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

[21세기의재앙 신종전염병] 사스는 1주만에 30개국퍼져

교통발달·교류증가로 전세계 동시감염
매년 500여건 발생 원천차단 불가능


▲ 지난 4월 29일 오후 인천항을 통해 중국으로부터 입국하는 여행객들이 사스 검역을 위해 적외선 열감지기를 통과하고 있다. /조선일보DB
스위스 제네바의 세계보건기구(WHO) 별관 4층엔 ‘아웃브레이크 룸’이란 국제 전염병 상황실이 있다. 전염병 감시대응국(Communicable Disease Surveillance & Response) 소속 방역 전문가들은 하루 24시간 이곳서 전 세계 전염병 발생 현황을 체크하며, 사태가 심각하면 즉석에서 방역 전문가를 현지에 파견한다. 감시대응국 딕 톰슨 공보관은 “연간 1000여건의 전염병 발생 첩보가 입수되는데, 그중 절반 정도가 실제 상황”이라고 말했다.

미국 질병통제본부(CDC)의 역할도 WHO 못지않다. CDC 전염병정보국(EIS) 더글러스 해밀턴 국장은 “지금 이 시각 140명의 EIS 요원이 미국은 물론 세계 곳곳의 전염병 발생 현장을 누비고 있으며, ‘탄저균 테러’와 같은 대형 사건이 발생하면 2800여명에 달하는 전직 EIS 요원이 총 동원된다”고 말했다. EIS는 에볼라를 주제로 한 더스틴 호프먼 주연의 영화 ‘아웃브레이크’에서 우주복처럼 생긴 옷을 입고 전염병 발생 현장에 투입된 바로 그 팀이다. 2000~02년 EIS 요원으로 활동한 질병관리본부 역학조사과 허영주 과장은 “2년 동안 미국 전역을 돌아다녔고, 아이티(홍역), 멕시코(살모넬라) 등 전염병이 발생한 8개국에 조사를 나갔다”며 “세계 어느 곳이든 이상한 전염병이 발생했다면 그곳엔 항상 EIS팀이 있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동남아 깊숙한 산간 마을에서, 아프리카의 오지에서 발생한 전염병에 WHO와 CDC가 이토록 깊은 관심을 갖는 이유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세상에 우리가 살고 있기 때문이다. 중세 유럽의 페스트와 작년에 발생한 사스를 비교하면 이 점은 더욱 명확해진다. 1330년대 중국서 발생한 페스트균이 상선(商船)을 통해 이탈리아로 옮겨진 것은 10년이 훨씬 지난 1347년이었고, 이것이 유럽 전역으로 확산되는 데도 5년 이상 걸렸다. 그러나 사스는 불과 며칠 만에 전 세계로 퍼져 나갔다.





2002년 11월 사향고양이와 뱀으로 만드는 ‘용호봉황탕(龍虎鳳皇蕩)’이 주특기인 중국 선전의 요리사 황싱추(36)가 폐렴에 걸려 3개월간 305명에게 전염시킬 때까지만 해도 사스의 확산은 ‘재래식’이었다. 그러나 이들을 치료한 리우지안룽(64) 교수가 잠복기 상태로 홍콩에서 열린 국제 학회에 참석해, 같은 호텔에 묵고 있는 캐나다인, 싱가포르인, 아일랜드인 등 10명에게 전염시키고, 이들이 자기 나라로 돌아가 가족과 친지들에게 병을 옮기는 등, 사스가 세계 30여개국으로 전파되는 데는 불과 1주일도 걸리지 않았다. 강력한 전염병 전파자를 지칭하는 ‘수퍼 스프레더(super spreader)’란 신조어가 생겼으며, 리우지안룽 교수는 역사상 제1호 수퍼 스프레더가 됐다.

사스 환자를 가장 많이 치료한 홍콩 프린스 웨일스 병원 감염내과 조지프 성 교수는 “중국 시골 마을서 시작된 사스가 수퍼 스프레더를 통해 순식간에 세계 30개국으로 퍼져나간 과정이야말로 미래의 전염병이 어떤 모습으로 인류를 공격할 것인지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일대 사건”이라고 말했다.

전염병의 국제적 전파는 예나 지금이나 사람(사스), 동물(조류독감), 곤충(웨스트나일 뇌염), 음식(O-157) 등을 매개로 이루어진다. 당연히 방역의 핵심은 전염 경로를 차단하는 것. 그러나 교통수단의 발달, 지구 환경의 변화, 음식공급의 세계화 등에 따라 방역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태국 보건성 신종전염병국 다리카 킹네이트 국장은 “올초 태국서 발생한 조류독감은 대륙을 이동하는 철새가 주범으로, 동물이나 곤충을 통한 전염병의 전파는 일반적으로 속도가 느리다는 통념을 깨뜨렸다”고 말했다. 미국 CDC 공보국 폰 로? 수석위원은 “탄저균 테러에서 보듯 최근엔 생물무기를 통한 전염병 전파 가능성까지 고조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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