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민석 교수의 '알레르기 질환'
이름도 치료도 어려운 병… 유전성 혈관부종
보라매병원 알레르기내과
양민석 교수
“두드러기가 너무 심해서 입도 붓고 눈도 붓고…”
진료실에서 두드러기 환자분들이 흔히 하는 말입니다. 여기서 “입도 붓고 눈도 붓고” 부분을 따로 부르는 말이 혈관부종입니다. 혈관부종은 두드러기와 비슷하지만, 두드러기에 비해서 피부의 깊은 부분에 생기는 병변입니다. 두드러기는 비교적 바깥쪽에 생기기 때문에 선명한 경계가 그려지는 데 반해 혈관부종은 피부 깊은 곳에서 생기기 때문에 경계가 모호하고 전체적으로 부어오릅니다. 또, 두드러기는 가렵거나 따가운 느낌이 동반되지만 혈관부종은 가렵거나 따가운 예도 있고 아예 그런 증상이 없이 붓기만 하는 예도 있습니다.
혈관부종은 신체의 어느 곳에도 생길 수 있지만 주로 눈 주위, 입 주위, 손, 발, 사타구니 같은 곳에 잘 생기며 없어지는데 두드러기보다 2~3일 이상 더 걸리기도 하고 약물에 대한 반응도 두드러기보다 좋지 않습니다. 게다가 혈관부종은 피부에만 생기는 것이 아니고 점막에도 생기기 때문에 기도가 부어서 호흡이 곤란해지거나 사망에 이를 수도 있습니다. 대부분 혈관부종은 두드러기와 함께 생기지만 두드러기 없이 발생하기도 하며 대부분은 두드러기와 비슷한 알레르기가 원인이거나 특정 약물 때문입니다. 그러나 가끔 원인을 알 수 없는 때도 있는데 ‘두드러기 없는 혈관부종’ 환자 중 극히 일부가 오늘 이야기할 ‘유전성 혈관부종’ 환자입니다.
유전성 혈관부종은 약 5만~15만 명 중 1명 정도의 환자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실제 임상에서 보았을 때 우리나라에서 병원에서 진단을 받는 유전성 혈관부종 환자는 이보다 훨씬 적은 것으로 생각됩니다. 알레르기 내과를 전공하지 않는 의사선생님들께는 “시험에만 나오는 질병”으로 생각되는 병이지요… (시험 문제로는 비교적 자주 출제가 됩니다.)
유전성 혈관부종은 체내에 선천적으로 “C1억제제”라는 효소가 부족해서 생기는 병으로 상염색체 우성 유전을 하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1/4 정도는 환자의 대(代)에 이르러 처음 생기기도 합니다. 유전성 혈관부종 환자 중 약 50%는 5세 이전에 진단을 받고 75%는 15세 이전에 진단을 받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어릴 때는 증상이 심하지 않다가 청소년기에 심해져 청소년기에 진단을 받는 경우도 흔히 있습니다. 주된 증상으로는 위에서 말씀 드린대로 두드러기 없이 혈관부종이 생기는 것이지만 유전성 혈관부종 환자는 점막침범이 흔하므로 기도나 소화기계 침범이 비교적 흔합니다.
