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20~30대 젊은층의 탈모 인구가 늘어나면서 한국의 탈모 시장이 급격하게 팽창하고 있다. 지금까지는 탈모가 중장년 남성들만의 문제였지만, 탈모 연령대가 내려가면서 상황이 심각해졌기 때문이다. 모발관리 업체인 트리카의 조중원 사장은 “탈모 관리를 위해 찾는 고객들 중 60% 정도가 20~30대에 몰려 있다”고 말했다.
젊은 탈모 환자들이 치료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이유는 그만큼 사회적 경제적 손실이 크기 때문이다. 대머리들이 가장 좌절을 많이 느끼는 것은 이성교제. 대머리는 결혼정보 업체에서도 사실상 기피인물이다. A 결혼정보회사의 관계자는 “머리숱이 적은 것은 그다지 큰 문제가 아니지만, 겉보기에도 탈모가 너무 심한 경우에는 회원 가입을 받지 않고 있는 것이 사실”이라면서 “여성들이 대머리 남성은 기피하기 때문에 우리 회사의 신뢰도를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조치”라고 말했다.
모발관리 업체 고객 60%가 20~30대
그렇다고 여성들이 탈모의 위험에서 벗어나 있는 것은 아니다. 청년 탈모와 함께 여성의 탈모가 증가한 것도 최근의 추세. 헬스메카 한의원 이문원 원장은 “여성들의 경우 출산 후 탈모나, 스트레스나 다이어트로 인한 탈모가 증가하고 있어 최근 치료를 받기 위해 병원을 찾는 사람이 늘었다”고 말했다. 지난해부터 모발관리 업체와 가발 업체에서도 여성 탈모 고객을 위한 제품을 내놓고 있는 상황이다. 여성 탈모의 경우 머리 전반의 숱이 줄어드는 것이 특징. 모발관리 업체 트리카의 이진명 대리는 “여성들은 남성에 비해 탈모 정도는 덜하지만 외모에 대한 관심은 오히려 더 높기 때문에 고객 비중에서 볼 때 30% 정도를 차지할 정도로 증가했다”고 말했다.
취업에 있어서도 마찬가지. 박모(34)씨는 20대 초반부터 탈모가 시작돼 대학을 졸업할 무렵 앞머리의 절반 가까이 숱이 줄어들었다. 문제는 취업 면접에서 불거지기 시작했다. 박씨는 “면접 때마다 면접관이 ‘자네 진짜 28살 맞냐’며 실실 웃으면서 물어 보는데 면접 장소가 아니었다면 욕이라도 한마디 해 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박씨는 졸업하던 해 취업에 실패했지만 이듬해 봄 가발을 착용한 상태에서 면접을 치르고 취업에 성공했다. 박씨는 “지금까지도 탈모 때문에 취업에 성공하지 못했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결과적으로 볼 때 가발을 쓰고 나서 취업에 성공한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탈모가 심한 20~30대의 고민은 보통사람의 상상을 초월한다. 인터넷 다음카페에 개설돼 있는 대사모(대머리사랑모임. http://cafe. daum.net/baldhead)의 게시판에서는 탈모로 고통받는 사람들의 심정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23살이란 젊은 나이에, 내가 전생에 무슨 잘못을 그리 많이 저질렀기에, 이런 쓰디쓴 고통을 주는 건지….”
“과연 어떤 직장을 구할 수 있을까요. 너무 힘이 듭니다. 다 떨어지고….”
“거울 볼 때마다 죽고 싶다. 삶의 의미가 없다. 내가 왜 사는지도 모르겠다.”
한때 사회적 문제가 됐던 ‘동반자살 사이트’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절망적인 심정을 표현한 글들을 이 게시판에서는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회사원 이모(31)씨도 지난해 8월 머리 오른쪽에서 원형탈모가 발견돼 이 카페에 가입했다. 이씨는 “주변에서 머리가 빠져 걱정하는 친구를 보면 ‘정력 좋겠다’면서 농담을 건네기도 했는데 막상 내 머리에 구멍이 나니까 겁이 덜컥 나더라”면서 “다른 사람들은 내 고민을 장난삼아 듣는데 이 카페에서는 내 심정이 어떤지 다 이해해 주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이씨도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원형탈모를 치료하기 위해 별의별 방법을 다 동원했다. 발모에 좋다는 샴푸도 사용했고, 물구나무를 서면 혈액순환이 좋아져 탈모 방지에 좋다는 소리를 듣고 매일 밤 10분씩 거꾸로 서 있었다. 나중에는 애완견용 피부약이 원형탈모에 효과적이라는 주변 사람들의 말을 듣고 하루에 두 번씩 바르기도 했다. 그러나 이씨는 인터넷 카페에서 돌아다니는 정보에 대해서도 회의적이다.
