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질환
`마음의 병` 간단한 수술로도 고친다
임호준
입력 2003/08/12 19:16
강박적 행동… 걱정많고 우울… 폭력적인 성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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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병 수술’에 대한 대중의 인식은 지금껏 매우 부정적이었다. 잭 니콜슨이 주연한 외화(外畵)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에선 주인공 맥머피의 공격적·반항적 행동을 통제하기 위해 전기충격을 가해 뇌 일부(전두엽)를 파괴, 식물인간로 만들어 버린다. 이 같은 스토리는 1937년 포르투갈의 신경외과 의사 에가스 모니즈 박사가 개발한 ‘전두엽 절제술’에 과학적 근거를 두고 있다.
모니즈 박사는 심한 정신 분열병 환자를 치료하기 위해 뇌에서 충동과 감정 등을 조절하는 부위인 전두엽을 잘라내는 수술을 개발했다. 그 뒤 미국에서만 5만여명의 정신질환자가 이 수술을 받았으며, 그 공로로 모니즈 박사는 1949년 노벨 의학상을 수상했다. 그러나 이 수술은 무감정, 무충동, 지능·인지력 저하 등의 부작용이 컸고, 공산권 국가에선 정치·사상범 등을 통제하는 수단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결국 비윤리적이고 잔혹한 수술이라는 비판 때문에 1970년대부턴 거의 시행되지 않고 있다.
1990년대 이후 상황은 달라졌다. 기능성 MRI 등 진단기기와 ‘뇌 항해(네비게이션) 기법’ 등 수술기술의 발달로 별다른 부작용 없이 문제 행동(생각)을 유발하는 뇌의 특정 부위만을 파괴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이 같은 ‘마음 수술’은 하버드의대를 중심으로 전 세계로 확산됐으며, 국내서도 신촌세브란스병원, 강남성모병원서 비교적 활발하게 시행되고 있다.
마음 수술이 가장 일반적으로 시행되는 경우는 하루 종일 손을 씻거나, 수십 번도 넘게 자물쇠가 잠겼는가를 확인하는 등의 강박적 행동을 하는 ‘강박장애(OCD:Obsessive-Compulsive Disorder)’. 영동세브란스병원 정신과 김찬형 교수는 “뇌 전두엽과 그 아래 변연계, 기저핵 등을 연결하는 일종의 뇌 ‘회로’에 문제가 생겨 생각이 회로를 빠져 나오지 못하고 계속 맴돌기 때문에 발생한다”며 “이 회로를 끊어주면 강박 증상이 없어진다”고 설명했다.
수술은 통상 두개골에 1㎝ 정도 크기의 구멍을 낸 뒤 전기침을 넣어 고주파로 특정 신경 회로를 파괴하는 방식이다. 하버드의대 수술팀은 수술환자 44명을 5년 정도 추적 관찰한 결과, 45%인 20명의 강박증상이 크게 개선됐다고 지난 2002년 ‘미국정신의학회지’에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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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수술을 받으면 일시적으로 무감정, 무충동적으로 되고 지능이 약간 떨어지는 등의 부작용이 있지만 대부분 회복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김찬형 교수는 “사망이나 기타 심각한 장애가 거의 없는 매우 안전한 수술로 학계에서 인정받고 있다”며 “다만 최소 5년간 상담·약물치료를 해도 안 되는 난치성 강박장애 환자에게만 수술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수술이 필요한 난치성 강박장애 환자는 전체 강박장애 환자의 10~15%라고 김 교수는 추정했다.
강박장애에 대해선 뇌 세포를 파괴하지 않는 ‘심부(深部) 뇌 자극치료’도 시행되고 있다. 이는 뇌에 전극을 이식하고, 갈비뼈 안쪽에는 전극과 연결된 배터리를 이식해 주기적으로 고주파를 방출해 뇌를 자극하는 치료법. 주로 간질이나 파킨슨병의 치료에 시행되고 있지만 강박장애에도 치료 효과가 뛰어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세브란스병원 장진우 교수는 “워낙 비용이 비싸 국내선 파킨슨병 환자에게만 수술이 시행돼 왔다”며 “올가을쯤 강박장애 환자에게도 이 수술을 시행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공격적 성격(Agressive Behavior)’도 수술의 대상이 된다. 이는 이유 없이 다른 사람을 때리거나 때로는 자기 주먹으로 자기 얼굴을 때려 이를 부러뜨리는 등의 증상을 보이는 정신질환. 국내선 아직 시행되지 않았지만 유럽에선 공격적 성격 환자의 뇌 시상하부를 파괴하는 수술을 시행하고 있다.
독일서 이 수술법을 익히고 돌아온 서울대병원 신경외과 김동규 교수는 “시상하부는 교감신경의 통제탑으로 매우 중요하지만 부위를 잘 설정해 수술하면 큰 부작용이 없다”며 “수술이 필요한 환자가 나타나면 수술을 고려하겠다”고 말했다.
밥을 먹으려 하지도 물을 마시려 하지도 움직이려 하지도 않는 극심한 우울증이나 자살 위험이 큰 우울증 환자의 뇌에 전기충격을 가하는 전기충격요법도 수술은 아니지만 ‘수술적 치료’의 한 갈래로 간주된다. 양쪽 눈과 귀 중간쯤에 전극을 꽂아 고압의 전류를 흘려 보내는 일종의 ‘전기고문’과 같은 것으로, 치료효과가 즉각적이며 뛰어나다.
서울아산병원 정신과 김창윤 교수는 “매우 오래 전부터 시행돼 온 치료법으로 일시적인 기억장애를 제외하곤 부작용이 거의 없으며, 편도선 수술보다 안전하다”며 “고통도 거의 없는 데다 치료를 받고 나면 쓸데없이 우울한 감정이 없어지고 머리도 맑아져 환자들이 매우 좋아한다”고 말했다.
또 최근엔 전기 대신 자기(磁氣)로 충격을 가하는 ‘두개강내 자기자극요법(TLS)’도 비교적 널리 시행되고 있다. 이 같은 전기·자기자극요법은 우울증에 가장 효과적이지만 정신분열증이나 강박장애의 치료에도 효과가 좋다고 김창윤 교수는 설명했다.
그렇다면 마음 수술의 영역은 얼마나 확대되고, 수술법은 또 얼마나 발전될 것인가. 미국 플로리다대학 정신과 웨인 구드먼 박사는 “지금껏 시행된 마음 수술이 매우 효과적인 것으로 나타나 미국 국립보건원이 천문학적 연구비를 마음 수술의 연구에 할당했다”며 “앞으로 마음 수술의 영역은 더욱 확대될 것으로 보이며, 이에 따라 기존 약물치료가 듣지 않던 수 많은 정신질환자들이 희망을 갖게 될 것”이라고 LA타임스와의 인터뷰를 통해 밝혔다.
김창윤 교수는 그러나 “강박장애를 제외한 대부분의 정신질환은 뇌의 여러 부위에 걸쳐 복잡하게 얽혀 있어 마음 수술의 영역이 무한정 확대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 임호준 기자 hjlim@chosun.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