소화기계가 침범되는 경우에는 복통, 구토, 설사 등이 나타나는데 증상이 다른 소화기계 질환과 비슷해서 구별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런 이유로 유전성 혈관부종 환자들은 ‘아무 문제 없이’ 반복적으로 심한 복통이나 구토, 설사를 호소하기도 합니다. 기도가 침범되는 경우는 숨길이 막혀 급사할 수 있기 때문에 매우 주의해야 합니다. 이 경우 ‘목이 무거운 것에 눌리는 느낌’ 혹은 ‘누가 목을 조르는 느낌’이 든다고 표현하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정리하면 1) 반복적으로 두드러기 없이 혈관부종이 나타나는 경우, 2) 이유 없이 반복적으로 복통, 구토, 설사가 발생하는 경우, 3) 입안이 붓는 느낌이 나면서 숨이 답답한 경우가 각각 혹은 동시에 나타날 때 유전성 혈관부종은 아닌지 의심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특히 가족 중에 이런 비슷한 증상이 있는 사람이 있다면 더욱 가능성은 높아지겠습니다. 유전성 혈관부종 환자의 가족을 검사해보면 증상이 없어도 “C1억제제”가 감소하여 있는 경우가 종종 있기 때문에 가족도 검사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진단도 쉽지 않지만, 치료는 더 쉽지 않습니다. 일반적인 두드러기나 혈관부종은 항히스타민제(두드러기약)에 잘 반응합니다. 하지만 유전성 혈관부종에서는 혈관부종의 발생 원인이 다르므로 일반적인 두드러기/혈관부종의 치료에 대해서는 별로 반응을 보이지 않기 때문에 치료가 쉽지 않습니다. 유전성 혈관부종의 치료 방법은 환자의 상태에 따라 다른데 증상이 자주 발생하면 가장 잘 알려진 ‘다나졸’이라는 남성호르몬제를 평소에 예방적으로 사용할 필요가 있습니다. 하지만 여성분들이 장기적으로 사용하기에는 조금 불편한 부분이 있겠지요? 그 외의 다른 약제들도 있지만, 증상이 자주 발생하지 않는다면 약물을 사용하지 않고 경과를 관찰하기도 합니다. 문제는 급성으로 혈관부종이 발생했을 때입니다.
대부분 자연히 좋아지기 때문에 문제가 되지는 않지만 호흡기계를 침범한 경우에는 치명적 증상이 나타날 수 있기 때문에 빠른 처치가 필요합니다. 그런데 사용할 수 있는 약물은 많지 않습니다. 유전성 혈관부종은 위에서 간단히 언급한대로 혈액 내에 있는 “C1억제제”가 모자라서 생기는 병이기 때문에 “C1억제제”를 보충하는 것이 가장 좋은 치료방법인데 우리나라에서는 “C1억제제” 약물을 구하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또 어렵게 희귀의약품센터나 희귀약품을 다루는 회사를 통해서 구한다고 해도 약값이 만만치 않습니다. 유전성 혈관부종 환자에게 가장 좋은 방법은 C1억제제를 예방적으로 가지고 있다가 증상이 나타나면 주사하는 것이지만 이 약물을 한 번 사는데 드는 비용은 약 150~200만 원 정도입니다.
또 이런 약물들은 대개 유효기간이 1~2년 정도여서 유효기간이 지나면 새것으로 교체해 주어야 하므로 상당한 경제적 부담이 됩니다. 최근에는 유럽에서 새로운 유전성 혈관부종 치료제들이 개발되고 있기는 합니다만 당분간 어느 정도의 경제적 부담은 피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C1억제제가 없는 경우에 호흡기계 침범과 같은 위급한 증상에 대해서는 혈장을 수혈하게 되지만 혈장에는 C1억제제 뿐만 아니라 오히려 혈관부종을 악화시킬 수 있는 물질도 들어 있기 때문에 항상 주의가 필요하고 또 수혈을 통한 감염 등의 위험이 상존한다는 문제가 있습니다. 유전성 혈관부종의 증상은 상처, 심한 통증, 외과적 수술, 치과 시술, 바이러스 감염, 스트레스 등에 의해서 악화될 수도 있기에 치과 치료를 받는 경우, 임신한 경우에는 특히 더 주의해야 합니다.
이번 연재에서는 대단히 희귀한 질병인 ‘유전성 혈관부종’을 다루었습니다. 이 연재를 통해 국내에 유전성 혈관부종에 대한 인지도가 높아져서 환자분들이 정확한 진단을 받을 기회가 많아지기를 바랍니다. 또 현재의 지나친 경제적 부담을 해소할 수 있는 방안이 마련되길 기도합니다.
/기고자 : 보라매병원 호흡기내과 양민석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