고 밝혔다.
이 드라마로 인해 근무력증에 대해 좋지 않은 인상을 준다면 가만있지 않겠다는 것이다. 최 대표가 이같이 말하는 이유는 근무력증이 불치병으로 소개된다면 결혼을 앞둔 사람들 같은 경우 상대방이 큰 병이 걸린 사람으로 알아 피해를 입을 수 있다는 것이다.
오늘날 대중매체가 사회에 끼치는 영향은 결코 적지 않다. 장애인을 다룬 영화를 보고 장애인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는 대학 교수나 사회봉사에 참여하게 된 학생의 이야기도 드물지만은 않다. 드라마의 재미도 중요하지만 이왕이면 그 드라마가 끼치는 영향을 생각해 보다 세밀한 사전조사를 하는 것이 꼭 어려운 일은 아니지 않을까.
/ 서울=메디컬투데이/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