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색잡기 중 최고는 뭐니 뭐니 해도 도박이다. 진정한(?) 도박중독자는 술도 여자도 안중에 없다. 정말 그렇게 재미가 있을까? 도박클리닉을 하면서 수많은 도박중독자들을 만났다.  손가락을 끊고도 또 도박장을 찾은 사람, 아들의 수술비를 들고 화투판으로 직행한 아버지, 집에서 쓰고 있는 냉장고를 팔아서 판돈을 마련한 도박꾼. 정말이지 상식적인 수준에서는 도저히 납득이 되지 않는다. 이게 바로 도박이다.

도박은 분명 큰 재미를 주지만 보통 사람들은 그 결과가 심각하다는 것도 잘 안다. 그런데  중독자들은 왜 도박에 깊이 빠지는 것일까? 술을 마신다고 다 술꾼이 되지는 않는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술을 마시지만 스스로 조절하고 즐겁게 마신다.

도박도 마찬가지다. 왜 똑같이 도박을 하는데 어떤 사람은 중독에 빠지고 어떤 사람은 스스로를 조절할 수 있는 것일까? 심리적인 요인, 환경적인 요인, 성격과 타고나는 요인 등이 복잡하게 얽혀있기 때문에 답을 하기가 쉽지가 않다.

그러나 최근의 여러 가지 연구들은 중독이 단순한 습관의 문제가  아니라 뇌의 질병임을 밝혀주고 있다. 도박중독뿐 아니라 알코올, 약물, 마약중독과 일종의 현대병이라고 할 수 있는 쇼핑중독, 사이버 중독 등이 모두 같은 원인에서 출발한다는 것이 다. 이들은 모두 인간의 쾌락, 충동과 연관이 있는 질병이다. 인간의 뇌에는 쾌락을 담당하는 회로가 있다. 이 회로가 선천적으로 부실하거나 어릴 때부터 잘못 형성된 경우 쉽게 중독에 빠진다는 설명이다. 이 사람이 술을 마시면 알코올 중독, 도박을 하면 도박중독에 걸릴 가능성이 많다는 이야기다. 도박의 쾌감에 빠지면 뇌에서 다량의 쾌락물질, 즉 도파민이라는 신경전달물질이 분비된다. 이 물질이 떨어지면 뇌는 다시 신호를 보낸다. 그래서 똑 같은 행동을 반복하게 된다는 것이다. 도박중독은 더 이상 마음이나 의지의 병이 아닌 뇌의 병, 즉 뇌기능장애인 셈이다. 

아무리 뇌에 대한 연구가 발전한다고 해도 이것만으로 복잡한 인간의 행동을 다 설명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성격과 정서적 측면도 도박중독의 중요한 원인이 된다. 진료실에서 만나는 가장 흔한 도박중독자의 유형은 바로 자극을 추구하는 성향을 가진 사람들이다. 경쟁적이고 스릴을 즐기는 사람들이다. 호기심도 많고 늘 강렬한 새로운 자극을 필요로 한다. 끊임없이 새로운 자극을 찾아나서는 탐닉형 환자들인데 한번 어딘가에 빠지면 뿌리를 뽑는 사람들이다. 이런 성격 성향은 다소 타고 나는 경향이 있다.

어린 시절 이야기를 들어보면 대개 비슷하다. 구슬치기, 딱지치기를 해도 다 따야 직성이 풀렸다고 한다. 도박에 빠지기 전에는 일도 잘하고 인정도 받던 사람들이다. 좋게 말하면 에너지가 많은 사람들이다. 불행히도 에너지의 방향이 잘못된 것이다. 에너지의 방향을 어떻게 건강한 쪽으로 돌릴 것인가? 이게 치료적인 측면에서 큰 숙제가 된다.

얼른 봐서는 도박과 거리가 있어 보이는 사람들도 흔히 만난다. 바로 정서적인 이유로 도박에 빠진 사람들이다. 이들을 현실도피형 중독자라고 부르는데 도박을 하는 동안은 만사를 잊을 수 있어서 쉽게 도박에 빠진다. 친구도 별로 없고 사회활동도 취미도 없는 경우가 많다. 쉽게 말하면 세상사는 재미를 잘 모르는 사람들인데 우울하고 불안한 기분을 잊기 위해 도박에 몰두하는 것이다. 이런 사람에게 도박이란 일시적인 항우울제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효과가 너무 짧고 지불해야 될 대가가 너무 큰 것이 불행이 아닐 수 없다.

물론 도박에 빠지는 이유는 이 외에도 수도 없이 많다. 그러나 오락을 넘어 선 도박은 그 결과가 항상 똑 같다는 사실을 명심할 필요가 있겠다.

/신영철-강북삼성병원 정신과 교수-도박 중독 클리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