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06-11-27

생 청국장이나 청국장 가루를 먹는 사람이 폭발적으로 늘어났습니다. 인터넷엔 청국장 먹기 동호회가 우후죽순 생겨났고, 인터넷이나 TV 홈쇼핑 등을 통한 생 청국장 주문이 폭주하는 바람에 영세한 청국장 제조회사들은 물량을 대기가 어려울 정도라고 합니다. 설사와 변비에 특효약일 뿐 아니라 다이어트, 고혈압, 당뇨, 간 질환, 뇌졸중, 각종 암, 성기능 장애 등을 예방-치료하는 만병통치약으로 소문이 났기 때문입니다.
 
예찬론자들에 따르면 생 청국장이야 말로 만병 통치약입니다. 발효된 청국장 1g에는 약 10억마리의 바실러스 균이 있으며, 이 균으로 인해 콩에는 없는 여러가지 인체에 유용한 생리활성물질들이 생성된다고 그들은 주장합니다. 찌개를 끓여 먹으면 이렇게 좋은 물질이 파괴되므로 생 것으로 먹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청국장 속의 유효 성분들을 나열해 보면 피떡(혈전)을 녹이는 프로테아제, 인슐린 분비를 원활하게 하는 멜라노이딘, 면역력을 증가시키는 고분자 핵산, 고혈압을 일으키는 안지오텐신 전환효소(ACE)를 억제하는 펩티드, 혈관 노폐물 생성을 억제하는 레시틴, 지방의 배설을 돕고 항암효과를 내는 사포닌, 세포 손상과 노화를 억제하는 파이틱산, 암 세포 증식을 억제하는 트립신 억제 성분, 그 밖에 암과 각종 성인병을 예방하는 이소플라본, 제니스틴, 다이진, 글라이시틴 같은 항산화제 성분이 풍부하게 들어 있다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콩 자체가 정장(整腸) 효과가 뛰어난 섬유질이어서 변비 해소에 탁월한 효과가 있으며, 숙변을 제거하므로 다이어트에도 그만이라고 주장합니다.
 
생 청국장 취재를 위해 저는 2004년 3월 ‘청국장 먹기 국민운동’을 벌이고 있는 호서대 김한복 교수와 청국장 먹기 동호회원 10여명을 강남의 한 청국장 전문 음식점에서 만났습니다. 그들은 한결같이 자신에게 일어난 놀라운 경험담을 늘어 놓았습니다. 한 30대 후반 남성은 변비가 심해 20여년간 3~4일에 한번 꼴로 변을 봤는데, 생 청국장을 먹은 뒤 매일 변을 본다고 자랑했습니다. 10여년간 당뇨병으로 고생했다는 한 50대 여성은 혈당 수치가 떨어져 지금은 약 없이도 지낸다고 했습니다. 60대의 노신사는 혈압이 떨어지고, 성기능이 좋아져 누구에게나 생 청국장을 권한다고 했습니다.
 
집에 돌아온 뒤 저는 곧바로 인터넷에 들어가 생 청국장 환(丸)과 가루를 주문했습니다. 아침마다 화장실을 들락거리는 제 딸 때문입니다. 만병통치약은 아니라도 최소한 정장-변비해소 효과는 있을 것 같았습니다. 우리가 늘상 먹는 청국장을 복용하는 것인 만큼 설혹 효과가 없어도 크게 밑지는 일은 아니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러나 제 딸은 청국장 환을 먹은 뒤 변비가 조금 좋아진 것 같았지만 제 아내는 변화가 없다고 했습니다. 우연인지 모르지만 저는 청국장 환을 먹은 뒤 오히려 없던 변비가 생겨 고생했습니다. 예찬론자들이 말하는 그 밖의 기적같은 효과는 우리 가족 누구도 경험하지 못했습니다. 청국장으로 건강을 다져야 할 만큼 절박한 이유가 없었던 터라 우리 가족은 자연스레 생 청국장 먹기를 그만 뒀습니다.

저는 청국장을 먹고 혈당이 떨어지고 살이 빠졌다는 사람의 말이 거짓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믿는 사람에겐 가짜약(플라시보)도 효과가 있는 판에 영양의 보고라는 콩을 발효시켜 만든 청국장이 왜 효과가 없겠습니까? 분명히 정장효과, 다이어트 효과, 혈당 강하 효과, 항암 효과 등이 있을 것으로 저는 생각합니다. 그러나 만병통치약으로 맹신하면 큰 일 납니다. 전문의들은 청국장 속의 여러 가지 생리 활성 물질들이 각종 성인병을 예방할 순 있지만 이미 생긴 성인병을 치료할 순 없다고 설명합니다. 청국장처럼 좋은 음식을 자주 먹어서 건강을 지키는 것은 얼마든지 좋지만, 청국장의 만병통치효과를 기대하고 의사의 지시와 처방까지 무시해선 큰 일 난다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모처럼 불붙은 우리 음식 청국장 먹기 열풍이 비과학적인 맹신의 영역에서 벗어나 건전한 방향으로 정착되길 기대해 봅니다.

 

/임호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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