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
불티나는 은나노… 웰빙 효과는 ? 글쎄
이지혜
입력 2005/03/15 16:46
은의 항균·살균작용과 나노 기술 결합
질병 예방 임상실험 결과 아직 없어…손 자주 씻는게 감염 막는데 더 효과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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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나노 기술로 가공된 다양한 제품들은 비싼 가격에도 불구하고 웰빙 바람을 타고 소비자들의 구미를 강하게 당기고 있다.
■은의 살균·항균 작용
은의 살균·항균 작용에 대해선 두 가지 설명이 가능하다. 하나는 은이 수분과 만나면 쉽게 은 이온(Ag+)으로 되는데, 은 이온이 세균과 만나면 세균의 호흡을 관장하는 효소를 억제하기 때문에 균이 숨을 쉬지 못해 죽게 된다는 설명이다. 다른 하나는 금속 상태의 은(Ag)이 산소 분자(O₂)와 결합하면서 산화작용이 강한 활성 산소를 내놓기 때문이라는 것. 산화작용에 비례해서 살균력도 강해진다.
살균을 위해 은을 이용한 역사는 의외로 길다. 고대 유럽의 귀족들은 식중독 예방을 위해 은 식기를 사용했고, 우리나라서도 예부터 은 수저를 썼다. 인도에서는 상하기 쉬운 단 음식을 보관할 때 은으로 만든 박막(薄膜)을 사용했으며, 서부개척 시대 미국에서는 물이나 우유를 마실 때 가지고 다니던 은 동전을 넣어 세균을 없애고 마셨다고 한다.
의약품 중에도 은이 함유된 것이 있다. 화상 입은 피부가 세균에 감염됐을 때 또는 욕창 등 심한 피부 손상으로 2차 감염이 우려될 때 사용되는 실바딘(실버설파다이아딘)이 그 예다. 이비인후과에서 쓰는 점막살균소독제에도 은이 함유된 것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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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의 살균·항균 효과가 그동안 다양하게 활용되지 못했던 것은 은이 비싼 귀금속이기 때문. 이를 해결한 것이 나노 기술이다. 나노 기술이란 물질을 아주 미세한 크기(1나노미터=10??m, 머리카락 굵기의 1만분의 1 정도) 수준에서 조작, 가공하는 기술을 말한다.
은나노 기술은 살균력을 가진 은을 전자현미경으로만 관찰이 가능한 수 나노미터 크기의 작은 입자로 대량 생산해 각종 전자제품의 표면을 코팅하거나 플라스틱, 섬유 등에 섞어 사용하는 것이다. 한양대 화공과 오성근 교수는 “기술의 핵심은 은을 가능한 한 작은 입자로 만들어 고루 분포시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렇게 하면 은 입자와 미생물 간에 접촉할 수 있는 면적이 늘어나 적은 양의 은으로도 충분한 살균 효과를 거둘 수 있기 때문이다. 나노 은입자를 만들 때 주의할 점은 순도를 무척 높여야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불순물로 0.01%의 니켈만 들어 있어도 인체에는 무척 해롭다.
사실 페니실린 같은 항생제가 개발되기 전인 1930년대까지 은 요법은 살균에 활발하게 쓰였다. 페니실린이 개발되면서 수많은 항생제가 출현했지만, 인간이 정복한 유해 세균은 그리 많지 않다. 오히려 내성이 생긴 ‘수퍼 세균’의 등장 때문에 90년대 이후 일부 과학자들은 은이 이들을 정복할 무기라고 보고 연구에 몰두하고 있다.
■인체에 얼마나 도움이 되나
은나노 기술을 도입한 각종 생활용품들이 인체에 얼마나 도움이 되는가에 대한 답은 아직 확실치 않다. 은의 살균력 자체가 의심스럽다는 뜻이 아니라, 특정 은나노 제품을 실제로 사용하면 정말 감기에 덜 걸리고, 새집증후군이나 아토피 피부염이 예방되는 것인지에 관한 구체적인 실험 결과나 임상 자료가 아직 없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오히려 은나노 제품을 비롯한 다양한 살균·항균 제품들이 가진 한계에 대해서 한번쯤 생각해 볼 필요는 있다고 지적한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비록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말 그대로 ‘수많은’ 세균들의 것이기도 하다. 화장실에는 대략 8200억마리의 박테리아가 살고 있으며, 인간 장 속에 사는 세균들은 장 무게의 3분의 1 정도를 차지한다. 이화여대 약대 이강만 교수(미생물 전공)는 “완벽하게 세균이 없는 세상을 만든다는 것은 가능하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우리 자신을 부정하는 일이기도 하다”며 “인간의 몸에도 수조(兆)개의 세균들이 살고 있으며, 이런 정상균들은 나쁜 병원성 균들로부터 우리 몸을 보호하는 작용을 한다”고 말했다.
미국 컬럼비아 간호대학의 일레인 라슨 박사는 뉴욕의 224가정을 두 그룹으로 나눠 재밌는 실험을 했다. 한 그룹에서는 항균 세제 등 다양한 항균제품을 사용하게 하고, 다른 그룹에서는 일반 제품을 사용하게 한 뒤 48주 동안 관찰한 결과, 두 그룹이 독감이나 감기·식중독 등에 걸리는 비율은 별 차이가 없었다.
사람은 30분마다 평균 300여가지 물건의 표면을 만진다. 이 모든 물건을 항균 제품으로 대체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신촌세브란스병원 감염내과 최준용 교수는 “차라리 손을 자주 씻는 것이 세균 감염을 막는 데는 훨씬 효과적”이라고 지적했다.
( 이지혜 기자 wigrace@chosun.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