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려라홍기자

신문에 다 못 쓴 케냐육상 이야기-2

조선일보

홍헌표 기자

육상훈련 센터 운영하는 킵초게 케이노 IOC 위원

 

"인간은 똑같다. 중요한 것은 의지와 노력이다. 그게 실력의 75%다."

 

케냐에서 ‘성공한 육상 스타’는 부와 명예를 한 몸에 누립니다. 가장 대표적인 사람이 킵초게 케이노(67) 케냐 IOC(국제올림픽위원회) 위원 겸 케냐올림픽위원회 위원장입니다. 1968년 멕시코올림픽 1500, 1972년 뮌헨올림픽 3000 장애물에서 금메달을 딴 케냐 육상 1세대입니다.

그는 한 해의 절반은 나이로비에서, 나머지 절반은 나이로비에서 북쪽으로 300㎞ 이상 떨어진 엘도렛에서 지냅니다. 엘도렛은 해발 2700의 고지대에 위치, 케냐 육상 선수들이 연중 훈련하는 곳으로 유명합니다. 그곳에는 케이노 위원 소유의 농장이 여러 개 있습니다. 다 합치면 100만평은 넘을 거라고 합니다. IOC 후원을 받아 2001년부터 육상 훈련 센터(High Performance Training Center)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이곳에서는 아프리카의 가나, 르완다, 가봉, 마다가스카르, 니제르와 북중미의 구이아나에서 선발된 18~20세 육상 유망주가 훈련 받고 있습니다.

작은 헬스장과 치료실, 마사지 룸을 갖춘 훈련 센터에는 침실이 20개 정도 있습니다. 각 침실마다 2~3명이 머물 수 있는데, 케냐의 다른 어떤 훈련 캠프보다 시설이 좋았습니다. IOC에서 자격증을 받은 조셉 은구레(42) 코치가 훈련을 시키는데 선수들의 만족도가 아주 높았습니다.  가나의 1500, 800 선수인 아담스 이드리스(20), 르완다의 여자 5000 선수인 안젤리나(20)는 “시설, 음식, 훈련 등 모든 것이 너무 좋다”며 만족감을 표시했다. 하루 비용 25달러(2만3000원)는 모두 IOC가 부담합니다. 방이 남아 있다면 개별적으로 비용을 부담하고 묵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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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도렛 육상훈련 센터에서 연습을 하고 있는 아프리카 유망 선수들과 기념 사진을 찍고 있는 킵초게 케이노 위원./채승우 기자

케이노 위원은 자기가 비용을 대 케냐 선수 4명을 이곳에서 훈련시키고 있습니다. 훈련 센터는 50만평이 넘는 케이노 위원의 농장 안에 있는데, 소, 양, 염소 등을 기르고 농장을 관리하는 인원만 10명이 넘습니다. 케이노 위원은 고아원도 만들어 20여명을 보살피고 있습니다. 대부분 수단, 소말리아 등 케냐 인근 국가의 난민 출신입니다. 그는 유치원, 초등학교도 있고, 올 봄에는 고등학교도 개교할 예정입니다.

IOC 위원이라면 정장 차림에 목에 힘주고 다닐 줄 알았는데, 케이노씨는 전혀 그렇지 않았습니다. 마음 편한 이웃집 할아버지 같았습니다. 오전 5시면 어김없이 일어나 소 젖을 직접 짤 정도로 부지런한 농부의 모습이었습니다. 케이노 위원은 저와 인터뷰를 약속한 시간을 지키지 못했습니다. 나이로비에서 두 차례 회의를 가진 뒤 5시간 넘게 차를 몰고 엘도렛의 훈련 센터로 돌아온 시간이 오후 11시가 넘었을 때였습니다. 어지간하면 “피곤하니 그냥 자고 내일 하자”고 했을텐데, 친철하게 인터뷰에 응해줬습니다.

그와의 인터뷰에서 기억에 남는 건 하나입니다. “케냐 선수들의 천부적인 신체조건과 해발 2000가 넘는 생활 환경으로 인해 케냐 육상의 세계 지배는 계속되지 않겠냐”는 기자의 질문에 그는 고개를 흔들었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신체조건이나 생활 환경이 아니라 마음이라는 겁니다.  케이노 위원은 “실력의 75%는 정신력”이라고 했습니다. “인간은 누구나 같고, 모든 것이 가능하다”고 했습니다. 자신감과 정신 자세를 강조하기 위한 것으로 이해됐습니다. “케냐 선수들도 언제든지 무너질 수 있다. 그들이 컴퓨터에 빠지고, TV 앞에 앉아 있는 것을 좋아하기 시작해 연습을 게을리한다면 지금과 같은 성적을 내기 어려울 것이다.”

지리멸렬해가고 있는 한국 육상 현실이 떠올랐습니다. 우리 선수들의 연습량은 케냐에 비해 결코 많지 않습니다. 제가 아는 한 케냐 선수들이 훨씬 더 연습합니다. 그들은 반드시 성공해야 한다는 의지도 더 강합니다. 패배의식에 젖어, 그리고 편안한 현실에 안주해 뛰어오를 생각도 못하는 한국 선수들의 미래가 캄캄해보였습니다.

* 본 칼럼의 내용은 헬스조선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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