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시대의 중독
(24) '금메달' 중독
건국대병원
하지현 교수
언제부터인가 우리 사회는 1등 제일주의가 된 것 같습니다. ‘아무도 2등을 기억하지 않는다’는 오래된 광고 카피는 여전히 마음속에 잔향처럼 남아 울리고 있습니다. 결국 일등이 아닌 나머지는 모두 패배자라 느낍니다. 그러니 1등이 받는 환호 속에는 ‘계속 가나 보자’라는 송곳이 숨어있게 됩니다.
2등을 한 사람이 만족감을 못 느끼는 것은 우리만의 특성은 아닙니다. 미국 코넬 대학의 메드벡 교수팀은 1992년 하계올림픽 시상대에 오른 각 나라 선수들의 모습을 분석하고 직접 인터뷰를 해봤습니다.
그 결과 동메달리스트의 얼굴이 은메달리스트의 표정보다 훨씬 행복해 보였다는 것을 알아냈습니다. 그 이유는 두 사람 모두 금메달리스트를 올려다봅니다만, 은메달리스트는 ‘나도 저 자리에 설 수 있었는데’라는 후회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반면, 동메달리스트는 ‘자칫하면 이 자리에 서지도 못할 뻔 했다’는 안도의 마음이 더 컸기 때문이랍니다. 그만큼 만족감이란 기대치의 높이에 반비례한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기대치가 높았던 사람일수록 만족감을 느낄 가능성은 낮아지는 것이지요. 더 나아가 자기가 내심 바라던 기대치보다 주변에서 ‘넌 잘할 거야’라는 기대치가 더 높고 큰 영향을 미치는 경우, 1등을 하지 못한 이의 실망감은 훨씬 커집니다. 몇 년간의 고생이 물거품같이 사라져버립니다. 샴페인을 터뜨려도 아쉬운 이 때, 호텔방에서 눈물을 흘리다니 이게 뭔 짓입니까.
물론 ‘나만 만족하면 되지’라며 굳세게 자기 주관을 지켜나갈 수 있는 사람이 이 세상에 얼마나 될까요. 그러니 주변의 기대치가 높아질수록 부담감은 커지고 그에 비례해 온전한 자기 노력에 대한 보상은 주먹 한줌도 안돼 보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먼저 내가 기대하는 목표를 현실적인 수준으로 맞추는 것입니다. 아니 조금은 낮추는 것이 좋고요. 주변에는 비굴하고 어색하다고 여길 정도로 목표치를 낮춰서 엄살을 떨어주는 것입니다. 간혹 불쑥 불쑥 튀어나오는 자기자랑의 욕구를 억누르고, 주변의 기대 섞인 펌프질로부터 귀와 눈을 막아야합 니다.
주변 사람들은 당신을 냉정하게 평가해 영양가 있는 비판을 하기보다, 칭찬하고 기대하는데 돈 드는 것 아니니, 평가절상해서 띄워주기 마련이니까요. ‘다크호스, 기대주, 역전 만루홈런….’ 이런 말 절대 믿지 마세요. 귀를 막고 주변의 기대치에서 삼 할쯤 떼어 버리세요. 그 정도 거품을 걷어내야 객관적 평균치가 나올 겁니다. 이 말을 무시했다가는 자칫 혹해서 자기 내면의 기대치까지 한껏 높여버리는 일이 벌어집니다. 결말은 오랫동안 고생만 실컷 하고 나름 최선의 성적을 올렸지만, 시상대에서 억울하고 원통한 눈물만 흘리게 되기 십상이니까요.
/ 건국대 신경정신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