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대 경구피임약의 출현은 임신의 공포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성생활을 가능케 한 혁명적인 사건이었다. 이 때쯤 음핵 오르가즘을 강조한 마스터즈와 존슨 팀의 연구로 여성이 성적 만족을 얻는 데 반드시 남성이 필요한 것은 아니라는 개념까지 득세(得勢)했다. 음핵 역할론과 경구피임약은 60년대 여성해방운동의 불을 지핀 일등 공신이었다.

하지만 경구피임약은 이제 피임의 일등 공신 자리에서 물러날 때가 된 것 같다. 지난 1월, 성의학 분야의 귄위적 학술지(Journal of Sexual Medicine)에 필자는 보스턴 의대 성의학 연구소에서 레이히 연구소와 공동 연구했던 논문을 게재했다. 피임약이 성욕저하를 일으키는데, 문제는 약을 끊어도 성욕저하증이 지속될 수 있다는 것이 우리 팀의 연구 결과였다.

피임약이 성욕저하를 일으킨다는 연구는 꽤 오래 전부터 보고돼 왔지만 대중은 이 사실을 잘 몰랐다. 연구팀은 과연 그렇다면 피임약을 복용하던 여성이 약을 끊기만 하면 성욕이 회복되는지 그 여부에 호기심이 생겨 연구를 진행했다.

놀랍게도 6개월 이상 피임약을 복용한 여성은 약을 끊어도 성욕이 정상으로 쉽게 돌아오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피임약이 성욕을 관장하는 호르몬의 생산을 억제하고 그나마 생산된 것도 활성을 잃게 만드는데, 이 때문에 성욕저하증에 빠지게 된다는 것이다. 많은 의사들이 피임약을 끊으면 성욕이 다시 살아날 것으로 막연히 생각해 왔었는데 그것이 아니라는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필자는 여성 성기능장애 중 두 번째로 많은 성교통증에 피임약이 어떤 영향을 미칠 지 궁금해 이에 관해 추가로 연구했다. 그 결과 여성 성교통증의 가장 흔한 원인인 ‘전정염’이 호르몬의 불균형과 연관되며, 호르몬 불균형이 되는 원인 중 하나가 피임약인 것으로 밝혀졌다.

때문에 필자는 건강한 성기능을 위해 피임약 사용에 신중할 것을 강조하고 싶다. 응급처방으로 호르몬의 균형을 상당히 교란시키는 사후피임약도 마찬가지다. 물론 피임약은 피임의 가장 효과적인 수단임은 이론의 여지가 없다. 피임약은 또 피임목적 외에도 가끔씩 치료용도로 쓰이기도 한다. 따라서 꼭 피임약을 사용해야 한다면 최단기간 사용하는 것이 옳겠다.

강동우·강동우 성의학 연구소 소장
백혜경·성의학 전문의/부부치료 전문가


입력 : 2006.03.07 15:11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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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와 여자사이

[강동우 성의학 클리닉·연구소]
강동우

미국 킨제이연구소 연구원
서울 의대 임상교수
현 강동우 성의학 클리닉·연구소 소장

왜곡된 성과 성기능장애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접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