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의 한 통증클리닉에서 허리 통증을 호소하는 환자에게 태반 주사를 놓고 있다.
가축들은 새끼를 낳은 뒤 대개 어미가 태반(胎盤)을 먹는다. 출산 흔적을 없애 천적으로부터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서라고 한다. 그 뿐일까. 태반이 새끼를 낳은 어미에게 산후 회복에 필요한 어떤 영양을 공급해주는 것은 아닐까.

사람 또는 동물의 태반에 약효가 있을 것이란 생각은 오래됐다. 서양에서는 히포크라테스가 태반을 약으로 썼다는 기록이 있고, 중국의 한의학 고전인 본초습유, 본초강목 등에도 사람의 태반이 ‘인포(人包)’, ‘자하거(紫河車)’ 등의 이름으로 올라 있다. 동의보감에도 자하거가 나온다. 하지만 태반, 특히 사람 태반은 약 대접을 하기에는 어울리지 않은 탓에 민간요법 등으로 은밀하게 전해졌을 뿐 과학적인 조명을 받지는 못했다.

◆ 태반 요법의 시작은 엽기적(?)=현대 의학에서 태반이 새로 관심을 끌게 된 것은 러시아에서였다. 1930년대 당시 소련 의사들은 ‘조직요법’이란 치료법을 시도했다. 안과의사인 피라트프 박사는 각막을 이식하면서 냉동각막의 성공률이 높다는 것을 발견했으며, 그 원인이 냉동과정에서 ‘세포부활인자’ ‘생체자극인자’와 같은 물질이 그 전보다 풍부해지기 때문이라는 것을 밝혔다. 각막 다음으로 연구한 것이 바로 태반이었고, 연구 결과 ‘태반의 작용은 신체의 기능을 활발하게 할 뿐 아니라, 병든 부분의 치유를 촉진하는 작용이 강하다’는 보고서를 내기도 했다.

이후 사람이나 동물의 태반을 엄지손가락 절반 크기 정도로 잘라 소독한 다음 어깨와 같은 곳에 심어넣는 치료법이 개발됐다. 이런 ‘매몰법(埋沒法)’은 러시아와 일본 등에서 지금도 명맥을 유지하며, 부자들이 은밀하게 시술받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 태반에는 특별한 게 들었나?=태반은 뱃속 아기에게 매우 중요한 기관이다. 태아는 각종 장기의 기능이 부족하기 때문에 태반이 이를 대행 또는 보완해준다. 엄마의 혈액에서 산소를 받아 아기에게 공급하는 호흡작용을 비롯해, 단백질의 합성이나 포도당 합성 등 간의 대사작용, 신장의 배설작용도 한다. 또 태아의 발육과 출산에 필요한 호르몬을 만드는 내분비 작용도 한다. 태반의 성분은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아미노산, 비타민, 미네랄, 효소, 핵산 등이다. 이런 성분들은 이미 대체로 알려진 것들로 별로 눈에 띄지 않는다. 특이한 것이 각종 성장인자(HGF, NGF 등)와 사이토카인, 인터류킨 등이다.

서울 레만클리닉 한상욱 원장은 “사람의 태반에서 추출된 간세포 증식인자(Hepatocyte Growth Factor:HGF)로 불리는 성분은 동물실험에서 간염·간경화 등 간 질환, 위궤양, 심장병 등에 치료효과가 있다”고 주장했다.

◆ 태반은 만병통치?=사람이나 동물 태반의 성분을 함유했다는 화장품, 비누에서부터 먹는 약까지 나와 있다. 최근에는 통증클리닉과 정형외과, 피부과 등에서 태반 성분 주사제를 이용한 각종 치료가 시도되고 있다. 현재 국내에 수입되는 태반 성분 주사제의 경우, 일본에서 간질환 치료제로 개발된 것. 하지만 국내 일부 의원에서 목·허리디스크, 류머티스 등의 통증을 완화하기 위해 주로 사용된다. 지금까지 보고된 태반 주사제의 부작용은 알레르기 반응, 체중 증가 등이다. 또 여드름이 심해지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당연한 얘기지만, 건강한 사람에게는 별 효과가 없다. 치료 효과와는 별개로 태반 제제는 아직 안전성에서 의혹을 완전히 벗지 못했다. 에이즈 등 감염 질환을 가진 산모의 태반을 완벽하게 걸러낼 수 있는 방법과 태반의 위생적인 수거 및 처리가 관건이다. 태반을 인체의 일부로 볼 수도 있는 윤리적인 문제도 넘어야 할 문턱이다.

중앙대 용산병원 피부과 서성준 교수는 “태반 추출물이 노화방지, 항염증 작용, 성장촉진 등의 효과가 있다는 일반적인 연구는 많으나, 실제로 인체에 적용했을 때 동일한 효과를 보일지는 아직 더 연구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 임형균 기자 hyim@chosun.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