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찬영의 눈이야기
머리만 하얗게 세는 것이 아니라 눈의 색소도 센다
이안안과
임찬영 대표원장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져서 유명해진 ‘하울의 움직이는 성’이라는 소설에 보면, 상큼한 소녀인 주인공 소피가 마법에 걸려 갑자기 80대 노파로 변하는 장면이 나온다.
주인공은 늙은 몸에 적응하느라 힘들어하기는 하지만, 노인 치고는 매우 건강한 몸이라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나이를 먹는 것은 마법과 같이 피할 수 없는 일이지만, 건강한 몸으로 80대를 맞이할지, 병약한 몸으로 맞이할지는 노력 여하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우리가 소피처럼 갑자기 노인이 되면 어떻게 될까? 가장 먼저 놀라게 되는 것은 세상이 누렇게 보이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의 수정체는 나이가 들면서 알게 모르게 천천히 황색으로 변해간다. 나이가 80세 정도 되면 운전할 때 착용하는 노란색의 선글라스 정도의 색이 되는데, 수십년 동안 서서히 변해 가기 때문에 뇌도 이에 적응하여 색감을 다르게 느끼지는 않는 것이다. 그렇다면 80세 정도의 노인이 갑자기 젊어지면 어떻게 될까? 세상이 시퍼렇게 보인다고 불평을 할 것이다. 이와 같은 현상은 백내장 수술을 한 후에 흔히 볼 수 있는데, 혼탁해진 수정체를 제거하고 무색 투명한 인공수정체를 삽입하게 되면 온 세상이 시퍼렇게 보인다고 느끼게 된다. 다행히 요새는 자연색에 가까운 황색 인공수정체가 개발되어 이런 불만이 많이 사라졌다.
사실 황색으로 변한 수정체는 자외선과 청색광을 차단해주는 효과가 커져서, 이로 인한 시신경이나 시세포의 손상을 막아주는 역할을 한다. 우리나라 사람과 같은 황인종에게서는 그리 흔하지 않지만, 백인의 경우 노인 실명의 원인 중 1위가 노인성 황반변성이다. 색소가 적어서 특히 자외선에 약한 백인은 피부암에도 잘 걸릴 뿐 아니라, 시신경이 자외선 때문에 파괴되는 병인 노인성 황반변성으로 인해 나이가 들면 앞을 보지 못하게 되기 쉽다. 그러므로, 백인들이 선글라스를 자주 착용하고 다니는 것은 현명한 일이라고 하겠다.
노인 인구가 많은 이웃나라 일본의 경우 2009년이 되면 60세 이상의 노인이 인구의 40%를 넘어선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사람의 평균 수명은 80세가 되지 않지만, 이것은 통계적인 수치로, 어려서 죽는 영아 사망 등을 제외하면 실제로는 평균 90세가 넘도록 살 가능성이 매우 높다. 또한 자외선을 막아주는 오존층이 파괴되어 자외선 조사량이 많아지는 요즈음, 우리 동양인이라고 해서 노인성 황반변성에 안전한 것일까?
시세포나 시신경은 한번 파괴되면 다시 재생되지 않는다. 많은 과학자들이 줄기 세포 등의 연구를 하고 있지만, 얼마나 가까운 시기에 상용화될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봄볕에 며느리 내보내고, 가을볕에 딸 내보낸다는 속담이 있듯이, 봄은 사계절 중 가장 자외선이 강한 계절이다. 특히 5-6월은 일조량이 가장 길며, 몸이 자외선에 무방비하게 노출되기 쉬운 때이다. 피부에만 자외선 차단제를 바를 것이 아니라 선글라스로 건강할 때 눈을 보호하는 것을 잊지 말도록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