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06-12-01

어제 31일자 조선일보에 완주기를 실었습니다. 원고지 7장이라는 정해진 분량에 105리길을 달리며 느낀 생각을 담으려니 쉽지 않더군요. 몇시간을 고민하고, 몇번 고쳐 쓰기를 반복했는데, 활자로 나온 글은 역시 마음에 차지 않습니다.

이제 자유롭게 완주기를 씁니다. 사진을 위주로 쓰면 더 재미있겠죠. 지난 1월1일 저를 남산으로 불러내 마라톤 도전을 부추겼고, 29일 저와 함께 달리며 사진까지 찍어준 정동창 여행춘추 사장님께 감사드립니다. 대부분 사진은 그 분이 찍은 것이며 한두장은 포토로 제공입니다.

<출발 전>

출발 20분 전까지 저는 신문에 쓸 기사에 온통 신경이 갔습니다. 이날 취재할 아이템은 20여개. 취재기자 10여명, 사진기자 10여명이 운동장과 주로 곳곳에 배치돼 취재를 했습니다. 저는 몇주전부터 취재 아이템을 기획하고, 각각의 기자들에게 임무를 부여하는 일을 맡았습니다. 9시40분 쯤 부랴부랴 테이핑 하고 운동장 나갔더니 9시50분. 운동장 끈 매고 간단히 몸 풀고 있으려니 선두그룹이 출발합니다.



<5km를 향해 내리막길을 달리다>

초반이라 쌩쌩하죠. 힘이 남아돌 때라 환하게 웃어 봅니다. 제 왼쪽은 박영석 서울마라톤클럽 명예회장님입니다. 올해는 여든이 다 되 가시는데  힘이 넘칩니다. 사모님과 동반주 하시느라 기록은 6시간을 넘기셨다네요. 저랑 동반주를 하신 정동창 사장은 "오버 페이스야, 속도 좀 늦춰"를 반복했습니다. 자제하려고 노력해도 내리막길 달리는 기분이 너무 좋아서.



<5~7km 지점, 감동 준 의암호와 삼악산>

이번에 처음 의암호 코스를 뛰면서 3번 감동했습니다. 이전에는 차를 타거나 TV 화면을 통해서 분위기를 짐작했을 뿐이지만, 달리면서 느끼는 감동은 남다르더군요. 첫번째 감동은 출발하자마자 나타나는 긴 오르막에서 왔습니다. 앞을 봐도, 뒤를 봐도 끝이 보이지 않는 달림이들의 행렬. 42.195km 완주라는 하나의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발걸음이 쿵쿵 힘차게 느껴졌습니다. 아래 사진은 두번째 감동을 먹었을 때입니다. 5km를 지나 왕복 2차로를 접어들면서 의암호와 삼악산이 한눈에 들어오더군요. 안개가 약간 끼어 있었지만 삼악산의 이른 단풍도 환상적이었고, 의암호의 물은 얼마나 좋았는지. 이미 15km를 향해 달려가는 선두그룹의 새카만 행렬, 곳곳에서 터져 나오는 함성... 제 옆에서 달리던 어느 분이 외치십니다. "이 맛에 여기서 달리지~." 제가 세번째로 감동을 먹은 것은 주로의 자원봉사 학생들의 정성을 다한 서비스였습니다. 끝없이 밀려드는 참가자들을 위해 쉴새 없이 물을 주고, 응원 구호를 외치는 어린 학생들은 한마디로 천사였습니다. 



<20km에서 한 풀 죽다>

초코파이를 먹는 얼굴엔 자신감이 많이 사라져 있죠. 눈동자가 풀릴 정도는 아니었지만, 앞 가슴 지퍼를 헤친 것을 보면 이미 투지의 절반은 상실한 것 같습니다. '달려온 만큼 더 가야한다'고 생각하니 힘이 막 빠지는 것 같더군요. 용기를 내 힘차게 발걸음을 옮겨 봅니다. 끝이 보일 것도 같지 않은 서상교의 완만한 오르막. 심장이 조금씩 조여드는 느낌까지...



<미소는 짓지만 다리는 울고 있었다>

힘겹게 서상교를 달리다가 조선일보 마라톤 동호회(선마회) 회원을 만났습니다. 이야기를 좀 나누면 힘든 게 잊혀질까 싶어 말을 나눠보지만 신경은 딴 데 가 있습니다. '그 무섭다는 언덕이 곧 나타날텐데 어떻게 넘나?'

서상교를 지나 춘천댐에 올라섭니다. 주변 경치는 끝내주는데 발걸음은 점점 무거워집니다. 마라톤 고수인 전차수 경상대 교수가 다가왔습니다. "홍기자, 재미있죠? 이따가 30km 지나면 더 재미날거요. 결승점은 어떻게든 들어가니 마음껏 즐겨봐요." 그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몰랐습니다. 그런데 25~28km 지점의 언덕을 두 개 넘고, 30km에서 물 마시고 출발한 직후 깨달았습니다. 가도 가도 거리 표지판이 안 보입니다. 1km가 왜 그렇게 먼지, 길은 왜 또 그리 넓은지, 응원하는 사람은 왜 또 없어? 5시간 목표를 이루기 위해 1km 당 7분 이내로 달려야 한다고 생각하고, 속도를 내봤습니다. 3km도 못갔는데 옆에서 달리던 정동창 사장이 한 마디 합니다. "속도 줄여야겠어. 얼굴 색깔이 바뀌었어." 다가온 전차수 교수도 한 마디 합니다. "아까하고 다른데. 표정 재미나네. 이제 마라톤 재미 좀 알겠죠?" 끝없이 약을 올렸다.


* 본 기사의 내용은 헬스조선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달려라홍기자

[조선일보]
홍헌표 기자

현 조선일보 기자

인생의 중반에 접어드는 40대 초반. 키 179cm, 체중 92.9㎏의 홍기자가 10월 22일 조선일보 춘천마라톤 완주에 도전합니다. 춘마도전을 위한 '홍기자의 몸만들기 10개월 작전'을 여러분께 공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