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과

만성 위염·변비·두통, 정신과서 고친다

이지혜

불안장애·우울증이 신체 증상으로 나타나
내과 검사 이상 없고 통증 계속땐 의심을

10여년간 위암과 변비… 병원 수십군데 전전

#1 회사원 박모(남·57)씨는 지난 10여년간 기능성 소화장애(신경성 위염)와 변비로 고생해 왔다. 조금만 먹어도 속이 쓰리고 불편할 뿐만 아니라 늘 피곤하고 잠을 자도 개운치 않았다. 밥을 아주 조금씩 나눠 먹어야 할 정도로 소화가 안 되니 회사일 해내기도 힘겨웠다. 내시경 검사를 해도 경미한 위염 이외에는 아무 이상이 없다는 의사의 말을 믿을 수가 없어 병원 수십 군데를 전전했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박씨는 사실상 치료를 포기했는데 우연히도 정신과에서 우울증 진단을 받았다. 우울한 정도가 심하지 않아 본인은 의심조차 하지 않았지만 아주 오랜 기간에 걸쳐 만성화됐다는 것이었다. 3주 정도 항우울제를 복용하자 아침에 일어나면 개운하고 피로감이 훨씬 덜해졌다. 이후 머리도 맑아지고 소화 기능도 회복돼 박씨는 잃어버렸던 인생을 되찾은 심정이다.

지독한 통증 진통제 맞아도 효과 없어

#2 폐암 환자 이모(남·74)씨는 온몸이 아프고 가슴이 답답해 죽을 지경이었다. 항암치료 때문이라 여긴 이씨는 치료를 중단했지만, 온몸이 찢어지는 듯한 통증이 사라지지 않아 입원해야만 했다. 가슴이 답답해 심장 검사를 해도 이상이 없고, 통증 때문에 진통제를 맞아도 효과가 없자 괴로운 나머지 가족에게 심하게 짜증을 부렸다. 정신과 전문의와 면담하면서 이씨는 불안하고 아무런 의욕도 없으며 만사가 다 귀찮고 때로는 죽고 싶은 생각마저 든다며 눈물을 글썽거렸다. 심한 우울증이었다. 우울증 약을 복용한 지 5일 만에 지독한 통증과 가슴 답답함이 사라졌다. 2주 후에는 다시 항암 치료를 받을 수 있게 됐다.

우울증으로 당뇨병 악화·고혈압까지

#3 5년 전부터 당뇨를 앓아온 최모(여·45)씨는 최근 혈당 조절이 잘 되지 않았다. 폐와 심장 검사를 했으나 이상은 없었고, 고혈압이 있다고 하여 혈압약을 먹기 시작했다. 하지만 10여분간 가슴이 답답하고 숨이 멎기라도 할 듯 호흡이 가쁜 증상이 계속되자 최씨는 잠을 이루지 못한 채 ‘큰 병이 난 것이 아닐까’ 걱정했다. 정신과로 의뢰된 최씨는 공항장애와 우울증 진단을 받았다. 불안 발작이 나타나면서 가슴이 답답하고 맥박이 빨라지면서 순간적으로 혈압도 올라가 고혈압 진단을 받은 것이었다. 또 우울증으로 인해 기존에 앓고 있던 당뇨병도 악화된 것이었다. 일주일 정도 약물 치료를 받으면서 안정을 되찾기 시작했고, 혈당치와 혈압도 정상으로 돌아왔다.


▲ 서울대병원 정신과 함봉진 교수가 내과에서 의뢰된 우울증 환자와 상담을 하고 있다. / 주완중기자
마음을 치료해 몸의 병을 고치려는 시도가 확산되고 있다. 현대 의학이 다양한 과로 세분돼 있는 데다, 환자도 의사도 당장 아픈 곳의 치료에만 집중하다 보니 몸과 마음의 상관관계를 소홀히해 왔던 게 사실. 그러나 마음의 병으로 몸까지 고통 받는 환자를 위해 최근에는 이를 함께 치료하려는 움직임이 정신과를 중심으로 일어나고 있다.

서울대병원 정신과 함봉진 교수는 국내 최초로 지난 7월부터 정신과 외래 환자는 받지 않고, 내과 외과 등 다른 과 환자 가운데 정신과 질환이 의심되는 환자만을 전담치료하는 ‘자문 담당’을 맡고 있다. 미국과 유럽에서는 ‘종합병원 정신의학’으로 자리잡은 제도다. 다른 과 검사에서 이상이 없으나 계속 증상을 호소하는 환자들을 전문적으로 진료하고 있다. 전북 익산 원광대병원도 내과 교수와 정신과 교수가 함께 환자를 진료하는 협진을 정례화하고 있으며, 그 밖에 신촌세브란스병원, 강북삼성병원 등 대학병원에서도 정신과에 환자를 의뢰하는 내과와 외과 교수들이 많아지고 있다. 함 교수는 “서울대병원 전체 환자의 30% 정도는 정신과 치료가 필요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신촌세브란스 정신과 고경봉 교수는 “정신과 질환, 특히 불안장애나 우울증이 있으면 마음의 고통이 신체 증상으로 나타나는 경우가 아주 흔하다”며 “이런 환자들은 검사를 해도 별다른 이상이 없고, 혹 다른 질병이 있더라도 치료가 잘 되지 않거나, 유난히 심한 통증을 느낀다”고 설명했다. 우울증을 앓고 있거나 스트레스를 많이 받으면 뇌 속 신경전달물질과 호르몬 분비에 변화가 생기고 면역력도 떨어진다. 또 근육이 과도하게 긴장되고 통증에 더 예민하게 반응해 목이 뻣뻣하고 몸이 아프다고 느끼기도 한다는 게 고 교수의 설명이다. 특히 자율신경의 지배를 받는 위는 마음의 병과 밀접하게 연결돼 있다고 한다. 원광대병원 신경정신과 이상열 교수는 “편도, 해마에서 감지한 스트레스, 불안, 우울이 시상하부를 거쳐 자율신경에 전달되면 위장 운동이 저하되고, 위산이 지나치게 많이 분비되거나 미미한 통증도 민감하게 느끼게 된다”고 설명했다.

함봉진 교수는 “본인은 괴로운데 의사는 이상이 없다고 하면 오진을 의심해 ‘닥터 쇼핑’을 하게 된다”며 “환자의 고통을 빨리 덜어 주고 의료 자원 낭비와 의료비 과잉 지출을 막기 위해서도 정신과와 협진하는 제도가 정착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 이지혜 기자 wigrace@chosun.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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