“예전에는 인터넷 카페에서 대머리 관련 서비스나 상품에 대한 객관적인 정보를 얻을 수 있었는데 요즘은 좀 믿기 힘들죠. 웹 사이트가 유명해지다 보니 업체 사람들이 회원으로 가입해 은근히 자사 제품을 선전하고 다른 회사 제품은 깎아내리는 글을 게시판에 올리더군요.”
이처럼 탈모는 당사자에게는 심각한 문제이지만, 사회적으로는 ‘웃음거리’에 불과했다. 탈모 치료도 19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열악했다. 정체불명의 중국 발모제가 입소문을 타고 최고의 ‘명약’으로 인정을 받았다. 탈모 치료 방법 역시 미장원, 이발소에서 귀동냥하는 수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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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최근 들어서는 상황이 바뀌었다. 전문 탈모 방지 샴푸, 헤어토너 등의 제품은 물론 본격적인 두발관리센터, 약물 치료, 한방 치료를 찾는 인구가 늘었다. 또한 1990년대 후반부터 밀란, 하이모 등을 중심으로 전문 맞춤가발이 인기를 누리기 시작했다. 또한 탈모가 심한 경우 가발이나 모발이식를 받는 사람도 점차 증가하고 있다. 탈모 시장에 또다른 관심을 보이고 있는 곳은 병원. 양방, 한방에 관계없이 탈모 치료가 병원의 새로운 수익모델로 떠오르자 탈모 전문병원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한국 탈모 환자의 수는 약 340만명. 하지만 탈모 비율은 외국에 비해 높지 않다. 백인의 경우 남자성인의 탈모 비율이 45% 가량이고, 흑인도 40% 정도에 이른다. 그러나 동양인의 경우에는 25~30%로 비교적 적은 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탈모 시장이 팽창하는 것은 대머리에 대한 사회적 편견이 한몫하고 있다. 여기에 ‘대머리는 공짜는 좋아한다’ ‘대머리는 늙어 보인다’는 것은 대머리에 대한 한국 사회의 대표적인 편견. 여전히 TV드라마나 코미디에서는 대머리가 ‘웃기는’ 역할만 맡을 뿐 대머리 스타일의 ‘재벌2세’는 없다.
이에 따라 당사자들이 느끼는 심리적 고통도 크다. 2002년 한국리서치와 세계적인 조사기관인 PSL이 실시한 ‘20·30대 남성의 탈모에 대한 인식조사’에서는 한국인들이 다른 나라에 비해 훨씬 더 탈모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이 강한 것으로 나타났다. 조사 결과 대머리는 ‘나이들어 보인다’거나 ‘신체적으로 덜 매력적’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외국에 비해 20%포인트 이상 높다고 밝혀졌다. 게다가 머리카락 한 올 남기지 않고 깨끗하게 깎아버리는 대머리 스타일을 한국에서는 연예인이 아니라면 흉내내기 힘들다.
업계에서는 모발 관리 서비스, 탈모 방지 약, 가발 산업 등을 합하면 지난해 국내 탈모 시장 규모는 4000억원에 달했고, 올해는 병원과 미용실도 탈모 시장에 가세를 하고 있기 때문에 두 배 가량 시장 규모가 커질 것으로 보고 있다.
“평생의 한” 노인 모발이식도
일본의 경우 시장 규모가 이미 700억엔을 넘어섰다고 알려졌다. 탈모 관련 의약품 개발에 있어서 가장 발달해 있는 미국 시장도 만만치 않다. 미국의 탈모 인구는 6000만명 이상(남성 4000만, 여성 2000만). 가장 널리 사용되고 있는 탈모치료제 프로페시아(미국 FDA의 공인을 받은 탈모치료제)의 경우 2003년 한 해 미국에서만 1억달러어치 이상이 팔려나갔다. 모발이식 수술도 급격히 늘어 작년 한 해 미국에서 2만9000건의 시술(가격으로 환산할 경우 3억달러 이상)이 행해졌다.
중장년층 역시 탈모 시장의 고정고객. 특히 수십 년간 진행된 탈모 때문에 모근이 완전히 사라진 중장년층은 모발이식수술을 받는 경우가 많다. 모발이식 전문병원인 털털피부과 황성주 원장은 지난해 당혹스러운 일을 경험했다.
“나이가 70대 중반인 할아버지가 머리를 심겠다고 병원을 찾아왔길래 ‘구태여 머리를 옮겨 심을 이유가 없을 것 같다’고 했죠. 그랬더니 그 할아버지가 ‘머리카락 없는 게 평생의 한이었다. 이제 돈 좀 벌어 수술하겠다는데 왜 당신이 수술을 하라마라 하느냐’고 타박을 놓는 겁니다.”
이러한 시장의 변화는 결국 탈모가 희화의 대상에서 새로운 수익모델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탈모로 인해 스트레스를 많이 받을수록 지갑을 열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가발 업체 밀란의 하응수 사장은 “우리 사회에서 탈모가 일종의 질병으로 받아들여지기 시작한 것이 탈모 시장이 팽창하게 된 이유”라고 평가했다.
( 주간조선 기자 yep249@chosun.com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