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시대의 중독

(21)'드라마 쓰기' 중독

건국대병원

하지현 교수



“너 영수가 땅 샀다는 얘기 들었어? 학교 다닐 때에는 등록금도 없어서 쩔쩔 맸잖아. 참 굴욕 버전이 한 두 개가 아니었지. 취직이 그렇게도 안 되더니 학원강사로 나갔다 바로 떴다는데? 얼마 전에 땅을 1만평인가 샀다나 봐. 그런데 너, 걔랑 옛날에 사귀지 않았니? 네가 차버리지 않았었니?”

처음 들을 때에는 속으로 ‘와’ 하고 놀라게 됩니다. 어쩌면 그리 눈까지 반짝거리며 매사 돌아가는 일을 실감나게 묘사하는지요. 그런데 집에 돌아와 곰곰이 생각해보면 앞 뒤가 안 맞고, 말이 안 되는 점이 하나 둘이 아닙니다. 생각해 보니 이 친구, ‘뻥’이 좀 셉니다.

주위의 별별 소식을 신속하게 전달하는 소식통이긴 한데, 한편으로는 과장과 수식이 너무 많이 붙어서 살짝 의심스럽기도 합니다. 이렇게 이야기를 참으로 감칠맛 나게도 풀어내 좌중을 사로잡는 사람들, 이들의 ‘설’에는 이런 특징이 있습니다. 이야기가 한 편의 드라마로 잘 구성돼 있습니다.

비련의 주인공이 초기에 고난을 겪거나, 악당 때문에 고생을 합니다. 여기에 불가피하고 운명적인 상황변수로 갈등이 고조돼 클라이맥스까지 돌진하다가 감동의 엔딩으로 귀결되면서 카타르시스를 유도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모든 일을 한 편의 드라마로 만들려다 보니, 불가피하게도 사실과 다른 드라마들이 여기저기 달라붙습니다. 뉴스적 리얼리티보다 아침 드라마적 신파성이 강조돼야 사람들이 재미있어 한다는 것을 경험을 통해 익혔기 때문이죠. 듣는 사람들 입장에선 어딘지 ‘뻥끼’가 느껴지지만 워낙 신명 나게 드라마를 이끌어가다 보니, 절로 고개를 끄덕이며 호응을 하게 됩니다.

하지만 돌아서서 들은 이야기를 곱씹어 보거나 다른 사람에게 전달하다 보면 말이 맞지 않고, 결정적인 대목에서 비현실적인 면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무엇보다 들을 때는 그렇게 흥미진진 재미있던 이야기가 내가 옮기면 바람이 빠져 그렇고 그런 가십이 돼 버린다는 것이죠. ‘드라마 쓰기’의 달인인 친구처럼 수사와 과장을 동원하지 못하는 이유? 바로 끊임없이 작동하는 현실 검증력 때문이지요.

이와 같이 극적으로 포장하기를 즐기는 사람은 사실은 남이 자기 말을 들어주는 것에 희열을 느끼는 이야기꾼들입니다. 초상화보다는 특징만 뽑아낸 캐리커쳐에 능숙합니다. 생략과 과장이 특기입니다. 그런데 장식미와 극적 효과에 심취하다 보니 이야기의 본질이 흔들립니다. 이런 ‘꾼’들 앞에선 도리가 없습니다.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사이렌의 섬 앞을 노 저어 가듯, 귀를 막을 수 밖에요.

/ 건국대 신경정신과 교수

* 본 칼럼의 내용은 헬스조선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수 많은 집착 속에서 현대인은 어느 덧 '중독' 증세를 보이고 있다. 우리시대의 중독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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