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살 ENFP… 가상인간 ‘로지’에 열광하는 이유

전종보 헬스조선 기자|2022/03/04 14:27

로지·한유아 인기… 모델·가수·쇼호스트 등 활동 코로나19로 온라인 사용 증가 영향 과도한 몰입… 실제 인간관계에 제약

▲ 싸이더스스튜디오엑스가 개발한 가상인간 ‘로지’/사진=싸이더스스튜디오엑스 홈페이지
“나이는 변함없는 22살이고 MBTI는 재기발랄한 활동가형 ENFP다.” 가상 인플루언서 ‘로지’는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본인을 이렇게 소개했다. 잘 알려져 있듯 그녀는 실존 인물이 아닌 3D 합성 기술을 이용해 만들어진 ‘가상인간’이다. 그럼에도 많은 이들이 그녀의 일거수일투족을 예의주시하며, 다양한 활동에 관심과 응원을 보낸다. 로지와 같이 다양한 모습을 한 여러 가상 인플루언서들은 SNS상에서 많은 인기를 끄는 것은 물론, 인기를 기반으로 광고, 음반 등 여러 분야에서 종횡무진하고 있다. 사람들은 왜 가상인간에게 환호할까.

◇모델·가수·쇼호스트 등 다방면 활동… 2025년 14조 규모 전망

블룸버그 통신에 따르면 2020년 인플루언서(인간) 시장 규모는 7조6000억원이었으며, 가상 인간은 3분의 1 수준인 2조4000억원 규모였다. 그러나 2025년에는 가상인간 시장 규모가 14조원으로 인간 인플루언서(13조원)를 뛰어넘을 것으로 전망된다.

실제 해외에서는 3~4년 전부터 가상인간들이 유명 모델 못지않게 많은 인기를 끌고 있으며, 최근에는 국내에서도 TV 광고나 SNS 등을 통해 가상인간의 인기를 실감할 수 있다. 앞서 소개된 로지를 비롯해, ‘한유아’, ‘김래아’, ‘루시’, ‘루이’ 등 여러 가상인간들은 이미 다방면에서 활약하고 있다. 광고 모델과 가수, 쇼호스트, 앵커 등 활동 분야도 다양하다. 로지의 경우 광고 출연을 통해 지난 한 해 동안 수억원에 달하는 수익을 올린 것으로 알려졌다. 인하대 소비자학과 이은희 교수는 “가상인간은 실제 사람과 달리 항상 건강하고 늙지 않으며 사건·사고에 휘말릴 일도 없다. 모든 면에서 제약이 적다는 뜻”이라며 “기업 입장에서는 안정적으로 활용할 수 있고 소비자에게 색다른 즐거움을 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고 말했다.

◇기술 발전+온라인 사용 증가… “코로나19도 영향 미쳤을 것”

가상인간은 우리에게 ‘익숙하면서도 낯선’ 존재다. 이미 오래 전부터 게임이나 애니메이션 등을 통해 사람의 모습을 한 다양한 가상인간을 만나왔다. 1990년대 후반 잠시 등장했던 사이버 가수 ‘아담’도 빼놓을 수 없다. 그러나 당시와 지금의 가상인간을 대하는 태도는 180도 다르다. 기존에는 가상인간을 화면 속 캐릭터 정도로 생각했다면, 최근에는 실제 연예인을 좋아하듯 그들을 응원하며 심리적으로 친밀감·친숙함 등을 느낀다.

여러 요인이 작용했다고 볼 수 있다. 기본적으로 기술 발전과 함께 가상인간의 외모 자체가 인간과 매우 흡사해졌고, 활발한 SNS 활동, 광고·언론 노출 등을 통해 대중과 적극 소통하면서 사실감도 한층 극대화됐다. 예를 들어 로지의 경우 실제 MZ 세대가 선호하는 외모를 반영해 만들어졌으며, SNS 게시물 또한 200건이 넘는다. 팔로워 수는 12만명 이상이다. 이미 여러 가상인간을 접하고 익숙해진 대중 입장에서는 이처럼 실제 사람과 같이 소통하고 활동하는 새로운 모습의 가상인간에게 단순 흥미 이상의 관심을 갖게 됐다.

전문가들은 코로나19 팬데믹 또한 가상인간의 인기와 무관하지 않다고 이야기한다. 외부활동 제한으로 온라인 사용이 증가하면서 가상인간을 자주 접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진 데다, 사람을 만나지 못하면서 느끼는 고립감, 외로움 등이 커진 점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고려대구로병원 정신건강의학과 한창수 교수는 “코로나19는 인간을 고립시키는 동시에 연결성을 약화시키는 계기가 됐다”며 “외로움이 일상화된 뒤 사람을 만나지 못해 채워지지 않는 부분들을 가상현실, 가상인간 등을 통해 메우려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전문가 “가상인간, 사람과 더욱 가까워질 것”… ‘과도한 몰입’ 우려도

가상인간의 인기가 언제까지 이어질지는 알 수 없다. 일각에서는 과도한 미디어 노출로 가상인간의 인기가 금세 식을 것이라는 부정적인 전망이 나오기도 한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기술이 발전할수록 가상인간의 모습이나 능력 또한 계속해서 개선·향상될 것이며, 우리 생활과도 더욱 밀접해질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한창수 교수는 “현재는 가상인간에게 흥미를 갖는 정도지만, 향후 외모를 구현하는 것을 넘어 인간과 대화가 가능할 정도로 발전한다면 훨씬 인기를 끌 수 있을 것”이라며 “원활한 소통이 가능해질 경우 외로운 사람에게 연결성을 만드는 수단으로 충분히 활용 가능해지고, 사람이 아닌 가상인간과 대화하는 것을 더 선호하는 사람들도 나올 수 있다”고 전망했다. 이은희 교수 또한 “처음 나온 것이 광고모델일 뿐, 가상인간의 여러 이점을 활용해 고객 응대, 교육, 엔터테인먼트 등 보다 다양한 영역에서도 활용될 수 있다”며 “그러기 위해서는 단순히 닮은 것을 넘어 소비자에게 재미를 줄 수 있고 연결성을 높일 수 있는 요소를 갖춰야 한다”고 설명했다.

동시에 가상인간에 대한 과도한 몰입을 경계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한 교수는 “가상인간에게 지나치게 빠져들어 벗어나지 못하거나, 정신과적 질환이 의심될 만큼 과도하게 집착하는 등 부작용도 발생 가능하다”며 “인간은 본래 사람과 만나 좌절하고 실망하며 관계 맺는 방법을 배우지만, 나에게 100% 맞춰주는 가상인간에게 빠진다면 실제 사람과는 관계를 안 맺으려 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