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려라홍기자

[조선일보 기사] 딸을 위하여 42.195㎞!

조선일보

홍헌표 기자

딸을 위하여 42.195㎞!
춘천마라톤 풀코스 도전 김호규씨
큰딸 난치병으로 6년째 투병 오직 그에게 희망주기 위해…
입문 1년새 풀코스 3번 완주

아버지에게 42.195는 희망의 숫자다. 1년 전 700m를 달리고 가쁜 숨을 몰아 쉬며 주저앉았던 40대 가장이 마라톤 풀코스를 달린다. 만 6년째 투병중인 스무 살 딸에게 희망을 주기 위해서다. 마라톤 경력 1년차인 김호규(47·경기도 구리시)씨 이야기다.

6년 전까지 김씨는 두 딸을 둔 평범한 가장이었다. 2000년 어느 날 중2인 큰 딸 인영이가 “몸에 힘이 없다”고 했을 때, 그저 운동 부족이겠거니 했다. 그래서 아이와 함께 의정부에 있는 수락산도 올라가고 학교에서 집까지 걸어 다니게 했다. 그런데 계속 힘이 없다고 했다. 여러 병원을 다녀봐도 병명을 모른다고 했다. 머리카락이 빠지기 시작했다. 피부과에 다녔다. 소용없었다. 그 해 12월 서울대병원에서 중증 근무력증이라는 진단을 받고 아버지는 주저앉아 울었다. 불행은 예고가 없었다. “중2 때 인영이 키가 173㎝이었어요. 다리가 길어서 달리기만 하면 늘 1등을 하던 아이가 숨쉴 힘도 없이 중환자실에 누워 있는 것을 보니… 믿을 수가 없었어요.” 끝이 아니었다. 아내마저 만성신부전증이 악화됐다. 김씨는 딸이 누워 있는 중환자실과 아내가 누워 있는 투석실을 오가며 간병을 했다. 아내는 2년 전 신장 이식수술을 받았다. 상당히 나아졌다.


▲ “인영이가 다시 일어서는 그날까지!”아빠는 달린다. 근무력증에 시달리는 딸 인영이를 업고서 김호규씨가 활짝 웃는다. 조선일보 춘천마라톤에 출전하는 김씨에게 마라톤은 달리기가 아니다. 희망이다. /이명원기자 mwlee@chosun.com


그러나 스무 살 숙녀가 된 인영이는 그대로다. 약을 타 먹으며 집에 누워만 있는 딸. 운영하던 학원도 마음대로 풀리지 않았다. 길이 보이지 않았다. 힘든 아버지는 술에 많이 기댔다. 길을 찾아야 했다. “힘겹게 투병을 하는 딸을 위해 제일 어려운 일에 도전하기로 마음먹었어요.”

마라톤이었다. 지난해 11월 1일 가족과 학원 직원들 앞에서 “마라톤을 하겠다”고 선언했다. 달리기 연습 첫날 700m를 못 가서 주저앉았다. “병 간호도 힘든데 내가 왜 이런 일을…고민했습니다. 하지만 ‘인영이는 얼마나 힘들까’ 생각하며 연습을 계속 했어요.”

지난 3월 서울마라톤 대회 하프코스 출전 직전에도 5㎞를 뛰지 못하는 몸이었다. 친구들은 “무모하다”고 말렸다. 하지만 20㎞가 넘는 거리를 이를 악물고 달렸다. 2시간6분 만에 결승선을 넘었다. 그리고 6월 양평 이봉주마라톤대회. 그는 42.195㎞ 풀코스에 도전했다. 30㎞를 지나면서 “허리 아래가 완전히 없어진 느낌”이었고 38㎞ 지점에선 다리에 쥐가 나 도로 위를 데굴데굴 굴렀다. “너무 고통스러워서 저도 모르게 낙오자를 태우는 버스를 찾게 되더라고요. 그때마다 딸아이 얼굴이….” 이를 악물고 결승선을 넘었다. 4시간59분42초. 김씨는 엉엉 울었다. 그리고 휴대전화를 찾아 집에 누워 있는 딸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빠, 해냈다.” 딸은 문자로 대답했다. “아빠 자랑스러워요.” 온 몸에 있는 힘을 손가락에 모아 보낸 문자였다. 돌아온 김씨는 제일 먼저 누워 있는 딸에게 완주 메달을 걸어줬다.

1년 사이 김씨는 풀코스 3번, 30㎞코스 1번, 하프코스를 6번 달렸다. 하지만 가족들은 여전히 걱정스럽다. 아내 차정숙(45)씨는 달리고 나면 일주일씩 파스를 붙이고 사는 남편을 보는 게 힘들다고 했다. 그러나 누워 있던 인영씨가 아빠 편을 든다. “아…빠 때문에 큰 힘이 돼요. 정말 자랑스러워요.”

29일 조선일보 춘천마라톤에 참가할 예정인 김씨는 매일 왕숙천 제방도로를 따라 15㎞를 달린다. “지난 4월 다른 마라톤 대회에서 저체온증으로 쓰러진 적이 있어요. 이번 대회와 같은 코스였죠. 이번엔 꼭 완주할 겁니다.”

언제까지 달릴 생각이냐고 물었다. 김씨가 웃으면서 앨범을 하나 가져왔다. 마라톤 완주 증명서와 사진을 모아놓은 앨범에서 코팅된 종이 2장을 꺼냈다. 1주일 전쯤 직접 만든 것이라며 가슴과 등 번호표 아래 달고 뛸 생각이라고 했다. 물음에 대한 답은 그 종이에 쓰여 있었다. ‘인영이가 일어서는 그날까지.’ 아빠의 소원이다.

/박수찬기자 soochan@chosun.com

* 본 칼럼의 내용은 헬스조선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인생의 중반에 접어드는 40대 초반. 키 179cm, 체중 92.9㎏의 홍기자가 10월 22일 조선일보 춘천마라톤 완주에 도전합니다. 춘마도전을 위한 '홍기자의 몸만들기 10개월 작전'을 여러분께 공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