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의학과
[장수혁명의 현장] ‘神仙의 식탁’을 찾는 최첨단연구소들
임호준
입력 2003/05/06 19:32
“개인 유전자특성따라 ‘맞춤형 영양소’ 곧 처방 가능”
“小食과 콩·푸른생선·발효식 섭취가 長壽비결”한목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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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최고급 호텔의 스위트룸 같았다. 미 농무성(USDA)과
터프스(Tufts)대학이 공동 운영하는 ‘진 메이어
인간노화영양연구센터(HNRCA·Human Nutrition Research Center on
Aging)’의 실험 대상자용 숙소. 은은한 조명아래 감미로운 음악이
흘렀고, 블라인드를 걷자 통유리 창 밖으로 보스턴 도심이 내려다
보였다.
HNRCA는 자원자들에게 특정식품 또는 영양소를 섭취케 한 뒤 피 등을
뽑아 생리학적 변화를 관찰하는 일종의 ‘생체실험’을 진행하고 있다.
신문광고 등을 통해 모집된 자원자들에겐 연구기간에 따라 보통
수천달러의 ‘참가비’가 지급된다. 1979년 연구소 개설 이후 지금껏
9000여명이 이 같은 실험에 참가했다. 안내를 맡은 금발의 란디
베란바움양은 “연구 주제에 따라 수시로 참가자들을 모집해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며 “사람을 직접 ‘실험’한 HNRCA의 연구결과는
학계에서 최고의 권위를 인정받고 있다”고 자랑했다.
음식과 영양소에 관한 연구는 노화 연구의 여러 갈래 중 가장 오래
전부터, 가장 광범위하게 연구가 진행되는 분야. HNRCA를 비롯해
NIA(국립노화연구소), 텍사스대, 위스콘신대, 하버드대 등 수많은 대학과
연구소에서 음식·영양소가 노화에 미치는 영향을 집중 연구하고 있다.
목표는 동일하지만 연구의 방법론은 제각각이다. 쥐나 원숭이 같은
동물에게 특정 음식이나 영양소를 먹이고 실험하는 방법이 가장
일반적이지만, HNRCA처럼 사람을 직접 실험하기도 한다. 어떤 학자들은
각 나라의 음식문화와 질병 발생과의 상관관계를 집중적으로 분석하며,
장수촌을 찾아다니며 100세인의 음식과 식습관을 관찰하는 연구도 세계
곳곳에서 진행 중이다. 이같은 ‘전방위 연구’를 통해 인류는
무병장수하는 ‘신선의 식탁’을 어깨너머로나마 엿볼 수 있게 됐다.
현재까지의 연구를 종합할 때 가장 확실한 것은 소식(小食)이다. 적게
먹어야 무병장수하며, 많이 먹으면 그만큼 병이 많고 빨리 죽는다는
것이다. 이같은 결론은 쥐 등을 대상으로 진행된 수많은 동물실험 결과
도출됐다. 1910년대부터 세계 곳곳의 수많은 연구소에서 비슷한 실험을
했으나 결론은 언제나 한결같았다. 먹이를 적게 준 동물은 면역력이
높아지고, 암·당뇨병·심장병·치매 등의 발병률이 크게 낮아지며,
궁극적으로 수명이 연장됐다.
이 같은 결론은 NIA와 위스콘신대 등에서 사람과 같은 영장류인 원숭이를
상대로 한 실험에서도 비슷하게 나타나고 있다. 원숭이를 소식그룹과
포식(飽食)그룹으로 나눠 15년간 관찰한 NIA 조지 로스 박사는 지난해
연구결과를 중간보고하면서 “쥐 실험에서와 동일한 결과가 원숭이
실험에서도 관찰되고 있다”고 밝혔다.
소식연구로 유명한 재미 노화학자 유병팔 박사(텍사스대 명예교수)는
“음식물의 대사과정에서 발생하는 유해산소(free radical)가 세포의
노화와 암화(癌化)를 유발하는데, 음식을 많이 먹으면 유해산소의 양도
많아져 그만큼 빨리 늙고 암에도 잘 걸린다”고 설명한다. 하루 한
끼(점심·약 1800㎉)만 먹는 유 박사는 “소식이야말로 무병장수하는
가장 확실한 길”이라며 “무병장수하려면 평소 식사량에서 30% 정도를
줄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영양 불균형을 일으키는 무분별한 다이어트는 오히려 해롭다.
골다공증·불임·동맥경화증 등을 일으키며 심한 경우 신경마비·사망
등을 초래할 수도 있다. 소식 연구를 진행할 때도 칼로리를 줄였을 뿐
영양소는 제한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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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다. 장수촌과 100세인 연구 등을 통해 적포도주·올리브유·등
푸른생선·콩식품·발효식품(김치·요구르트 등)이 대표적
‘장수식품’으로 떠올랐다. 세계적 장수촌인 이탈리아 사르데냐 섬에서
100세 이상 장수노인을 연구하고 있는 NIA의 데이비드 슐레징거 박사는
“적포도주와 올리브유를 많이 먹는 식생활 습관이 샤르데냐인이
장수하는 것과 밀접한 관계가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영양학적으로는 비타민C, 비타민E, 베타카로틴 등 항산화제(抗酸化 )가
‘현대판 불로초’로 특히 주목받고 있다. 항산화제는 세포 노화를
촉진하는 유해산소를 차단하는 효과가 있다. HNRCA 염경진 박사는
“HNRCA에선 자원자들에게 항산화제를 투여하고 수일 또는 수주간 두
시간마다 피를 빼서 각종 생화학 검사를 함으로써 항산화제가 세포와
유전자에 미치는 영향을 ‘생체실험’을 통해 증명했다”고 말했다. 그
밖에 칼슘·셀레늄·마그네슘·토코페롤·레시틴·글루타민·글루코사민
등의 영양소도 노화를 억제하고 노인성 질환을 예방하는 효과가 있어
연구가 집중되고 있다.
HNRCA 로버트 러셀 소장은 “인간 유전자지도가 완성됨에 따라 유전자와
영양소의 상관관계에 관한 연구와, 영양소에 반응하는 개인의 유전적
특성 등에 관한 연구가 집중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조만간 인류는 개인의
유전적 특성에 따라 필요한 영양소의 종류와 양을 처방받게 될
것”이라고 공언한다. 무병장수하는 ‘불로초 처방’이 가능해진다는
것이다.
한편, 1992년부터 5년간 100세 이상 장수노인 169명을 조사한 하버드의대
토머스 펄스 교수팀은 ‘100세까지 살기(living to one hundred)’란
연구보고서를 통해 ▲지방이 전체 식사의 30%를 넘지 않도록 할 것
▲생선·야채·과일·섬유질이 많은 곡류를 많이 섭취할 것 올리브유를
자주 섭취할 것 ▲적포도주를 하루 한 잔 마실 것 ▲패스트푸드와 냉동이
필요 없는 포장음식을 피할 것 ▲감미료나 설탕이 많은 음식을 피할 것
등을 권하고 있다.
( 임호준 기자 hjlim@chosun.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