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려라홍기자

신문에 다 못 쓴 케냐육상 이야기-1

조선일보

홍헌표 기자

신문에 다 못 쓴 케냐 육상이야기<1>

냐후루루 청소년 육상 캠프 '아프리카 스포츠'

차디 찬 콘크리트 바닥에 매트리스 10여장을 깔아 만든 15㎡ 크기의 방에서는 땀 냄새, 곰팡이 냄새가 진동했습니다. 빨랫줄에 아무렇게나 널어 놓은 러닝복, 땀에 찌든 수십 켤레의 러닝화에서 나는 것이었습니다. 커튼 몇 개로 겨우 침실 분위기를 낸 그 방에서 여자 선수 17명이 잠을 잔다고 합니다. 또 다른 방 하나에서 남자 선수 15명과 로버트 B. 키오니(59) 코치가 묵습니다.

지난해 12월18일. 케냐에서도 육상 훈련지로 널리 알려진 케냐 중부의 시골 마을 냐후후루를 방문했습니다. 해발 2300에 위치한 이곳의 청소년 육상캠프 아프리카 스포츠 숙소는 TV에서나 봐 왔던 난민수용소 분위기 그대로입니다. 월세 6000실링(약 8만원)으로 10가구가 사는 연립주택 중 방 3칸을 얻어 생활하는 이 캠프는 가난을 탈출하기 위해 달리는 케냐 청소년들의 삶을 뼈아프게 느끼게 해줬습니다.

오전 6시, 오전 10시, 오후 4시 세차례 훈련하는 13~18세의 케냐 청소년들은 고기를 거의 못 먹습니다. 마흔명에 가까운 그들의 한 달 생활비가 1만5000실링(20만원)입니다. 식당에 붙은 좁은 주방에서는 저녁 요리가 한창이었습니다. 선수들이 돌아가며 준비합니다. 희미한 전등 하나로 어둠을 밝힌 식당에 모여 앉아 우갈리(옥수수가루 찐 것),

 

 

로버트_캠프_저녁.JPG 

여자 선수들은 외국인과 함께 있다는 사실이 쑥스러운가봅

니다. 말을 걸어도 웃으면서 눈치만 봅니다./채승우기자

 

 

고기 몇 점을 넣어 볶은 야채를 함께 먹을 때는 눈물이 났습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우갈리와 야채는 케냐 육상선수에게 아주 좋은 영양식이었습니다. 키오니 코치는 취재진을 위해 이날 저녁 메뉴에 고기를 추가했습니다.

"이렇게 형편 없는 생활을 하며 어떻게 연습 효과가 나느냐"고 흥분하는 기자에게 키오니 코치는 이보다 못하게 사는 케냐 사람들도 많다고 했습니다. 그는 "선수들이 이런 생활을 통해 극기를 배우고, 운동에 대해 더 진지해질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의 막내 아들 찰스(16)도 이곳에서 육상 훈련을 합니다.

이 캠프는 어느 기업으로부터도 스폰서를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키오니 코치가 일본의 기업팀에 진출시킨 14명의 제자들이 훈련하러 올 때마다 내놓은 돈, 키오니 코치의 농장과 선수들 부모들이 가끔씩 가져오는 옥수수가루, 감자, 야채로 생활합니다.

키오니 코치와 선수들이 착용한 러닝복, 트레이닝복, 털모자, 신발은 각양각색이었습니다. 아디다스, 나이키, 푸마, 아식스, 캘빈 클라인 등 다양합니다. 모두 일본에 가 있는 선수들이 모아 준 중고품입니다. 제가 방문했을 때 키오니 코치의 프로그램을 받아 훈련 중인 독일 육상 선수 8명도 유니폼을 가져왔다고 합니다.

 

톰슨_폭포에서_로버트와.JPG

케냐에서 가장 높다는 80m의 톰슨 폭포입니다. 영국의 식민지

였던 1880년대 영국의 톰슨이 가장 먼저 방문했다고 합니다. 이

폭포 앞에 위치한 톰슨 랏지(Lodge)는 깔끔한 숙소였습니다.

왼쪽이 사진기자 채승우, 가운데가 로버트 키오니 코치, 오른쪽이

접니다.

 

"무엇 때문에 이 고생을 하느냐"는 기자의 물음에 키오니 코치는 "내가 가르친 어린 선수들이 성공하는 모습을 보는 보람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키오니 코치는 2002년까지 케냐 군 육상팀 코치였습니다. 자기를 거쳐갔다며 그가 적어 준 세계 스타만도 수십명이 넘었습니다. 그는 냐후루루에서 1시간 떨어진 고향에 농장이 있습니다. 가족이 생활하는 데는 별 어려움이 없지만, 꿈나무를 길러내겠다는 꿈을 이루기 위해 고생을 사서 하는 것 같습니다. 고아 네 명은 냐후루루의 사립학교에 부탁해 무료로 기숙사 생활을 하며 공부할 수 있게 해줍니다.

 

로버트_캠프_여자캠프2.jpg

여자선수들의 숙소입니다. 때가 찌든 벽에는 케냐 육상대회 사진과

기사가 다닥다닥 붙여져 있습니다. 이 사진과 기사를 보며 그들은

성공 스토리를 꿈 꿉니다./채승우기자 

 

이 캠프를 하루 동안 취재하면서 느낀 게 있습니다. 그들에게 가난은 선택이 아니라 태어날 때부터 주어진 것입니다. 그들은 자신의 생활을 원망하지 않습니다. 그저 그 것으로부터 탈출하기 위해 달리는 것입니다. 우리 한국 선수들은 어떻습니까. 훈련량이 많다고, 생활에 대한 통제가 심하다고 팀을 뛰쳐 나가고 코칭 스태프 교체를 요구합니다.

그 결과가 지난 12월 아시안게임 마라톤에서 참패로 드러났습니다. 케냐 선수들은 자연환경과 타고난 신체 조건 덕분에 마라톤에서 세계를 지배한다고 합니다. 하나 더 있습니다. 처절한 연습입니다. 하루 세번, 가파른 계단을 1시간 이상 쉴새 없이 오르내리고, 들판을 달립니다.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찬 바닥에서 잠을 자면서도 그들은 희망을 갖고 연습합니다.

 

* 본 칼럼의 내용은 헬스조선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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