싫은 것도 일부러 하면 면역력 늘어
만사태평인 사람에겐 병도 발 못붙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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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을 먹으면 그때는 나은 것 같으나 이내 증세가 돌아왔다. 몸에 좋다는 건강식품이란 안 먹어 본 것이 없건만 별로 달라지는 것도 없었다. 이제는 병원 가기도 지겨워서 그대로 버텨보려고 하지만 하루하루가 힘들고 우울하다.
온실이나 실내에서 가꾸는 난초는 잘 키웠을 때 매우 아름다운 꽃을 피운다. 하지만 난초는 밖에 내다 놓는다든지, 물을 조금만 많이 주면 금세 시들거나 죽어버린다.
반면에 들판의 잡초는 평범한 외모이긴 하지만 모진 비바람의 환경 속에서도 끈끈한 생명력을 뽐낸다. 따가운 햇볕에 만발하고 매서운 추위에도 우뚝 선다.
우리 주위를 보면 난초 같은 사람이 매우 많다. 입맛에 맞지 않는 음식은 먹지 못하고, 환경이 바뀌면 잠을 못 자고, 화장실도 제대로 못 간다. 더우면 더워서 걱정, 추우면 추워서 걱정인 사람들이다.
이런 사람들은 싫어하는 사람들도 많고 사회적 환경에도 매우 민감하다. 조류독감이나 광우병 소식을 접하면 육류를 아예 먹지도 않는다. 반면에 잡초 같은 사람들은 못 먹는 음식이 없고, 아무데서나 잘 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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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매개 전염병에 대해서도 주의는 하지만 별 탈없이 다양한 음식을 즐긴다. 무더운 여름은 여름대로 즐기고 매섭게 추운 겨울은 겨울대로 즐긴다. 누가 자존심을 건드려도 별로 영향을 안 받는다.
난초 같은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자기도 잡초가 되고 싶지만 자기 몸이 그렇지 않다고 한다. 누구는 체질이라서 어쩔 수 없고, 누구는 성격이라서 어쩔 수 없다고 한다.
그러나 자신의 신체가 환경에 민감하냐 안 하냐는 전혀 유전적이지도 않고, 체질적인 것도 아니다. 이는 매우 후천적인 것으로, 사실 오랜 시간에 걸쳐 학습된 것일 뿐이다. 살아온 환경, 어렸을 때부터의 교육, 과거와 주변의 경험, TV나 신문을 통해 쏟아지는 질병에 대한 정보 등으로 인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몸이 조건화된 것이다.
조건화된 몸은 ‘탈(脫)조건화’ 과정을 거치면 개선이 된다. 즉 재학습에 의해 몸을 바꾸는 것이다. 진료실에 찾아오는 위장병 환자에게 나는 이렇게 권한다. 배탈나게 하는 음식이 있으면 열 번 정도 더 먹어보라고. 어떤 음식도 받아들이겠다는 마음가짐이 되면 사실 열 번 연습할 필요도 없이 잘 소화시키기 마련이다.
화장실 가는 것이 문제인 사람은 평소에 배뇨와 배변훈련이 필요하다. 배뇨훈련은 배뇨 간격을 늘리면서 공중화장실을 사용해 보는 것이고, 배변훈련은 반대로 장이 스스로 움직일 때까지 그대로 내버려 두는 것이다.
운동을 잘 하다가도 겨울이 되면 혈압이 무섭다고 바깥 출입을 줄이고 움츠러드는 사람이 있으면 나는 일부러 추운 날씨에 더 나가라고 권한다. 따뜻함에만 길들여 있는 몸은 추위에 노출되면 혈압이 오르지만, 추워도 좋고 더워도 좋은 사람의 몸은 미동도 없이 즐겁기만 한 것이다. 고혈압 환자는 추위에 운동하면 안 된다는 것은 그 말을 믿는 사람들에게만 해당된다.
싫은 사람이 많은 사람에게는 그 싫은 사람을 더 만나 보라고 권한다. 그 사람을 좋아하라는 것이 아니라 우연이라도 그 사람을 만났을 때 자신의 몸이 민감해지는 것을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반신반의하며 자신의 병을 고쳐 달라던 앞서의 이씨는 3개월 잡초가 되는 훈련으로 지금은 아무런 약을 먹지 않아도 잘 지내게 됐다. 자기 몸을 지배하게 된 것이다.
(유태우 서울대병원 가정의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