펀슈머 마케팅, 아이들 눈높이·안전성은 고려 안해
식품·유통업계의 과도한 ‘펀슈머’ 마케팅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이어지고 있다. 펀슈머란 재미(Fun)와 소비자(Consumer)를 합한 단어로, 최근 식품·유통업계에서는 이 같은 펀슈머 마케팅의 일환으로 ‘우유 바디워시’, ‘유성매직 음료’, ‘구두약 초콜릿’ 등 이종산업과의 협업 제품을 연이어 선보이고 있다. 문제는 이들 제품에 소비자, 특히 어린이들의 안전은 고려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전문가들은 계속해서 이색 협업 제품들이 출시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기업에서도 기획 단계부터 안전성을 함께 고려하는 움직임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먹으면 어떻게 하려고… 전문가 “펌핑 형태? 애들은 모른다”
최근 홈플러스는 LG생활건강, 서울우유와 협업한 ‘온더바디 서울우유 콜라보 바디워시’를 출시했다. 서울우유와 외관이 비슷한 이 제품은 서울우유 우유갑 패키지 디자인을 활용한 산양유 추출물 성분 ‘바디워시’다. 서울우유의 로고, 서체, 색깔 등을 적용했으며, 크기 또한 우유갑과 비슷하다. 재미와 새로움을 주기 위해 선보인 제품이지만, 소비자들 사이에서는 제품 출시 후 안전성에 대한 지적이 계속해서 제기된다. 바디워시라는 사실을 인지할 수 있는 성인은 그렇다 쳐도, 아이들 입장에서는 이를 우유로 오인해 호기심을 갖고 먹을 위험이 있다는 의견이다.
판매사 측도 사전에 안전성 문제를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홈플러스는 제품 출시 당시 “기존 우유갑 패키지와 혼동을 막기 위해 전용 용기를 펌핑 방식으로 개발했으며, 상품 앞면 하단에 ‘밀크 파우더 향 바디워시’ 표시를 포함했다”는 설명을 곁들였다. 그러나 전문가는 이는 판매사 입장일 뿐 실제 안전성은 고려되지 않았다고 지적한다. 인하대 소비자학과 이은희 교수는 “아직 인지능력이 발달하지 않은 3~4세 어린이의 경우 제품이 화장실에 있거나 펌핑 방식으로 제작됐다고 해도 오해할 수 있다”며 “아이들의 눈높이나 안전성은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제품이라고 생각된다”고 꼬집었다.
◇홈플러스 “경고 문구 추가 부착… 불편 드려 죄송” 사과
비난 여론이 이어지자 홈플러스 측도 즉각 시정에 나섰다. 홈플러스 관계자는 “당초 상품 후면에 ‘먹는 우유가 아닙니다. 화장품입니다’라는 경고 문구를 기재했고, 현재는 ‘샤워 용도로 쓰는 화장품입니다’라는 POP(안내문)를 추가로 설치했다”며 “이번 주 중 상품 전면에 ‘마시지 마세요. 바디워시입니다’라는 스티커를 추가로 부착할 예정이다”고 설명했다. 제품을 우유 코너에 진열한 것에 대해서는 “1개 매장에서 연관진열을 한 것으로 확인돼 즉시 철수했고, 현재 모든 매장의 화장품 판매대에서만 진열·판매하고 있다”며 “이번 일로 고객들에게 불편을 드려 죄송하다”고 말했다.
◇“딱풀캔디·구두약초콜릿, 안 보이는 곳에서 잘못 먹기라도 하면…”
식품·유통업계의 ‘이색 협업’ 논란은 이번뿐 만이 아니다. 앞서 ‘딱풀 캔디’, ‘구두약 초콜릿’, ‘유성매직 음료’ 등 협업 대상과 모양이 흡사한 식음료 제품들이 출시될 때마다 비슷한 논란이 불거졌다. 기업에서는 이 같은 제품을 소비자에게 재미를 주는 ‘펀슈머’ 마케팅의 일환으로 선보였지만, 재미로 봐줄 수 있는 ‘선’을 넘었다는 비판이 이어졌다.
일각에서는 ‘말 그대로 펀슈머 제품인데, 재미로 받아들이지 못 한다’, ‘아이가 먹을까 걱정되면 안사면 되지 않느냐’는 식의 반응을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대부분 전문가들과 소비자들, 특히 어린 자녀를 둔 소비자들은 부모의 관심이 닿지 않는 곳에서 발생할 수 있는 사고 위험을 우려하는 모습이다. 이은희 교수는 “아이들 혼자 편의점·대형마트를 가지 않더라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식품 안전사고가 일어날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며 “한국소비자원에 접수된 유사 사고 사례를 보더라도, 가정에서 부모가 보지 못한 사이 발생한 사고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 한국소비자원 ‘2019년 어린이 안전사고 동향분석’ 조사에 따르면 대부분 어린이 안전사고는 ‘주택’(1만6749건, 67.1%)에서 발생했다. 전체 어린이 이물질 삼킴·흡입 사고(모든 장소)의 경우 1915건으로 연간 사고 건수가 2000건에 육박했으며, 2016년 1293건, 2017년 1498건, 2018년 1548건, 2019년 1915건으로 최근 4년 간 꾸준히 증가세를 보였다. 주로 완구나 문구·학습용품을 삼키는 사고였지만, 기타 생활용품과 의약외품 등을 삼킨 사례도 적지 않았다.
◇전문가 “제품 기획단계서부터 사고 예방 노력 필요”
그럼에도 식품·유통업계의 펀슈머 마케팅은 계속해서 이어질 전망이다. 특히 자체 제품(PB) 개발이 어려운 유통업계의 경우, 짧은 시간 안에 소비자에게 재미와 새로움을 줄 수 있는 이색 협업 제품을 지속적으로 선보일 가능성이 높다. 때문에 전문가들은 추후 같은 문제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기업에서 제품 개발·기획 단계부터 어린이 안전사고 방지를 고려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이은희 교수는 “오프라인 집객의 어려움이 커지고 있는 만큼 유통업체의 이 같은 시도 또한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며 “문제는 이 과정에서 아이들이 제품을 잘못 섭취하는 사고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고 말했다. 이어 “사고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개발 단계에 아동 전문가가 참여해 위험성을 함께 확인·점검하는 등의 방안을 고려해 봐야 한다”고 조언했다.
한편, 안전사고에 대한 우려가 지속적으로 제기되자 식품의약품안전처에서도 관련법 개정·강화를 검토하는 등 조치에 나선 것으로 확인된다. 식약처 관계자는 “국회에서 펀슈머 상품 관련 안전사고를 막기 위해 식품표시·광고법 개정안을 발의해 논의 중인 것으로 안다”며 “식약처에서도 이 같은 내용을 인지하고 법안 개정을 논의·준비 중이다”고 말했다.