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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외선 혐오주의자’인 당신이 놓치고 있는 것
최용범 건국대학교병원 피부과 교수
입력 2006/07/28 16:12
바야흐로 노출의 계절이다. 그러나 거리를 지나다 보면 노출의 계절이란 게 무색할 정도로 자외선을 두려워하는 사람 또한 많다. 얼굴엔 하얗게 자외선 차단제를 바르고 모자와 선글라스에 양산과 긴팔 소매 옷까지 마치 화생방전을 치루는 것처럼 자외선 노출에 중무장되어 있는 사람들이 종종 눈에 띤다.
자외선에 과다 노출되면 피부암 발생이 증가하고 피부노화를 촉진하며 기미, 주근깨의 원인이 된다는 것을 수많은 매체를 통해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왔기 때문이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예로부터 태양은 모든 생명에너지의 근원이었기에 숭배의 대상이었으며 아울러 건강을 증진시키는 수단으로 인식돼 왔다.
현대 의학의 아버지로 추앙받고 있는 히포크라테스는 태양광선의 치유력을 인정하였으며 로마시대에는 일광욕이 건강 증진에 유익하다고 믿어 국가에서 일광욕을 할 수 있는 시설까지 건설했다고 한다. 또한 태양광선은 체내의 비타민 D합성에 없어서는 안될 중요한 역할을 하한다. 그뿐 아니라 햇볕은 멜라토닌이란 호르몬 분비를 조절하여 사람을 활기차게 하는 효과가 있다. 영국과 같이 일사량이 적은 곳에서 우울증과 자살빈도가 높은 것이 비근한 예가 되겠다.
그러나 최근 이런 유익한 측면들은 도외시한 채 자외선에 의한 해로운 작용만 너무 부각되는 바람에 자외선은 모든 사람들이 기피하는 대상이 되어 버렸다. 거기에 거대 다국적 화장품기업의 항노화 미백화장품판매와 연관된 전세계적인 마케팅, 외모지상주의 열풍과 맞물려 햇빛은 이제 더 이상 우리주위에서 설 자리를 잃었다.
하지만 이런 연구 결과들은 대부분이 피부의 멜라닌 양이 적은 백인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 나온 것들이다. 따라서 그러한 사실을 그대로 유색인종에 적용하기엔 무리가 있어 보인다. 피부가 눈처럼 하얀 백인들이 가장 무서워하는 질병이 바로 악성 흑색종이다. 점처럼 보이지만 악성도가 높아서 치사율이 무척 높은 이 질환은 미국 백인들의 암 발생순위 일 이 위를 다투어 가면서 서구 언론의 이슈가 되는 질환이다.
하지만 우리나라 같은 유색인종들은 상황이 좀 다르다. 서구에서 유행하는 흑색종이 대부분 태양광선에 과다 노출된 부위에 생기는 유형이 많은 반면에 우리나라에서는 그 발생 빈도 자체가 매우 드물며 발생 부위 또한 손·발바닥같이 태양광선과 직접 관련이 없는 곳에 생기는 유형이 대부분이다. 이런 사실로 볼 때 멜라닌 양이 많은 유색인종들은 태양광선에 대한 저항력이 백인들보다는 크다는 반증이 되겠다.
물론 아무리 유색인종이라 하더라도 자외선에 대한 과다 노출은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피부노화·기미·주근깨의 원인이 된다. 어느 정도의 노출이 안전한가 하는 질문엔 개인차가 있기 때문에 일괄적으로 말할 순 없다. 그러나 대개 피부에 직접적인 손상을 가져오는 짧은 파장대의 자외선 조사량이 많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4시 사이의 일광노출은 되도록이면 피하는 것이 좋을 듯하다. 피부가 선천적으로 남보다 하얀 사람들은 특히 더 조심해야 하며 흐린 날에도 구름을 뚫고 자외선은 변함없이 지표면에 도달한다는 사실도 명심해야 한다. 피부가 빨갛게 될 정도의 과다한 노출은 어느 경우라도 피해야 하며 어린 시절의 과다 노출은 더욱 좋지 않다.
하지만 자외선의 해로운 측면만 너무 생각한 나머지 이른 아침이나 석양의 부드러운 햇빛을 즐기면서 산책하는 즐거움까지 포기한다면 건강증진의 측면에서 어느 쪽이 나은 건지는 한 번쯤은 생각해 볼일이다. 과유불급이라 했다. 세상사와 마찬가지로 우리 인체를 건강하게 만드는 법도 중용의 길을 걸어야 한다는 어느 은사님의 말씀이 떠오르는 아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