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지의학 창시자 리가토 박사

성인지의학의 창시자 메리앤 리가토 박사(70)가 한국성인지의학 창립 총회 참석차 방한했다.

1968년 이래 줄곧 미국 컬럼비아의대 심장내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리가토 박사는 8년째 성인지의학 연구 사업을 이끌고 있으며, 2002년 ‘최고의 여성 과학자’ 상을 수상했다.

그는 여성의 몸은 ‘이브의 사과’라고 표현했다. 성서에 나오는 아담과 이브가 에덴동산의 사과를 먹은 뒤 자신의 육체에 대한 인식이 생겼듯이, 여성의 몸에 대한 탐구는 의학적으로 인간에 대한 이해를 한 차원 높은 곳으로 이끌어 주는 열쇠가 될 수 있다는 의미다.

- 성인지의학을 시작한 동기는?

“1992년 한 의학 저널리스트와 함께 ‘여성의 심장’이라는 책을 쓰게 됐다. 어머니를 심장병으로 잃은 그녀가 의사들의 편견 때문에 여성 심장병 환자들이 훨씬 소극적인 치료를 받는다고 지적했기 때문이었다. 이후 책 홍보를 위해 미국 전역을 순회하면서 2000여명의 여성들을 만났다. 수 많은 여성들이 격앙된 목소리로 들려준 경험과 호소는 여성의 심장병 증세가 남성과는 전혀 다를 수 있다는 걸 절감케 했다. 비단 심장병뿐만이 아닐 거란 확신이 들었다.

그래서 최고의 심장내과 전문의로서 누리고 있던 풍족한 연구비와 훌륭한 연구실을 모두 포기하고 여성에 관한 연구에 뛰어 들었다. 내가, 그리고 현대의학이 여성에 대해 잘못 알고 있거나, 너무도 모른다는 걸 깨달은 이상 가만히 있을 순 없었다.”

- 성인지학은 페미니즘의 한 종류인가?

“아니다. 성인지의학은 남성과 여성의 차이점을 고려한 의학이다. 이제까지 몰랐던 부분(여성)에 대해 알아야 한다는 지적(知的) 필요에서 비롯된 당연하고도 자연스런 순수 과학으로 보면 된다. 정치적, 사회적 이념과는 무관하다.”

- 남성과 여성의 생물학적 차이를 인정하고 강조하면 오히려 남녀 차별을 부추기게 되는 것 아닌가?

“어떻게 남녀가 같은가? 생긴 모습부터 다르지 않나? 미 항공우주국(NASA)에서 ‘길 찾기’에 관한 재미있는 실험을 했다. 그 결과 여성들은 길을 찾을 때 주로 어떤 표시를 보고 찾아가고, 남성들은 방향과 공간 개념을 주로 이용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렇지만 이런 생물학적 차이가 결코 남녀 차별을 정당화할 수는 없다. 남녀가 다른 점은 문제 해결 능력의 차이가 아니라, 해결 방식의 차이이기 때문이다.”

- 현재 관심을 갖고 연구 중인 분야, 앞으로 계획은?

“두뇌다. 남녀의 뇌가 얼마나 다른지, 연구가 진행될수록 놀라울 따름이다. 같은 상황에서도 사용하는 부분이 다르고, 해부학적, 생리학적, 신경학적으로 모두 다르다. 이런 차이가 모두 밝혀지면 남녀가 의사소통하기가 훨씬 수월해질 것이다.

올 겨울에 성인지의학을 실제 임상에 적용하는 병원이 뉴욕에서 문을 연다. 일단은 나를 포함한 3명의 의사가 진료할 계획인데, 벌써부터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보이고 있다. 우리 병원에서 수련을 받고 싶다는 의대생들도 있다.”

- 여성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은?

“여성에 대해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보다 많은 여성들이 적극적으로 임상시험에 참가해야 한다. 이제까지는 남성들이 그 위험을 무릅써왔기 때문에 그만한 혜택을 누려온 것이다.

물론 여성이 참가하는 임상시험은 비용도 훨씬 더 많이 들고 2세에 대한 위험도 따를 수 있다. 하지만 무작정 피할 것이 아니라 여성도 안전하게 참가할 수 있도록 학계, 제약업계에 요구해야 한다.

성인지의학이라는 새로운 세계를 볼 수 있게 해 준 것은 보통 여성들이었다. 자신의 느낌과 경험을 믿고 솔직하게 표현하고 요구해 준 덕분이었다. 보수적인 의학계가 스스로 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앞으로도 보통 여성들이, 그리고 남성들이 의학계의 변화를 이끌어 내길 바란다.”

( 이지혜 기자 )




이지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