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정현 의료원장, 유방과 사랑에 빠진 남자
천당과 지옥을 왔다 갔다 한 환자
건국대병원 유방암센터장
양정현 의료원장
40대 중반의 여성이 한달 전부터 오른쪽 유방의 유두 근처에서 엄지손가락 크기의 혹이 만져진다며 진찰을 받으러 왔다. 비교적 동그랗고 잘 움직이는 가동성의 혹이었고 통증은 없었다. 촉진을 한 결과, 유방 양성 결절의 의심도 있지만 유방암의 가능성이 더 높아 보였다.
당일 바로 유방 엑스선 촬영과 초음파 검사를 실시했다. 또 굵은 바늘로 중심부 침생검법을 하여 동결절편(조직을 급속하게 얼려 가늘게 절편을 만든 뒤, 즉석에서 염색하여 진단을 현미경으로 얻는 방법)을 하도록 하였다. 한시간만에 유방암일 가능성이 높다는 결과를 받았다.
환자에게 “유방암이 강력하게 의심되니 바로 입원하여 검사 후 수술을 하자”고 권했다. 환자는 확연히 낙망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설마 했는데, 나한테 왜 이런 병이 생기죠?”라며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내 가족 중에 유방암 환자도 없고 애들한테 모유도 주었는데 말이죠.”
입장을 바꿔 생각해 보면 이해가 가는 일이다. 전혀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환자에게는 청천벽력과 같은 일이 일어난 것이다. 입원 후 신속하게 검사를 진행했다. 수술 전에는 유방 MRI와 유방 동위원소 검사를 한다. 이는 유방암의 진행 상태를 파악하는 검사로서, 유방암이 퍼지기 쉬운 폐, 뼈, 간에 대한 전이 검사가 있다.
검사 결과 유방암 소견에 일치했다. 다행히 이 환자는 유방을 제외한 부위에 전이가 발견 되지 않았다. 수술 전 검사로 유방암이 확실하다면 병기로는 1기에 해당하는 듯 보였다. 이 환자는 수술 전날 회진 때 유방암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있는 듯 체념한 듯 보였다.
환자에게 만져지는 혹이 유방암이라고 너무 단정적으로 말한 것 같아서, 나는 환자에게 일말의 희망을 주기 위해 말을 건넸다. “오늘 밤 꿈을 잘 꾸시면 최종 진단에서 암이 아닌 것으로 판정될 수도 있어요.” 사실 가장 정확한 진단은 혹을 전체 절제해 현미경으로 병리 조직검사를 하는 것이다. 혹의 조각만 채취하는 중심부 침생검법은 드물긴 하지만 불확실한 경우가 있다. 이 환자도 그런 경우일 수가 있다. 환자는 실없는 농담으로 들렸는지 그저 쓴 웃음만 지을 뿐이었다.
수술실에서 마취 전에 다시 한 번 환자를 안심을 시키느라 말을 건넸다. “어제 꿈 잘 꾸셨나요?” 환자가 말했다, “선생님! 믿습니다. 잘 부탁해요.” 나는 속으로 말했다. “결과가 좋아야 할텐데.”
수술을 시작하고 먼저 유방의 혹 전체를 절제해서 병리과로 보내 암 조직이 나오는지를 동결절편으로 확인하도록 하였다. 수술실 마이크로 병리과 의사의 판독결과가 들려왔다. “유방 양성종양입니다.” 혹시 잘못 들었나 싶어 다시 확인했다.
“확실히 유방 양성 종양입니까? 양성종양이라면 어떤 종류이죠?”
“확실히 유방암은 아닙니다. 양성 종양인데 복합성 경화성 선증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환자에게는 얼마나 반가운 소식인가? 그래도 아직 안심하기는 이르다. 왜냐하면 동결절편은 조직을 얼려서 급하게 조직검사를 하는데 조직을 얼리지 않고 탈수 고정시켜 염색하는 영구절편보다는 정확성이 떨어지는 경우가 있다. 몇일 기다려서 영구 절편 조직검사 결과가 나와야 안심할 수 있다.
수술이 끝나고 환자가 회복되었을 때 병실에서 환자에게 수술 결과를 설명하였다. 환자는 아직 안심하긴 이르니 최종 영구 조직검사가 나오면 그때 웃겠다고 했다. 순간적으로, 의사를 믿지 못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스치고 지나갔다. 입장을 바꾸어보면 그럴 만도 하다.
나흘 후 최종 결과가 나와 환자에게 “경화성 선증이 맞다”고 전해 주니 환자가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몇일 동안 저는 지옥에 갔다가 천당으로 왔군요. 선생님 덕분에 스릴 넘치는 훌륭한 여행을 했습니다.”
나는 쥐구멍이라도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었다. 나는 “간혹 유방암과 복합성 경화성 선증이 혼동되어 구별이 어려운 경우가 있습니다”라고 변명할 수 밖에 없었다. 의학도 인간이 이루어놓은 학문인지라 절대적이지 않음을 이해해주시기를…. 인간은 신처럼 절대적인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일깨워준 경험이었다.
/건국대학교병원 의료원장 겸 유방암센터장 양정현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