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비인후과
[목소리칼럼4] 천상의 목소리 ‘파리넬리’ 수술로 재현
입력 2005/11/23 15:00
파리넬리(Farinelli). 자신의 생식기를 절단해 남성의 생식 기능을 포기하는 대신 여성의 아름다운 목소리를 얻게 된 ‘카스트라토’의 대표적인 인물이다. 파리넬리가 오페라의 아리아를 노래하면 여성들은 혼절하고 남성들마저 열광했다고 전해질 정도로 그의 목소리는 아름다웠다.
남성이면서도 여성의 가장 높은 음역을 노래하는 카스트라토는 흔히 ‘여성이 낼 수 없는 여성의 목소리’, ‘영혼의 목소리’, 혹은 ‘천상의 목소리’라고 불린다. 카스트라토는 기교적 성악을 중요시하던 17~18세기에 크게 유행했으며 당시 오페라의 중요한 여성 역을 담당했었다.
카스트라토의 역사는 변성기 이전 남성의 성기와 고환을 완전히 절단해 여성화 시키거나 성기를 남기고 고환만 제거해 귀족들의 잠자리 노리개로 활용했던 고대 환관(宦官)의 전통에서 시작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환관들은 고대 이집트나 메소포타미아 지방부터 이미 존재했다. 그때부터 남성의 성기를 절단하지 않고 고환만을 제거한 환관의 경우 여성의 목소리가 난다는 것이 경험적으로 알려졌던 것이다.
소아기에서 사춘기로 접어들면 육체적이나 정신적으로 현저한 변화가 일어난다. 남성의 경우 고환에서 남성호르몬이 생성, 분비돼 신체의 많은 부분들이 급격히 성장하고 남성화된다. 생식기가 커지고 음모나 겨드랑이 털이 자라며 후두의 골격이 급격하게 자라면서 변성기도 거치게 된다.
변성기 때는 어린 시절의 작은 후두가 남성호르몬에 의해 커지면서 굵고 낮은 남성의 목소리로 변한다. 그러나 카스트라토의 경우 변성기가 시작되기 전에 고환을 제거하기 때문에 후두가 발달하지 못한다. 몸은 커져도 후두는 커지지 않아 어린 시절의 높은 음역이 그대로 이어지게 되는 것이다.
카스트라토 목소리의 가장 큰 특징은 신체의 발성기관, 즉 폐, 후두, 인두, 구강에서 후두를 제외한 다른 부분은 성인 남성의 크기를 갖고 있지만 후두의 성대만은 소년의 상태로 머물러 있다는 점이다.
성대가 작아 여성만이 낼 수 있는 높은 음역의 목소리를 내면서도 발성의 에너지원인 폐가 크고 소리의 공명을 좌우하는 인두와 구강이 넓기 때문에 힘이 있으면서도 청아한 신비로운 목소리가 나는 것이다. 카스트라토는 여성 소프라노보다도 더 깊은 음색과 넓은 음역의 소유자였다.
카스트라토는 1810년 이탈리아를 점령한 나폴레옹에 의해 엄하게 단속되면서 자취를 감추기 시작, 1922년 마지막 카스트라토 알레산드로 모레쉬(Alessandro Moreschi)의 사망과 함께 맥이 끊겼다. 현재도 가성 발성을 통해 여성 파트를 담당하는 ‘카운터 테너’가 그 명맥을 유지하고는 있지만 카스트라토만큼 넓은 음역을 구사하기는 쉽지 않다.
천상의 목소리를 얻기 위해 남성을 포기하는 카스트라토의 목소리는 이제 더 이상 들을 수 없다. 하지만 트랜스젠더와 마찬가지로 ‘음성성형수술’을 통해 카스트라토의 후두, 성대와 같은 크기의 변화를 갖게 될 수는 있다. 따라서, 기술적으론 카스트라토의 재등장도 가능한 셈이다.
/김형태-예송이비인후과 음성센터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