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부 통계에 따르면 한해 6만7000여명의 중·고생이 학교 생활에 적응을 못해 자퇴를 한다. 그중 복학을 하지않는 5만5000여명은 집안으로 숨어버리거나, 혼자 길거리를 배회하며 ‘은둔형 외톨이’가 된다.

지난 26일 오전 이처럼 학교를 그만뒀거나, 학교생활에 적응을 못해 자퇴를 준비중인 자녀를 둔 4명의 어머니가 서울 시청앞 삼성공익재단 산하 사회정신건강연구소에 모였다.

이들은 “아이가 친구도 없이 집안에만 틀어박혀 있다”며 “공부는 둘째치고 사람들과 잘 어울리기만 해도 좋겠다”고 입을 모았다.

이날 상담에 응한 이시형(강북삼성병원 정신과 교수) 소장은 “요즈음 아이들은 형제없이 자란 데다 방과 후면 학원에 가는 등 친구를 사귈 기회가 없다”며 “여기에 부모의 과잉보호와 컴퓨터 문화까지 겹쳐 점점 번잡한 학교 생활과 인간관계를 피하려고만 한다”고 말했다.

이들은 결국 5~10년씩 집안에 숨어 지내다 사회의 낙오자로 전락하게 된다고 이 소장은 지적했다.

상담이 시작되자 어머니들은 한 사람씩 돌아가며 아이 얘기를 꺼냈다. 고등학교 2학년인 영수의 어머니는 “초등학교 때까지는 손이 부르트도록 딱지 치기를 하며 놀던 아이가 중학교 가면서 이상해졌다”고 한숨 쉬었다.

이 소장은 “외톨이는 짝동무나 동네 친구 등 저절로 사귀는 친구들이 있을 때는 드러나지 않지만 친구를 선택해야 하는 중·고등학생이 되면서 문제가 나타난다”고 답했다.

그때 친구를 못 사귀게 되면 이른바 ‘왕따’를 당하게 되고, 점점 결석률이 높아지고 성적도 떨어진다는 것이다.

이 소장은 “친구들과 장난도 치고 나쁜 짓도 같이 하면서 어울리는 것이 학교생활을 즐겁게 하는 요인”이라며 “아이를 너무 얌전하게만 키워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그러자 진호(고등학교 자퇴) 어머니가 “그렇다고 나쁜 친구를 사귀게 할 수는 없는 것 아니냐”고 물어봤다.

“행여 나쁜 친구를 사귀어 나쁜 길로 빠져들면 어쩌나 해서 차라리 친구가 없는 것을 좋아하는 엄마들도 있죠. 하지만 친구를 사귀는 문제는 아이에게 믿고 맡겨두어야 합니다. 나쁜 짓을 하다가도 본인에게 맞지 않는다고 생각하면 저절로 떨어져 나오게 됩니다. ”

이 소장은 이어서 친구의 의미를 다시 강조했다.

“부모가 적극적으로 아이에게 어울리는 친구를 접할 기회를 만들어주어야 합니다. 종교활동도 도움이 되겠지요. 부모님이 같은 반 친구의 부모를 초대해 자연스럽게 친해지도록 해보십시오. 부모끼리 친해지면 아이들도 절로 친해집니다. ”

이 소장은 이를 세교(世交·세대를 걸친 친교)라고 했다. 또 이렇게 사귄 친구가 서넛만 있어도, 아이는 아무런 문제없이 자라게 된다고 덧붙였다.

정호(중학교2학년) 어머니는 “아이가 친구들 사이에서 말귀를 못 알아듣는다고 욕을 먹고, 점심시간에 저리 꺼지라는 등 윽박지름을 당하니까, 욕을 막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 소장의 대답이 바로 이어졌다. “문제는 아이들이 상처에 대한 면역력이 전혀 없다는 점입니다. 형제들 사이에서 싸우고 야단맞고 화해를 반복하는 일련의 경험이 없는 아이들은 상처에 대해 굉장히 민감해요. 그래서 방어수단으로 욕을 하게 되죠. 차라리 아이에게 싸우는 방법을 알려주는 것이 낫습니다. ”

민수(고등학교1학년) 어머니는 “아이가 종종 조퇴를 한다”며 “시간마다 나한테 전화를 하고, 엄마가 없으면 밥조차 먹을 수 없다고 말한다”고 했다. 마음 같아서는 차라리 한 학기라도 학교를 쉬게 하고 싶다는 게 민수 어머니의 생각이다.

“휴학은 마지막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또래들 사이에서도 힘들어하던 아이는 후배들과 학교 다니기가 더 어렵습니다. 결국 엄마 치마폭으로 다시 숨게 되죠. 그러다보면 3~5년은 훌쩍 지나갑니다. 하루하루는 지겹도록 길더니 1년은 그렇게 빨리 지나갈 수 없더라는 어느 은둔형 외톨이의 말이 생각납니다. ”

광호(고등학교 졸업) 어머니는 “재수 끝에 대학에 간 유일한 친구에게 자극을 받아 공부를 시작해 보았지만 학원가는 것도 쉽지 않다”며 “어느덧 군대에 가야할 나이가 되니 군대에서 더 큰 상처만 받지 않을까 걱정이 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이 소장은 “아이가 군대에서도 적응을 못한다면 회복 불가능한 상태가 된다”며 “정신과의사의 면밀한 관찰을 받은 후에 판단할 문제”라고 말했다.

“지금의 은둔형 외톨이들은 아버지와 대화가 안 된다는 것도 큰 문제입니다. 청춘을 일하며 살아온 한국의 50대 아버지들은 종종 아이들을 이해하지 못하고 윽박지르고 때리게 됩니다. ”

그러자 다들 비슷한 경험을 토로했다.

“아이들의 은둔은 더 이상 상처받지 않으려는 방어수단입니다. 이럴 때는 아이를 윽박지르기보다는 아이를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대화를 하면서 밖으로 나오기를 기다리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

이 소장은 지난 여름, 친구가 없는 은둔형 외톨이를 위한 캠프를 열었다. 이 과정에서 늘 혼자이던 아이가 또래와 어깨동무를 하며 식당으로 들어가는 것을 지켜본 어느 학부형은 그 자리에서 눈물을 줄줄 흘렸다고 했다.

이 소장은 “청소년 시기의 친구는 성적 몇등 올리는 것과는 비교도 안될 정도로 소중하다”며 상담을 맺었다.

/정리=김철중 의학전문기자 doctor@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