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질환
'3040' 실직 이어 이제는 우울증까지…
의학전문
입력 2003/11/11 11:02
서울 주부 45%가 우울증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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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우울·조울병학회가 지난 10월 서울에 사는 20~60세 주부 1000명을 대상으로 우울증 증상을 조사한 결과, 45%가 경증 이상의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세계보건기구(WHO)가 조사한 세계 평균 여성 우울증 유병률 25%보다 두 배 가까이 높은 수치다. 더욱이 조사대상 여성의 12.3%는 자살 충동을 느껴본 적이 있다고 답했다.
당장 치료 필요한 중증 18% … 가난·이혼·자녀문제 등 원인
당장 치료가 필요한 중등 이상 우울증은 18.1%로 조사됐는데, 특이한 점은 30대(6.4%)가 가장 심하다는 점이다. 다음으로 50대(5.6%), 40대(3.2%) 20대(2.9%) 순이었다. 이는 중년층으로 갈수록 폐경 등 노화에 따른 신체 변화와 인생에 대한 회의가 늘면서 우울증 유병률이 높아진다는 기존의 의학적 통념과 대조된다.
가톨릭의대 정신과 채정호 교수는 “우리 사회의 치열한 경쟁과 고용불안 등이 가정 경제의 압박과 자녀교육 문제로 이어지면서 30대가 심한 심리적 압박을 받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우울증 발병은 사회·경제적 분위기에 따라 크게 좌우된다. 실업·가난·이혼 등은 우울증의 유병률을 높이고 이로 인해 개인의 생산성은 떨어지고 의료비 지출을 올리며 이는 다시 실업과 가난으로 악순환하는 ‘사이클 현상’을 보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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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를 설명하는 대표적인 현상이 자살률과 실업률과의 관계이다. 고려대 의대 예방의학교실 김순덕 교수팀이 지난 1983년부터 2000년까지 통계청이 집계한 인구 10만명 당 연도별 자살률과 실업률, GDP성장률 등과의 관계를 조사한 결과, 경제 활동이 가능한 20세 이상의 자살률이 실업률이 올라감에 따라 증가하는 연관성이 88%인 것으로 나타났다.
30대 가장 심한 심리적 압박 … 치료받는 환자는 고작 27%
경제성장률이 올라가면 자살률이 떨어지는 연관성은 87%로 조사됐다. 즉 경기와 자살율이 밀접한 상관관계를 갖고 있다는 것이다. 98년 ‘IMF구제금융’ 직후, 경제성장률은 최저치, 실업률은 역대 최고치에 달했을 때 자살율은 인구 10만명당 19.9명으로 역대 최고치였다.
지난달 말 서울에서 아시아 9개 지역 우울증 전문가들이 모여 ‘우울증으로 인한 사회·경제적 손실’을 논의하는 심포지움(SEBoD)에서 참석자들은 “아시아에서 우울증을 방치함으로써 발생하는 간접 비용이 매년 1000억 달러를 웃돈다”고 발표했다.
한국 대표로 참석한 고려대 안암병원 정신과 이민수 교수는 “우울증은 사무·수면·일상활동 등에서 정상적인 경제활동 전반에 영향을 미쳐 파급 효과가 심각하다”며 “최근 조사에 따르면 생산성이 가장 높은 15~44세 연령층에서 질병 때문에 생활에 장애를 받는 정도가 우울증이 제일 높은 것으로 분석됐다”고 말했다.
우울증은 신체 활동, 심리상태, 사고 등을 포함하는 뇌의 심각한 정신 장애로, 환자는 물론 가족·친구 등 주변 사람의 생활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다. 이에 따라 우울증 치료의 목적은 심리적인 증상 뿐만 아니라 전반적인 신체 활동을 개선시키는 데 있다.
환자에 따라 항(抗)우울제 투여와 행동치료·심리치료를 병합하면 큰 효과를 얻을 수 있다. 하지만 국내 중증 우울증 환자의 27%만이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다.(SEBoD·2003)
우울증 등과 관련된 자살자가 통계청 사망원인 순서에서 지난 92년 10위에서 지난해에는 7위로 뛰어올랐다. 작년 30대 남자의 경우 사망원인 1위가 자살이었다. 서울백병원 신경정신과 우종민 교수 “우울증 환자의 15~20%가 자살을 시도하고, 전체 자살자의 70~80%가 우울증 환자에 해당된다”며 “우울증을 단순히 ‘마음의 감기’라는 식으로 가볍게 여기지 말고 적극적으로 진단받고 치료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 의학전문 기자 doctor@chosun.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