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시대의 중독

(19) '자가 소외' 중독

건국대병원

하지현 교수

친구들과 오랜만에 만났습니다. 오래된 친구들인데 왠지 어색합니다. 다들 즐거운데 나만 혼자 겉돕니다. 요즘 들어 이런 소외감이 부쩍 심해집니다. 직장에서도 그렇습니다. 커피 브레이크. 나는 마치 물위에 둥둥 뜬 기름 덩어리가 된 기분입니다. 조직적으로 짜고 나를 따돌리는 것이 아닌데, 어딘가 모르게 어색하고 서걱거리는 기분을 없애기 힘듭니다. 요즘 나만 외톨이인 것 같은 소외감이 점점 심해집니다. 뭐, 굳이 그들과 일심동체가 되고 싶지도 않습니다. ‘그래 너희들끼리 잘 해봐라’란 생각만 듭니다. 그러다 보니 어떤 자리에 가도, 누구를 만나도 편치가 않습니다. 

‘소외감’에 중독된 사람을 자주 봅니다. 남들이 따돌린다기 보다는, 자기가 알아서 자기를 소외시킵니다. 소외감은 사실 따돌림을 당하고 있다기보다 자신이 다른 영역에 있다는 느낌을 갖는 쪽에 더 가깝습니다. 사람이 처음 어떤 집단에 속하게 되면 누구나 그곳 문화와 기준 등을 접하고, 그 안에 스며들기 위해서는 이를 빨리 익히고 흡수하는 것이 급선무입니다. 그 과정에서 그간 살면서 배우고 익힌 자신의 기준과 비교하게 됩니다. 자기가 받아들일 수 없거나 기존 가치관과 많은 차이가 나는 것이 있다면 마음 안에서 충돌이 일어납니다. 평소 자기 주관이 강한 사람일수록, 이질적인 배경을 가진 집단과 맞닥뜨릴수록, 자기주관과 집단의 가치관 사이의 접점은 명확하고 강력합니다. 그런 맥락에서 소외감이란 개인과 집단 사이의 경계선에서 자기 정체성을 지키기 위한 반응의 내적 경험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소외감이란 나란 사람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한 일종의 생리적 방어작용입니다. 따돌림을 당하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적응과정의 하나인 소외감은 시간이 지나면 수그러듭니다. 내가 계속 지켜나갈 것과 받아들일 것을 구분해 교통정리를 하고 나면 대략 반사반응에 의한 불안정한 불편함은 사라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새로운 집단을 만나도 전혀 소외감을 경험하지 않고 너무 쉽게 잘 어울리는 사람들이 도리어 문제가 있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어찌 보면 줏대가 좀 없는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으니까요. 

그런데, 이 소외감이 시간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는다면 문제입니다. 소외감 자체에 중독된 것이지요. 이는 자신의 미약한 정체성이 집단이나 타인들에게 통째로 흡수당해 버릴 지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입니다. 이런 불안감은 나아가 피해의식으로 진화합니다. 그러니 자꾸 튕겨내려 하고, 내가 갖고 있는 것을 지키기 위해 성벽을 높이 쌓아 올려 나와 남 사이의 경계를 분명히 하려 하지요.

소외감은 일시적인 경계선이 아니라 아예 국경선으로 고정됩니다. 그러면서 피해의식에 뿌리를 둔 원초적 소외감은 갈수록 커지는 것이죠. 이제 누굴 만나도 편치 않고 항상 소외된 기분부터 듭니다. 이렇듯 교역이 없는 국경선은 고립을 자초합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문을 여는 순간, 누가 내 안방을 침입할지 모른다는 불안감부터 없애는 것이 필요합니다. 방어막을 치는데 쓰는 에너지만 아껴도 사는 게 훨씬 덜 피곤할 겁니다. 소외감 때문에 괴로워하는 당신은 따돌림의 피해자가 아니랍니다. 당신이 자신이 놓은 덫에 걸린 것이지요.

/건국대 신경정신과 교수
* 본 칼럼의 내용은 헬스조선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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