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뇨기과 전문의들의 성 클리닉
골라먹는 재미가 있다?
비뇨기과
전문의
- ▲ 청량리본비뇨기과 선영배 원장
두 어명 정도 환자를 보고 난 뒤 간호사가 건네준 설문지와 함께 다시 내 앞에 앉으신 어르신. IPSS(전립선 증상 점수표)를 보니 소변 보는 게 그리 많이 불편하진 않으신데, 뒷장의 IIEF(발기능측정설문지)를 보니 문제가 좀 있다. (참고로 우리병원은 전립선비대증이 의심되는 환자들에게 배뇨장애, 발기부전, 남성갱년기 이 세가지 설문지를 같이 드린다) 조심스레 여쭤본다. “어르신 요새 밤일이 좀 시원치 않으신가 봐요?” 그제서야 쑥스럽다는 듯이 힘들게 얘기를 꺼내신다. “내가 마누라 먼저 보내고 십 년 넘게 혼자 지내다가 얼마 전에 좋은 사람을 하나 소개 받았는데 이게 말을 잘 안 들어서 얼마나 창피하던지. 그쪽은 괜찮다 그러는데 그래도 남자 체면이 말이 아니어서 말이지.” 본인보다 젊은 의사에게 이런 얘기 하는 게 너무 쑥스러워서 차마 말을 못하셨단다.
제가 어르신 같은 환자 보는 게 전문이라고 말씀 드리고 필요한 검사를 진행하고, 마지막으로 발기부전치료제를 처방해 드려야 하는데 혹시 원하시는 약이 있는지 여쭤본다. 당신은 그런 거 한번도 사용해 본적 없다며 그냥 원장님이 추천해 달라신다. 두 종류의 발기부전치료제를 추천해 드리고, 사용방법도 설명해드리고, 화이팅 하시라는 격려와 함께 한결 편안해진 모습으로 진료실 문을 열고 나가시는 어르신을 뒤로하고 난 다음 환자를 맞을 채비를 한다. 요즘 심심찮게 내 진료실에서 볼 수 있는 광경이다.
연일 매스컴에서 떠들어대는 고령화 사회가 도래하면서 그에 따른 여러 가지 문제들이 이슈화 되고 있다. 비뇨기과 의사인 나로서는 다양한 이슈 중에서도 노년남성 층의 성생활에 특히 관심을 두지 않을 수 없다. 노년남성의 발기부전의 원인은 매우 다양하다. 고령으로 인한 노화부터, 흡연, 음주와 같은 생활습관, 다양한 질병들, 신경계의 손상 그리고 심리적인 요인에 의해서도 올 수 있다. 따라서 일차적으로는 이런 다양한 원인들에 대한 치료 및 교정이 이루어져야 한다. 그 다음으로 직접적인 발기력 개선을 위해서 할 수 있는 치료방법이 경구용 발기부전 치료제를 사용하는 것이다.
필자가 한창 비뇨기과 전문의 시험을 준비하던 1999년10월, 세상의 밤 문화를 획기적으로 변화시킬 경구용 발기부천 치료제가 처음으로 소개되었다. 그로부터 12년이 지난 지금 국내에는 무려 5종류의 경구용 발기부전 치료제가 출시되어 있다. 세계최초라는 수식어를 달고 있는 치료제, 가장 긴 작용시간을 자랑하는 치료제, 빠른 작용시간과 강직도를 내세운 치료제, 최초의 토종 발기부전 치료제까지 이제는 먹느냐 마느냐가 아니라 무엇을 먹느냐를 고민해야 되는 세상이 온 것이다.
하지만 고민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복용방법에도 변화가 생겼다. 2년 전 용량을 조절하여 하루 한 알씩 매일 복용할 수 있는 약제가 소개됐다. 이전의 필요 시마다 복용하는 방법에 비해 발기력의 개선효과가 향상되고, 아직까지 그 기전을 확실히 밝혀내지는 못했지만 일부 배뇨장애증상의 개선효과도 제공하여 발기부전환자들로부터 새로운 관심을 끌어내는데 성공했다.
최근 들어서는 또 다른 변화를 꾀하고 있는데 이는 바로 제형의 변화이다. 얼마 전 국내에 최초로 소개된 구강붕해정 형태의 발기부전 치료제는 사탕처럼 입안에 물고만 있으면 녹으면서 자연스럽게 흡수되어 어떤 상황이나 장소에서도 물 없이 간편하게 먹을 수 있다. 따라서, 물과 함께 치료제를 복용할 때 느낄 수 있는 거부감이나 복용 시 프라이버시를 보호받고 싶은 환자들에게는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외에도 앞으로도 소개될 실데나필 제재의 제네릭 약물들도 단순한 복제약의 형태가 아닌 여러 가지 제형으로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고 한다.
바야흐로 발기부전치료제도 개개인의 성생활 패턴에 따라 맞춤형으로 처방할 수 있는 시대인 것이다.
3년 넘게 우리 병원에 다니시는 김모 어르신이 오셨다. 여느때처럼 남성호르몬 주사를 놔드리면서 근황이 어떠신지 여쭤본다. 회사도 잘 돌아가고 사는 재미도 여전히 좋으시다고 하신다. “선원장, 요새 또 새로 나온 약 있다면서? 그 약은 효과가 어떤가? 괜찮으면 그것도 한번 써보려고. 늙은이가 너무 주책인가? 그래도 골라먹는 재미도 있잖아, 허허.”
21세기에 접어들면서 의학의 획기적인 발달에 힘입어 백세 시대가 도래하고 있는 지금 노년의 성생활을 혁신적으로 개선시켜줄 수 있는 방법들이 여러 가지 형태로 다양화 되어가고 있다. 그 다양한 아이템들을 각각의 환자들에게 최적화시켜 적용을 해주어야 하는 일 또한 바로 나와 같은 비뇨기과 의사의 몫이라고 되뇌어본다.
▶ 선영배 원장 약력
현) 청량리본비뇨기과 원장
전) 본클리닉 북경점 대표원장
현) 성균관대학교 의과대학 외래부교수
현) 한양대학교 의료원 외래조교수
현) 비뇨기과개원의협의회 정보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