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에게 듣는 '질환' 이야기
피부에 생기는 물집… 바이러스가 숨는 곳은?
서울부민병원 응급의료센터
박억숭 과장
유전과 감염
피곤하면 생기는 입술 주변의 물집! 물집(vesicle)의 원인 바이러스는 한 번 감염되면, 면역이 떨어질 때마다 나타나서 우리를 괴롭힌다. 과연 이 바이러스들은 어디에 숨어 있는 것일까? 병원체의 ‘인체 내 전파’와 ‘잠복감염’의 개념을 알면, 입술 주변과 피부에 생기는 물집을 조금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인체 내 확산
외부에서 인체 내로 들어온 병원체들은 침입 부위에 일부 남게 된다. 하지만, 대부분은 ‘염증반응(inflammation)’과 ‘임파선-혈액’을 통해서 다른 부위로 퍼져나간다. 몇몇 병원체는 ‘신경’을 통해서도 확산된다.
‘염증반응’은 감염 부위 조직을 파괴하고 염증을 일으키는 특정 효소를 분비한다. 예를 들어, 황색포도알균은 히알루로니다아제(hyaluronidase)를 분비해 숙주의 세포외기질을 분해하면서 쉽게 이동한다.
‘임파선-혈액’을 통한 확산은 가장 일반적이고 효과적인 형태이다. 대부분의 세균과 진균 일부 그리고 간염바이러스(HBV)는 혈장을 따라 이동한다. 단순헤르페스바이러스(HSV), 인체면역결핍바이러스(HIV), 미코박테리아는 백혈구를 통해서 그리고 말라리아 기생충은 적혈구를 통해서 이동한다. 병원체가 임파선-혈액을 통해 이동하면 바이러스혈증, 세균혈증, 진균혈증이 생길 수 있고 생명에 위협이 될 수 있다.
‘신경’을 통한 확산은 보통 바이러스 감염에서 일어난다. 광견병, 소아마비 바이러스 그리고 수두의 원인인 특정 바이러스(VZV)는 말초신경을 감염시키고 어떤 경우는 축삭을 따라 중추신경계로 이동할 수 있다. 단순헤르페스바이러스(HSV)와 수두대상포진바이러스(VZV)는 ‘신경세포와 척수 신경절’에 잠복 상태로 숨어 있다가 면역 상태에 따라 재활성되기도 한다.
잠복감염
‘잠복감염(latent infection)’은 병원체가 체내에 침입했지만, 외부로 특이한 증상이 나타나지 않는 상태, 즉, 병원체가 ‘숨어 있는 상태’를 의미한다. 평상시에는 전혀 증상이 없다가 면역력이 떨어지면 병원체는 다시 활동하면서 눈에 보이는 증상들이 나타난다. 잠복감염은 결핵균을 제외하면 세균보다는 바이러스에서 더 흔하다. 대표적인 바이러스는 ‘단순헤르페스바이러스(Herpes Simplex Virus, HSV)’와 ‘수두대상포진바이러스(Varicella-Zoster Virus. VZV)’이다.
‘단순헤르페스바이러스(HSV)’는 침입한 피부와 점막 내에서 감염성 비리온(virion)을 복제, 생산한다. 입-인두와 생식기 피부에 물집(vesicle)을 일으킨다. HSV는 첫 번째 감염 후 ‘신경세포에 잠복’하고 있다가 면역이 떨어지면 반복적으로 재활성된다. HSV의 증상은 단순한 입술물집과 잇몸입안염에서 파종과 뇌염까지 다양하다. 아형인 HSV-1과 HSV-2는 유전적으로 비슷하지만, 발생 부위와 임상 양상이 약간 차이 난다. ‘HSV-1’은 주로 혀에서 인두로 확장되는 소포성 발진, 입술물집, 일부 표피의 궤양 등이 나타난다. ‘HSV-2’는 성기 헤르페스(genital herpes)로 성접촉과 관련 있고 주로 외부생식기에서 테두리가 형성되는 피부궤양과 물집이 나타난다.
‘수두대상포진바이러스(VZV)’는 소아기에 수두(chicken pox)를 일으킨 후 잠복감염 상태로 존재한다. ‘수두’는 호흡기를 통한 감염 2주 후 몸통에서 머리와 말단으로 발진이 퍼진 후 물집이 나타난다. 이후 VZV는 면역력이 떨어지거나 노인에서 대상포진(herpes zoster)을 일으킨다. ‘대상포진’은 바이러스가 소아기에 수두를 일으킨 뒤 ‘척수 신경절’에 잠복 상태로 숨어 있다가 재활성되면서 감각 축삭을 따라 피부로 이동하여 발진과 수포를 일으키는 질병이다. 대상포진에 신경근신경염(radiculoneuritis)이 동반되면 예리한 통증과 가려움증, 화끈거림 등의 증상이 함께 나타난다.
환자들은 보통 물집이 생기기 전에 주변 통증이 먼저 시작되면서 여러 병원을 전전하게 된다. 며칠 후 피부 발진과 특징적인 물집 형태가 나타나면, 그제 서야 확진받는 경우가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